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 물은 차오르는데 "절대 가라앉지 않는다"고?

화산과 호수의 나라, 니카라과에 가다! (6) 뚜벅이 배낭족들의 천국, 그라나다

등록 2011.03.05 15:28수정 2011.03.0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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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라나다의 아침이 밝았다. 밤새 고요하던 '호스텔 오아시스(Hostel Oasis)'는 어느덧 배낭객들의 분주한 움직임에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집에서는 건너 뛰기 쉬운 아침시사, 여행 중에는 이상하게도 꼭꼭 챙겨 먹게 된다.

오아시스의 카페테리아에서는 미화 2~4달러 이내로 아침식사를 먹을 수 있다. 니카라과 사람들의 힘의 원천이라는 가요 삔또(gallo pinto). 이게 아주 기막히다. 입에 짝짝 붙는 것이 씹을수록 고소하고 간간하여 자꾸만 손이 간다. 우리도 아침부터 그들이 말하는 힘을 좀 얻고자 가요 삔또를 주문했다. 그도 그럴것이 오늘은 그라나다 시가지를 쭉 둘러보는 것 뿐만 아니라,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졌다는 Las Isletas에 가볼 예정이니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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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al Plaza 그라나다 시가지 한 중간에 있는 광장 공원이다. ⓒ 하연주 박인권


기대했던대로 중앙 광장은 오늘도 활기차다. 역시 최고의 관광도시답게 단체 관광을 온 사람들과 관광버스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부분이 유럽에서 온 이들이다. 각자 가슴에 번호 명찰을 달고 있다. 한낮의 뜨거운 햇빛 아래에 있노라면, 에어컨 버스를 타고 쉽게 이동하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광장 한쪽에는 관광객을 기다리는 마차들이 일렬 종대로 손님맞이 대기 중이다. 그러나 택시 타듯이 순서대로 마차를 탈 필요는 없다. 가이드 북에서는 관리가 잘 되어보이는 말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주인들이 말 관리에 신경을 쓴다는 거다. 결국 말들은 잘 먹고 잘 단장을 하니 행복하고, 그 말과 마차를 이용하는 관광객도 기분이 좋을 테고, 그 덕분에 열심히 노력하는 주인이 합당한 돈을 벌 수 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윈-윈(win-win)' 하는 셈이다. 

우리 부부도 나름대로 마차를 골라 한 시간 정도 그라나다 투어를 했다(미화 15불 정도). 솔직히 마차투어는 유명한 관광 상품이지만 그라나다를 제대로 보는 방법은 아닌 것 같다. 그라나다는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볼거리, 먹거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니,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뚜벅이 여행이 제격이다. 만일 탈 것을 이용한다면 중간중간 멋진 카페에 가본다던가, 길바닥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사람,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장난짓을 놓칠테니 말이다. 게다가 그늘로 들어가기만 하면 꽤 선선하다.

우리는 다시 뚜벅이가 되어 그라나다의 몇몇 유명한 곳을 우리식으로 여유있게 둘러 보기로 했다.

과거의 아픔을 품어 안은 도시


Iglesia La Merced. 그라나다 시가지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종탑이 있는 곳이다. 1534년 건축되어 1670년 카리브해 해적, 헨리 모건(Henry Morgan)이 불태워 버린 것을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는 듯 시커멓게 불에 그을린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 모습이 엄숙하고 쓸쓸해 보인다. 반면, 내부로 들어서니 그린색 벽면과 햇빛에 반사되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그저 화사하기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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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lesia La Merced 성당 불에 그을린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 하연주 박인권


이 성당의 압권은 종탑에서 내려다보는 그라나다 시내 풍경일 것이다. 미화 1달러의 입장료를 주면 종탑까지 올라갈 수 있다. 종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어찌나 좁은지 한 사람만 조심조심 오를 수 있을 정도다. 마치 소라고둥 속을 타고 올라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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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다란 계탄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곧 그라나다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 하연주 박인권


비좁은 계단을 오르니 곧, 시야가 탁 트이면서 그라나다 시가지 전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붉은색 기와의 스페인식 건물들과 곳곳의 오래된 성당들이 가장 눈에 띈다. 그리고 묵묵히 그라나다의 남쪽을 지키며 서 있는 거대한 몸바초 (Mombacho) 화산과 마치 바다처럼 보이는 니카라과 호수. 과연 화산과 호수의 땅이라는 말이 실감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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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내려다본 시가지 풍경 ⓒ 하연주 박인권


