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노동자 평균나이 73세, 대체 뭘 만들기에...

[인터뷰] 55년동안 먹만 만든 '먹'장인 손선호 '해주 먹' 대표

등록 2011.02.27 17:07수정 2011.02.2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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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 제조과정중 하나. 먹은 떡을 만드는 스텐롤러등을 이용해 만들어 지고 있었다. ⓒ 추광규


문방사우(文房四友), 먹 벼루 붓 종이. 이 가운데 먹은 선비의 방 한가득 그윽한 묵향을 풍겼을 것 같다. 예전에는 글을 쓸 때나 그림을 그릴 때나 필수적이었던 먹.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고 다양한 필기도구들이 등장하면서, 주역의 자리를 내주고 뒷전으로 물러나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먹은 현재 어떻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까? 전통먹 제조방법은 전수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근대적 먹 제조공정 속에 잊혀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70년대 전성기 시절, 50여 곳을 헤아렸다는 먹 제조공장은 현재 국내에 단 세 곳이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강원도 신철원에 위치한 한 먹 공장을 찾아 그 과정을 들여다 보기로 했다. 먹 장인 손선호옹, 그는 올해로 82살이 됐지만 여전히 정정했다.

시설은 낡았지만 수십 년 손때 묻어있는 제조설비

백과사전을 뒤져보니 전통먹의 제조공정은 송연묵과 유연묵에 따라 각각 다르다고 한다. 그을음을 아교풀과 함께 반죽하여 절구에 충분히 다진 뒤 목형에 넣고 압착한 다음 꺼내어 재속에 묻어 차차 수분을 빼며 말린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 같은 전통 먹 제조에 비추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유통되고 있는 먹은 어떤 재료를 사용해 만들고 그 제조과정은 어떨까?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먹 제조공장 중 하나인 '손선호 해주 먹'. 이 공장의 경우 아쉽게도 전통적 재료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았다. 현재 먹에 들어가는 주재료는 '카본'과 '젤라틴'이었다.

이 공장의 대표인 손선호 대표는 55년째 먹을 제조하고 있다. 6·25 전쟁 직후부터 먹을 만들기 시작해 팔순이 넘은 현재까지도 공장에서 직접 일을 하면서 먹을 만들고 있다는 것. 일을 계속하고 있어서인지 연세에 비추어 매우 정정한 모습이었다. 더구나 그는 6·25 전쟁 당시 국군으로 참전해 이등중사로 머리에 파편을 맞고 상이용사로 제대했다고 한다. 손 대표는 현재까지도 파편을 제거하지 못해 머릿속에 파편이 들어있다고.

그가 기억하는 먹과의 인연은 무척이나 오래되었다. 그는 7살 때 고향인 황해도 해주 배나무골에서 서당을 다니면서 먹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당시 해주지방에서 가내 수공업으로 먹을 만들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했다. 이후 손 대표는 전쟁도중 처가가 있던 울산시 태화리에서 근대적 먹 제조과정을 익힌 뒤 독립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고 했다.

먹 제조공정 살펴보니, 전통먹 제조공정 개선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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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선호 대표가 자신의 공장에서 생산한 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 추광규

'손선호 해주 먹' 공장은 규모가 비교적 작았다. 먹 제조공정 자체가 힘들다 보니 젊은 사람들은 잘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게 애로사항이라고 했다. 실제 공장을 살펴보니 공기 좋은 곳에 있었지만 공장 내부 사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손 대표의 먹 공장은 전통 수공업 제조 방식에서 조금 진전된 형태의 제조 방법을 유지하고 있었다. 손 대표의 말에 따르면 원래 전통 먹은 소나무를 태워서 얻는 그을음에 민어부레에서 얻는 아교를 섞어서 만들어야 하는데, 대량 생산을 위해 재료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먹의 재료는 다름아닌 석유화학 제품인 '카본'이었다. 여기에 아교성분을 지닌 '젤라틴'을 혼합해 재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예전에 절구에 넣고 곱게 다지는 과정은 떡집에서 사용하는 '스텐 롤러'를 이용해, 조금은 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카본과 젤라틴을 혼합한 후 이를 찐 뒤 마치 떡을 만드는 과정처럼 '스텐 롤러'에 넣고 인절미 덩어리를 뽑듯이 반죽 덩어리를 만들었다. 반죽덩어리에서 적당량을 떼어내 둥글게 손으로 치댄 후에 금속틀에 넣는다. 그런 뒤 손잡이를 조금씩 돌려 틀에 가해지는 압력을 조절하면서 성형압착한 후 이를 틀에서 떼어낸 후 건조한다.

손 대표는 먹 제조과정에서의 핵심은 건조과정에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덥고 습기가 많은 여름철에는 먹 제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 이 때문에 먹은 사계절 중 주로 선선한 날씨를 유지하는 봄과 가을에 가장 많이 만든다고 설명했다.

