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치 시장이 숨겨 놓은 '보리밭'

[포구 기행 12] 자갈치 시장의 옛날과 지금

등록 2011.02.08 20:16수정 2011.02.0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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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 시장의 '보리밭' ⓒ 송유미



부산은 한국을 대표하는 제 1의 항구 도시. 그 부산의 자갈치 시장은 동남아 최고의 어시장. 6. 25 전쟁 당시 임시수도가 있던 부산은 전국 피란민들이 안전지대처럼 모여들었던 고장. 해서 당시 부산의 자갈치 시장은 6. 25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감당했던 공간이라고 얘기해도 틀린 말은 아닐 터다.


그러니까 임시 수도 시절, 숱하게 밀려온 피란민들로 갑자기 많은 판잣촌이 생겨 대 화재를 수없이 겪기도 했다. 유독 판잣촌이 많았던 자갈치 시장 부근은 상전벽해처럼 변했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자갈치 시장은 새로운 복합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해서 많은 여행객과 부산 시민들의 발길이 붐비는 부산의 자갈치 시장.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자갈치 시장은, 6·25 전쟁 피란민들에 의해 형성된 시장이기도 하지만, 당시 오고 갈 곳 없는 피란민인 많은 문화예술인 등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찾던 문화공간이기도 했다.

그렇다. 오늘날 자갈치 시장의 융성한 뿌리는, 6.·25 전쟁 동란 이후 물밀듯이 모여든 피란민들이 생계를 위해, 더러는 암거래 군수 물자들을 내다 파는 '얌생이꾼'으로 둔갑하고 이들 잡상인들의 난전장이 오늘날 자갈치 시장의 형태로 변화된 것이다.

이 자갈치 시장의 복합 문화공간의 '수변 공원'에 사연 깊은 '보리밭'의 노래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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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 송유미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이지 않고
   저녁 놀 뷘 하늘만 눈에 차누나.
<보리밭>-박화목

이 <보리밭>의 노래비의 주인공은 박화목시인과 윤용하 작곡가이다. 그러니까 노래의 가사는 박화목(1924-2005) 시인이 쓰고, 윤용하(1922-1965) 작곡가가 곡을 썼다. 이 노래비에는 예쁜 모양으로 악보가 새겨져 있다. 노래비의 크기는 그닥 크지 않다. 

이 노래비에는 <보리밭>에 창작에 대한 일화가 쓰여져 있다. 그러니까  6. 25 전쟁(1952년) 중인 어느 날 작곡가 윤용하 작곡가와 박화목 시인은 자갈치 시장 부근 어느 술집에서 "말 붙일 곳도 없고 황폐해진 젊은이들 가슴에 꿈과 희망을 줄 수 있고 훈훈한 서정으로 부를 수 있는 가곡을 만드세"라고 서로 얘기하고 이를 실천키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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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 추억에 잠기다 ⓒ 송유미


<보리밭>을 만든 두 사람은 똑 같은 황해도 출신. 그들은 당시 해군종군작가단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시인 박화목은 <옛생각>이라는 제목의 시를 윤용하 작곡가에게 건넸고, 윤용하 작곡가는 며칠 후 작곡한 것을 박시인에게 내밀었는데, 제목이 <보리밭>으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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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자갈치 복합문화공간 ⓒ 송유미



이 노래는 소박한 가락과 흙냄새 물씬 풍기는 시어와 정겨운 가락으로, 독창은 물론 합창곡으로 편곡되어 오늘날까지 노인에서부터 어린이들까지 함께 불리고 있다.

그러나 <보리밭>은 사실 70년대에 와서야 빛을 본다. 가수 조영남이 <보리밭>을 부름으로써 대중에게 널리 애창된 것이다. 해서 국민 애창곡 <보리밭> 노래비의 자갈치 문화공간에의 건립은 의의가 크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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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자갈치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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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자갈치 ⓒ 송유미


부산은 한문으로 부산(釜山). 이 부산의 부(釜- 가마 부)는 한문의 화(火)와 금(金)'으로 이루어져 있다. 통상 가마는 보통의 솥보다는 열용량이 커서 더워지고 식는 것이 더디다. 그래서 부산 사람들을 가르쳐 '사귀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사귀고 나면  그 정이 오래 간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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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해물 사이소...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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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 시장 ⓒ 송유미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영화 <친구>에는 이러한 부산 사람의 기질이 나타나 있다 하겠다. 영화 <친구>의 무대이기도 한 자갈치 시장. 그 공간에 흙냄새나는 <보리밭>의 노래비가 세워져서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따뜻한 쉼터가 되고 있다. 

그렇다. 자갈치 시장은 사실 시장이란 말보다 저자란 말이 어울리는 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갖가지 물건을 거래하고 교역하는 그 옛날 저자 거리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일들을 그린 조선시대 풍속도로서 김홍도와 신윤복 등이 있었듯이, 자갈치 시장에서도 온 국민이 사랑받고 있는 가곡 박화목의 <보리밭>의 창작 산실이자, 이중섭 화가의 그림의 정신적 배경이 된 무대이기도 하다.

자갈치 시장은 흐르는 세월에 정말 많이 변했다. 과거나 현재나 자갈치 시장은 우리의 전통 저자거리의 흥겨움과 민중들의 삶의 해방공간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유난히 생활력이 강했던 우리 한국의 어머니들이 6·25 전쟁통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오늘날의 '자갈치 아지매'라는 정겨운 이름의 근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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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 아지매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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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 갈매기 ⓒ 송유미


부산의 랜드마크 자갈치 시장. '갈매기'들이 많은 이들의 휴식을 즐겁게 하기 위해 쉬지 않고 춤추고 있는 듯 보였다. 짙푸른 바다 역시 넓은 보리밭같아 보였다. 영도 저편으로 서서히 물드는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자니, '빈 하늘'과 푸른 바다가 보리밭처럼 바람에 물결치는 듯 연상되었다. 정말 역사의 아픈 흔적 같은, 피란민이었던 두 예술가가 남긴 <보리밭>의 노래비가 숨은 그림처럼 그렇게 자갈치 시장에 존재하고 있었다.
#보리밭 #자갈치 문화 #복합문화공간 #시민공간 #옛날 자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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