종탑에 오르니 맑고 고울 종소리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종 끝에 달린 줄이 밑으로 내려와 있어서 손으로 잡아당기기만 하면 울릴 판이다. 거의 '날 한번 울려봐' 하며 유혹하는 정도다. 한번 당겨봐? 하는 치기가 생기지만, 역시나 벽에 "종을 치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이 크게 적혀 있다. 호기심에 종을 울리는 관광객이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만약 난데없이 종을 울렸으면 아마도 동양인 관광객 최초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찾은 카페, 'The Garden Cafe'. 그라나다에서는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곳도 그 중 한 곳. 오후 3시까지 영업을 해 아침과 점심을 서비스 하는 곳이다. 종업원을 따라 코너로 들어가니 아담한 스페인 콜로니얼 양식의 'ㅁ식' 정원이 나타났다. 마나과는 일반적으로 앞 정원과 뒷 정원을 갖춘 꼴이지만, 그라나다는 스페인의 영향으로 가운데 정원이 있는 건물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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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arden Cafe. 그라나다의 가장 매력있는 카페 중 하나다. ⓒ 하연주 박인권


이 카페는 니카라과 산 마르코스(San Marcos)의 한 대학에서 함께 공부하던 캘리포이아 출신과 마나과 출신의 두 젊은이들이 의기투합하여, 2007년 오래된 집을 개조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메뉴는 스페인어와 영어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영어 메뉴가 있다고 종업원이 영어를 할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메뉴에는 없지만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부탁했다. 그러나 종업원은 영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카페...아이스...믹스." 손짓발짓 설명을 하니, "카페 꼰젤로?"라고 되묻는다. 뭐든 가져오라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최고의 아이스커피를 먹을 수 있었다. 그후에도 '카페 꼰젤로'라는 말을 기억하고 아이스커피를 주문할 때마다 써먹었지만, 어째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커피를 차갑게 먹질 않는 걸까? 항상 뜨거운 커피와 얼음을 따로 내주기 일쑤다. 아직도 '카페 꼰젤로'의 본 의미를 모르겠다. 아무튼 아이스커피 하나 제대로 못 시켜도 '스타벅스' 없는 그라나다 카페 문화가 우린 참 마음에 든다.

다음에 우리가 들른 곳은 Antiguo Convento San Francisco. 1529년에 수도원으로 만들어졌으나 앞서 얘기했던 해적 헨리 모간의 방화로 파괴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자칭 니카라과 대통령' 미국인 윌리엄 워커(William Walker)에 의해 한번 더 철저히 불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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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guo Convento San Francisco 수도원. 하얀색 건물 같지만 원래는 파란 색으로 색칠 된 것이었다. ⓒ 하연주 박인권


도대체 이 수도원이 무슨 죄라고. 그라나다의 시작과 함께 세워져 그 후 두 차례나 불태워진 이 수도원은 그라나다의 역사가 그리 평온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다행히 1989년 스웨덴 정부의 도움을 받아 그나마 오늘날의 모습으로 복구되어, 현재는 박물관으로 개방하고 있었다. 복원 당시 건물 색은 파란색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몇년도 안되어 페인트가 비에 다 씻겨나가 지금은 하얀색이다. 당시 쓰여진 파란색 페인트는 분명 불량품이었을 것이다. 뒷이야기가 궁금하지만 그라나다사람들은 이 점에 별로 신경쓰는 것 같지 않다.

입장료 미화 2달러를 내고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봤다. 한쪽 벽면에는 니카라과의 어제와 오늘이 있기까지 역사를 벽화로 그려놓았다. 수도원의 한 가운데 있는 'ㅁ'자 형식의 정원 둘레에는 30미터가 훌쩍 넘는 야자수로 가득하다. 몇 개의 방안에는 니카라과 고대 유물과 그림, 그리고 니카라과 호수의 자파테라(Zapatera) 섬에서 발굴된 오래된 석상이 진열되어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예술작품

몸바초 화산과 더불어 그라나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연물은 바로 Las Isletas가 아닐까? Las Isletas는 2만여 년전, 몸바초의 화산활동이 있을 당시 그 분출물이 퍼져나와 만들어진 365개의 작은 섬들의 집합체다. 말하자면, 몸바초의 아들 딸인 셈.

Las Isletas를 탐방하려면 그라나다 호숫가에서 작은 동력배를 타거나 카약(kayak)을 타고 직접 노를 저어 가야한다. 우리가 택한 것은 카약. 씨애틀에서 카약을 타봐 그 매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햇살이 따가와 지기 시작한 이른 오후, 우리는 그라나다 동쪽 호숫가로 향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어찌나 바람이 불던지, 물살이 범상치 않았다. 우리가 고용한 가이드 역시 평소보다 바람이 세서 Isletas 입구까지 가는 게 쉽진 않을 거라 말한다. 그리고 만일을 대비해서 소지품을 넣으라며 방수 가방을 건내주었다. 그러나 웬걸, 이게 정말 우리가 알고 있던 '카약'이 맞나? 플라스틱으로 어설프게 만든 조각 배위에 등받이랍시고 마치 삽날을 붙여놓은 꼴이다. 게다가 카약 안은 깊이가 전혀 없어서 그냥 유선형의 플라스틱 통 위에 걸터앉는 것만 같다. 이걸 타고, 겁나게 요동치는 물결 위를 노 저어갈 수 있을까? 시작도 전에 걱정부터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나가지도 않았는데 물이 무섭게 배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다 곧 카약 안은 물로 가득 차버렸다. 이제는 배 안에 들어온 물이 다시 밖으로 차고 넘치는 판이다. 이건 뭐, 후룸라이드 저리가라다. 이러다 정말 배가 가라앉을 것만 같아서 가이드 총각한테 물어보지만, "절대 가라앉지 않으니 걱정마세요!" 단호히 말한다.

