해운대에서 '대구탕'으로 시작한 '만주기행'

2011 겨울 만주기행을 다녀와서 (1)

등록 2011.01.20 18:28수정 2011.01.2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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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일) 오후 3시 부산 구포역에서 <만주를 가다> 저자이자 항일유적과 함께 하는 2011 겨울 만주기행 가이드를 맡은 박영희 시인을 만났다. 10일 오전 11시 30분 경남 김해공항에서 출발하는 중국 남방항공(CZ 666)을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가 주최한 2011 겨울 만주기행은 1월 10일부터 17일까지(7박8일)로 김해공항을 출발하여 중국 심양-하얼빈-목단강-연길-용정-도문-심양을 거쳐 김해로 돌아오는 장거리 코스였다.


민박 이틀과 늘어난 기차이용에 대한 기대 빗나가

비행기 출발 시각이 10일 오전이어서 멀리에서 참가하는 사람은 출발 하루 전에 만나 얼굴도 익히는 등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주최 측에서 배려를 해주어 다른 일행과 식사를 하면서 친교도 나누고 박영희 시인에게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잠자리를 호텔과 기차만 이용했던 작년 8월과 달리 민박을 이틀이나 하고, 기차이용도 2회에서 3회로 늘어났다는 소식에 잔뜩 기대를 걸고 겨울 만주기행을 준비해 온 과정을 박 시인에게 얘기했다가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이틀은 조선족이 사는 집에서 민박을 한다고 해서 김 세 톳을 가져왔습니다. 한 톳은 일행하고 먹고, 두 톳은 민박집에 선물하려고요. 만주는 바다와 먼 내륙이어서 사람들이 향긋한 파래 냄새를 좋아할 것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별것은 아니지만, 맛 좋은 전라도 김이고 부담 없이 선물하기엔 김이 가장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어쩌지요. 안내문에는 하얼빈에서 목단강까지 기차를 이용한다고 했는데 갑자기 버스로 대체되었고, 민박도 기행이 끝나는 날 하루밖에 하지 않습니다. 작년과 달리 안전을 위한 가이드 한 사람만 끝까지 함께 다니고, 유적지 설명은 제가 직접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생각하시는 것처럼 만주에서 민박은 옛날 시골집 분위기와는 다릅니다. 조선족들이 평수가 넓은 아파트를 개조해서 민박을 전문으로 하거든요. 그래도 가져오셨으니 보관하셨다가 선물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 시인의 대답은 한마디로 실망이었다. 시골 사랑방 분위기와 비슷한 민박집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기는 군고구마를 앞에 놓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겨울밤을 보내려고 했던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마음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해운대 저녁노을을 감상하다

박영희 시인은 작년 8월 만주기행을 함께 다녀온 사이여서 무척 반가웠다. 박 시인은 전남 순천에서 왔다는 박 선생을 소개해주었다. 나보다 서너 살 아래인 박 선생은 초면이었지만, 금방 친구가 되었다.   

만남은 언제나 반갑고 즐거운 것. 순식간에 동지가 된 셋은 해운대로 바람을 쐬러 가기로 마음을 모았다. 박 시인이 해운대에 대구탕을 잘하는 집이 있다고 해서 모텔에 들러 숙소를 잡아놓고 덕천 지하철역에서 해운대행 지하철을 탔다.

동백역에서 내려 동백섬 산책로를 거닐었는데, 3년 전 생일날 막내 누님이 개떡을 쪄와 정신과 병원에 입원해있던 큰 누님과 함께 동백섬 숲에서 개떡 잔치를 벌였던 장면들이 시나브로 떠올라 잠시 아련한 향수에 빠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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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광한대교 노을. 자연과 인간이 공동 연출한 지상 최대의 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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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백사장에서 만난 갈매기. 우리를 환영하는 것 같았습니다. ⓒ 조종안


붉게 물든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광안대교는 그 웅장한 모습이 한 장의 실루엣 사진처럼 다가왔다. 부산에서 7년을 살면서도 처음 보는 해운대 저녁노을은 만주기행의 상서로운 조짐이자 보너스라는 생각에 더욱 흐뭇하게 느껴졌다. 

박 시인도 어렸을 때 부산에서 살면서 고생하던 일들이 하나씩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해운데 부근 공사장에서 막일을 해서 번 돈으로 아는 사람은 물론 소통도 불가능했던 일본에 다녀왔다며 20대 시절을 회상했다.

불에 달구어진 쟁반을 떠오르게 하는 하늘과 금빛으로 반짝이는 겨울 바다를 감상하면서 동백섬 끝자락에 위치한 누리마루를 돌아 해운대 백사장에 도착하니까 공중을 배회하던 갈매기 한 마리가 모래사장으로 사뿐히 내려앉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매콤하면서 고소한 맛이 일품인 대구탕

겨울바다의 낭만을 만끽하며 모래사장을 거닐던 박영희 시인이 한참을 두리번거리더니 "저곳이 맞는 것 같습니다"라며 우리를 안내했다. 그는 옛날부터 대구탕을 잘하기로 이름난 식당인데 이사한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박 시인을 따라 식당에 들어서니까 넓은 공간에서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고, 대구탕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박 시인의 설명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가격도 한 그릇에 8천 원으로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는데 손님도 20대 젊은이에서 노인까지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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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국물 맛이 일품인 대구탕. 맛이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괜한 기우였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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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탕 건더기. 졸깃한 머릿살과 뼈에 스며든 고소한 국물은 대구탕에서나 맛 볼 수 있는 진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조종안


자리를 잡고 앉아 대구탕 세 그릇을 주문하니까 곧바로 상이 차려졌다. 조금 있으니까 보기에도 걸쭉한 대구탕이 나왔는데 고소하면서 매콤한 국물이 뱃속 깊이까지 청소해주는 것처럼 시원했다. 졸깃한 대구 머릿살 맛도 일품이었다.

명태 대가리에 무를 얇게 썰어 넣고 찌개를 끓이면 국물이 시원하고 발라먹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얘기를 종종 해왔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대구 대가리로 바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백하면서 깊은 맛을 내는 국물은 명태가 울고 갈 지경이었다.

양질의 단백질과 미네랄이 풍부하고 지방함량이 낮아 노인과 아이에게도 좋고, 타우린이 풍부하여 피로회복, 시력증강, 간 기능 보호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는 대구탕. 소주 생각이 간절했으나 다음날을 생각해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대구탕으로 영양을 보충한 셋은 식당을 나왔다. 해운대의 겨울밤은 아름다웠고 도시의 화려함은 하얼빈의 밤거리를 떠오르게 했다.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도 영하 20-30도를 오르내리는 만주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숙소에 도착한 셋은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다음날 시작되는 만주기행의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지원금을 보내준 딸과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광활한 만주 벌판의 설경을 눈앞에 그리면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구탕 #만주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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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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