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휴게소, 알고 보니 항일 유적지

'2011 겨울 만주기행'을 다녀와서 (11)

등록 2011.02.21 13:54수정 2011.02.2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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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유적과 함께 하는 '2011 겨울 만주기행' 셋째 날(12일)은 백야 김좌진 장군이 최후를 맞이했던 목단강(牧丹江) '산시(山市)'로 이동했다. 하얼빈에 하룻밤 한나절밖에 머물지 않았는데 떠나려니까 정든 사람과 이별할 때처럼 서운했다.

하얼빈의 겨울은 바깥 날씨만 추운 게 아니었다. 호텔(3성급)인데도 새벽녘이 되니까 몹시 추웠다. 옆 침대 담요를 가져다 덮으니까 어깨 사이로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큰 방에 혼자 있으니까 더 춥고 냉랭했다. 집에 있을 아내 생각이 간절했다.  


밖이 캄캄해서 시계를 보니까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새벽에 눈을 뜬데다 한기까지 느껴져 잠이 오지 않았다. 겨울 만주기행에서 처음 호텔 잠자리인데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한참을 뒤척이다 어렵게 잠들었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거리는 활기 넘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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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죽에 중국식 빵 하나, 야채무침으로 짜인 아침식단. 중국은 식후에 과일주스나 차 등을 마시더군요. 생수는 사 마셔야 해서 불편했습니다. ⓒ 조종안


긴장을 해서인지 7시에 눈을 떴다. 화장실로 달려가 샤워하고 식당이 있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갔더니 일행 몇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뷔페식이었는데 종업원은 미국인에게 포크를 가져다주면서 나는 중국인으로 알았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침은 가볍게 먹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화장실이 없는 버스를 장시간 타야 하기 때문이었다. 해파리, 양배추, 무, 시금치 등이 들어간 야채무침에 옥수수죽 한 공기와 중국식 빵 하나를 먹었다. 음식이 깔끔하고 담백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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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의 아침, 거리가 활기찼는데요. 해가 뜨긴 했지만, 구름에 박힌 것처럼 보였습니다. ⓒ 조종안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밖으로 나와서 버스에 오르기 전 호텔 부근의 아침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데 5분도 지나지 않아 콧물이 얼면서 숨을 쉴 때마다 콧속이 따끔거리고 아팠다. 만주의 추위가 체면치레하는 모양이라고 해서 웃었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하얼빈의 아침은 활기가 넘쳤다. 꽁꽁 얼어붙은 도로를 앙증맞게 굴러가는 삼륜차, 자전거에 짐을 잔뜩 싣고 빙판길을 달려가는 아저씨, 털모자에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오가는 사람들 발걸음에도 생기가 돋았다. 

만주에 도착해서 이틀이 지나도록 영롱한 햇살을 구경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함박눈이 내리거나 날이 흐려서도 아니었다. 회색빛 안개구름이 온종일 해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박영희 시인도 만주의 겨울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무채색이라고 말했다.

도심 벗어나는 데 한 시간 걸려

아침 8시 40분에 출발했는데 러시아워에 걸려 길이 막혔다. 복잡한 도로를 탓하다 영업용 택시 얘기가 나왔다. 중국에서 조선족이 택시를 가장 많이 소유한 도시는 '연길(옌지)'이라고 했다. 그런데 다들 팔고 한국으로 나가는 바람에 지금은 대부분 한족에게 넘어간 상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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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시내 외곽지역 풍경. 나무의 눈꽃이 감탄사가 터질 정도로 화려했습니다. ⓒ 조종안


며칠 전 내린 눈이 도로 여기저기에 쌓여 있었고, 하얀 나뭇가지들은 높은 산의 상고대를 연상시켰다. 길가의 다양한 얼음 조형물과 눈꽃이 만발한 가로수들은 하얼빈이 '눈과 얼음의 도시'임을 설명하는 듯했다. 순간, '조린공원(자오린공원)'의 설경이 그려졌다.

전날 조린공원을 방문했을 때 도마 안중근의 유묵비를 찾으려고 눈으로 뒤덮인 연못가 주변을 한참 동안 헤매고 다녔지만, 찾지 못하고 날까지 어두워져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5개월 전까지 서 있던 게 사라져 온갖 잡념으로 마음이 심란했었다.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진입하기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렸다. 길이 미끄럽고 러시아워 탓도 있겠지만, 인구 8백만이 넘는 도시의 면적도 무시할 수 없었다. 고속도로는 왕복 4차선이었으나 오가는 차가 없어 추운 날씨만큼이나 썰렁했다.