망했다! 바지 주머니에 디지털 카메라를 넣어둔 걸 깜박 잊고 있었다. 온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물이 차들어와 무거워진 카약은 노를 저어도 저어도 앞으로 나갈 생각을 안하는 것 같다. 어느새 가이드 총각과 거리는 멀찌감치 벌어져 버렸다. 그런데 이 양반은 그렇게 사이가 벌어졌는데도 만사태평, 자기 갈길만 가고 있는게 아닌가? 슬슬 약이 오른다. 어쩔수없이 해병대 유격 훈련처럼 '하나, 둘, 하나, 둘, 유격, 유격'을 외치며 미친듯이 노를 저었다. 마침내 한참을 저어서야 가이드 총각이 일찌감치 기다리고 있는 Isletas 입구에 이르렀다.

속옷까지 젖은 상태니 카메라가 무사할리 있나? 이미 물에 흠뻑 젖어 작동 정지 상태. 게다가 방수 가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안에는 이미 물이 새들어온 후였다. 다행히도 비상용으로 가져간 여분의 디지털 카메라는 별 탈이 없었다.

가이드 청년은 그제서야 우리가 탔던 카약을 뒤집어 탈탈 털고, 방수 가방 안의 물기를 잘 닦아준다. 그리곤, Isletas 입구에 도착했으니 앞으로는 물살이 세지 않을 거라며 걱정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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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이렇게 생긴 카약은 처음 본다. 카약 안에 차고 들어온 물을 털어내는 중이다. ⓒ 하연주 박인권


다시 노를 젖기 시작. 언제 그랬냐는 듯, 호수의 물살이 정말 평온해졌다. 찰랑찰랑. 물을 스치는 소리와 이름모를 새소리가 평온히 들려온다. 섬 사이의 좁은 물길을 따라가보면, 고개를 축 떨어뜨리고 서있는 나무, 연둣빛의 생글생글한 물풀이 햇살에 향기롭게 반짝인다. 정말 신선 놀음이 따로 없구나. 이것이 바로 자연이 만들어 놓은 최고의 예술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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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피어있는 하얀 꽃을 보니, 개구리 왕눈이라도 만날 것 같다. 하늘과 호수가 맞닿은 곳에서 찰랑찰랑 물소리를 내며 카약을 즐겼다. ⓒ 하연주 박인권


Las Isletas 안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섬에 사는 사람들은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그들의 작은 배를 이동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라나다에서 가장 비싼 호텔도 사실 이곳에 있다고 한다. 실제로 여기저기에서 섬을 판다는 표지말을 볼 수 있었다.

니카라과 호숫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나무. 마치 코코넛 열매처럼 생겨서 물어보니 먹을 수 없는 것이란다. 하긴, 맛 좋은 열매였다면 이렇게 흔히 볼 수 있진 않을 테지. 투박해보이는 열매와는 달리 꽃은 화려한 불꽃모양 혹은 촤라락 퍼진 여인의 붉은 치맛자락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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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호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열매와 그 꽃이다. ⓒ 하연주 박인권


카약을 즐기는 동안, 어찌나 햇볕이 강한지 살갗이 지글지글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한 서너 시간 정도 탔을까? 깜박하고 썬크림을 다리에 꼼꼼히 바르지 못한 게 큰 실수였다. 입고있던 바지 라인을 경계로 허벅지부터 발등까지 마치 커피스타킹을 신은 것처럼 익어버렸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중앙 광장을 거쳐 호스텔로 가는 길에 아름다운 음악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분수대 앞, 네이티브 인디언 복장을 한 이들이 그들의 전통 악기를 들고 노래와 연주를 하고 있었다. 다른 한 쪽에선 통키타를 든 젊은 여성이 멋진 목소리를 뽐내는 중이다. 이렇게 탁 트인 광장에서 자유로히 거리 공연을 하는 이들, 드문드문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벤치에 앉아 애정을 나누는 연인, 그리고 손수 만든 수공예품을 파는 장사꾼들을 보노라면, 마치 우리네 마로니에 공원을 보는 것 같다. 이곳은 그렇게 늘 자유와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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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광장 거리 공연과 해질 무렵의 몸바초 화산 모습이다. ⓒ 하연주 박인권


하루 종일 그라나다 시가지를 돌고 유서깊은 건축물을 보면서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작품에 감탄을 하고, Las Isletas를 보며 자연의 경의로움에 놀라움의 탄식을 토해냈다. 그라나다는 그렇게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운 합작품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11년 1월 2주간의 니카라과 여행의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하연주, 박인권 부부가 공동 작성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2011년 1월 2주간의 니카라과 여행의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하연주, 박인권 부부가 공동 작성하였습니다.
#그라나다 #니카라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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