아마도 이 같은 제조 특성은 먹에 들어가는 '아교'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성형을 끝낸 먹은 건조실에서 보통 3개월에 걸쳐 자연건조하는데, 제대로 치대지 않은 먹은 갈라지거나 휘어지기 때문에, 상당히 세밀한 제조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뒤틀림을 방지하기 위해 습도나 온도에 따라 하루에도 서너번씩 건조틀에서 위치를 바꿔주는 과정을 1개월 정도 거쳐야 한다고.

3개월간의 건조를 마친 묵은 두들겼을 때 '깡~깡' 소리가 날정도여야 벼루에서 잘 갈리기에 보통 봄까지 제조를 마치고 여름철에는 후작업, 즉 먹에 색칠을 하고 포장하는 단계를 진행한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나이였다. 손 대표가 82세로 으뜸이고 가장 중요한 공정인 배합과 분쇄 과정은 78세의 윤석용씨가, 그리고 가장 힘든 프레스 공정은 60세의 김아무개씨가 맡고 있었다.

어릴적 추억 떠올리며, 처가 헛간에서 먹 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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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 손선호 먹' 손선호 대표 ⓒ 추광규

다음은 지난 20일 만난 손선호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 먹 제조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가.
"처가가 울산이다. 울산 태화리에 1953년경 먹을 만드는 공장이 10여개 남짓 있었다. 이곳에서 먹을 제조하는 사람이 함경도 원산 사람이었다. 당시 나는 1951년도에 상이용사로 제대한 후 켈로부대에서 1년 남짓 있다가 합동잉크 경리를 보고 있었는데 장모가 먹 만드는 사람 중 한사람이 이북 사람인데 돈을 많이 번다고 한번 가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새파랗게 젊을 때니까 안 한다고 했다. 하지만 장모가 한번만 가보라고 해서 가서 먹 만드는 것을 지켜보니, 월남 하기 전 어렸을 적 해주에서 보던 추억도 생각이 나고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55년 먹 제조 인생의 시작이었다."

- 그렇다면 바로 먹 공장을 차린 것인가?
"그랬다. 마침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처가 헛간에서 먹을 제조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람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돈을 다 까먹었다. 곤란해 하고 있는데 그 동네에서 먹을 만들던 '주봉인'이라는 사람이 나를 찾아 왔다. 먹을 팔아주면 기술을 전수해 주겠다는 거였다. 당시 부산에 먹을 내다 팔아야 하는데 깡패들이 많아서 어수룩한 사람이 전대를 차고 다니면 돈을 뺏고 두들겨 맞는다는 거였다. 그래서 몇차례 주씨의 먹을 부산 필방에 가져다가 파는 것을 대행해 줬고 이 사람한테 본격적인 기술을 배웠다.

헛간에서 물건을 만들었는데, 가마니에 먹을 많이 써서 본격적으로 물건을 만든 지 8개월 만에 본전을 다 찾았다. 당시 부산 상권은 이북사람이 쥐고 있었는데 내가 가기만 하면 대접을 받았다. 또 당시 부산 동명상사 최백송이라는 분이 나를 많이 도와줬는데 이분이 한번은 일제 먹을 보여주면서 이대로 만들어 줄 수 있느냐고 제안해 만들기도 했다. 요즘 말로 하면 짝퉁 상품을 만들어서 팔았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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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 건조과정. 내부는 허술했지만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었다. 건조과정에서 온도와 습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 추광규


- 전통먹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보통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드는데 제대로 된 전통먹은 소나무 뿌리를 태워서 만든 먹이다. 송연묵이라고도 하는데 보통 소나무를 베어낸 후 몇 십년 있다가 뿌리를 캐보면 송진덩어리가 나오는데 이걸 가지고 만드는 게 진짜 먹이다. 그윽한 향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예전 서당에서 주로 쓰는 먹은 주먹으로 꽉 쥐어서 만든 수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크기는 박카스병 크기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옆에 보면 주름이 새겨져 있는 것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시대부터 원재료 구하는 것이 힘들어 전통먹은 사라지고 지금은 카본을 주재료로 해서 만들고 있는 것이다."

- 먹의 전성기는 언제였는가.
"먹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 가장 호황을 누렸던 것 같다. 박 대통령이 일본에 갔는데 그곳에서 공식문서에 서명하는데 먹과 붓을 내놓더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귀국한 후 문교부장관에게 명을 내려 각급 학교에 서예활동 강화를 지시했고 덩달아 먹 공장들도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 당시 내 기억으로 하루에 3천개 이상을 만든 것 같다. 만드는 대로 팔려 나갔다."

- 먹 공장의 애로사항은 무엇인가.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애로다. 내 경험으로 카본이 시커멓기는 하지만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내 경우만 봐도, 50년 이상 제조했지만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공장에 와서 카본을 만지고 시커멓게 되는 것을 보고는 일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3년 이상을 배워야 제대로 한몫 하는데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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