목단강 '산시' 가는 버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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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 접어든 버스. 두꺼운 옷을 껴입은 기사를 보면 중국 사람들은 춥게 사는 게 생활화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 조종안


옷을 두껍게 입었는데도 한기가 느껴졌다. 버스 입구에 걸린 온도계는 영하 4℃를 가리키고 있었다. 차내 온도가 영하를 유지하는 게 자랑이라고 걸어놨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운전석 유리창에는 성에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춥긴 했지만, 창마다 활짝 핀 성에꽃들은 눈을 유혹했다. 조금 달리니까 드넓은 눈꽃세상이 눈앞에 환상적으로 펼쳐졌다. 만주의 설원 벌판에서 전쟁에 승리하고 '조선독립 만세'를 외쳤을 김좌진 장군의 호랑이 같은 모습이 상상 되었다.

"산시에 가려면 해림(海林)을 지나야 합니다. '해림'까지는 4시간-4시간 30분 정도, 산시는 1시간 조금 더 걸릴 겁니다. 점심은 해림에서 먹고, 김좌진 장군이 설립한 학교를 잠깐 보고 목적지 산시로 가서 기념관에도 들를 예정입니다. 오늘 일정은 거기까지고요. 숙박은 목단강입니다. 목단강은 하얼빈의 절반 정도 되는 도시입니다."

일정을 안내한 박영희 시인은 만주의 농가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한족이 사는 집은 성냥갑처럼 잘리어 있고, 대문에는 '복(福)' 자가 붙어 있으며 조선족 집은 8각 형식이고 '복' 자를 붙이지 않았단다. 농가도 한국 농촌보다 넓은 구조로 되어 있다고. 석탄을 연료로 하기 때문에 방도 호텔보다 따뜻하단다.

중국은 관광버스도 좌석에 음료수 넣을 주머니조차 붙어 있지 않을 정도로 시설이 허술했고, 앞뒤 좌석 사이가 좁아 다리가 긴 나에게 버스 타기는 고역이었다. 하지만, 참고 견뎌야지 어쩌겠는가. 한 시간쯤 달렸을까. 야트막한 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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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목단강 고속도로 주변 농촌풍경. 먼 산은 눈으로 뒤덮여 보이지 않습니다. ⓒ 조종안


여름엔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졌는데 겨울엔 온통 하얀 눈밭이었다. 중국도 우리나라처럼 동쪽은 산으로 되어 있을 것으로 알았는데 대부분 드넓은 평원이었고, 산이라고 해도 나지막한 구릉으로 평온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눈으로 뒤덮인 산을 보니까 60년대 초 너무 멋있고 감격스러웠던, 그래서 기억에 생생한 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의 전투장면이 떠올랐다. 만주와 두만강이 배경이었던 영화에서 독립군들이 스키를 타고 내려오면서 일본군을 향해 따발총을 갈겨대던 장면은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를 부르고 싶을 정도로 압권이었다.  

평화로운 설원 풍경을 감상하며 잠시 혼자만의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조선족을 진즉 잊고 살았다. 아니 무시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잊지 않고 있었다. 중국인임을 인정하면서도 고구려역사 훼손을 가슴 아파하고, 한국인의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남북을 따지지 않고 반가워했다.

또한, 다른 민족, 다른 이념, 다른 문화 속에서 1백 년 넘게 살면서도 자식에게 우리 말글을 가르치면서 70대 이상은 대부분 중국어를 모를 정도로 조국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역만리에서 어렵게 살면서도 민족의 전통문화를 지켜온 그들에게 마음의 박수를 실컷 쳐주었다.   

고속도로 휴게소, 알고 보니 항일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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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목단강 중간 지점에 있는 ‘상지휴게소’. 추위는 하얼빈과 비슷했습니다. ⓒ 조종안


하얼빈에서 출발하여 두 시간쯤 달렸을까. '상지(尙志)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중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먹을거리 가게도 별로 없고 사람도 뜸했다. 여름의 백두산 부근만 조금 혼잡했을 뿐 일반 고속도로 휴게소는 여름에도 겨울에도 쓸쓸할 정도로 한산했다. 

휴게소 이름 '尙志'는 한때 북만주 일본군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한중연합 항일유격대 대장 조상지(1908∼1942) 장군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1982년 중국 정부가 조 장군의 항일전적을 인정하고 기리기 위해 그의 활동 무대였던 주하현(朱河縣)을 '상지현'으로 개명했다고.

조 장군은 1942년 2월 일본군 밀정의 밀고로 경찰서로 압송되어 조사받다가 전투 중 입은 상처로 사망했다. 일본군은 장군의 목을 자른 시신을 송화강 얼음구멍에 버린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2004년 '장춘'의 '호국사'에서 머리 유골이 발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상지시는 하얼빈 동남쪽 150킬로 지점에 있으며 '연길' 다음으로 우리 교포가 많이 사는 도시라고 한다. 휴게소가 항일유적지여서 놀랐는데, 만주에서는 가는 곳마다 항일투쟁사 흔적이 엿보이고 유적지여서 외국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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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안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하얼빈 #목단강 #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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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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