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추기경께는 '인의 장막'이 없을까

전달 안 된 '면담요청서', 공개질의에 묵묵부답... 정보의 한계 드러내

등록 2011.03.10 19:15수정 2011.03.1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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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에게 전달되지 않은 '면담요청서'

2008년 8월 하순, 여러 달 지속되었던 '촛불정국'이 정부의 '검거선풍'을 불러일으키던 때였다. 명동성당 후미진 구석 건물 벽 앞에서 다섯 명의 시민이 5일 동안 단식농성을 했다. 두 명은 여성이었고, 그 중 한 명은 노인이었다.

경찰의 야만적인 폭력이 동반되는 검거선풍의 와중에서 그들은 절박한 상황과 '촛불시민'들의 심정을 종교계 지도자들에게 호소해보자는 의견을 공유하게 되었다.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상황에서 종교계 지도자들에게 조정 역할을 간절히 호소하여 난국 해결을 기대해보자는 뜻이었다.

그들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에게 면담요청서를 작성하여 등기로 우송한 다음 답변을 기다리다가 급한 마음에 교구청 건물 앞에서 단식을 시작했던 것이다.

다행히 단식 5일째 되던 날 정 추기경과의 면담이 성사되어 그들은 단식을 끝내었고, 그 후 대체적인 면담 내용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 공개되었다.          

그때로부터 3년이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당시 단식에 참여했던 한 분이 추기경 면담 후 인터넷 매체에 올렸던 글을 찾아서 읽어보았다. 그리고 글 중의 다음 대목을 거듭 읽었다.

추기경님을 만나 뵙고서야 면담요청서가 추기경님께 보고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추기경님이 우리의 상황을 이해 못하셨고, 그저 당신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단식하며 기다리시는 줄 아시고는 마음이 아프셔서 음식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고 계셨답니다.


 대화 도중 추기경님은 '한겨레'부터 '조선일보'까지 두루 구독을 하고 계셨는데, 그러면서도 작금의 실상이 어떤지를 자세히 알거나 심각하게 느끼지는 못하셨던 바, 명동성당 앞에서도 자행되고 있는 촛불시민들에 대한 경찰의 야만적 폭력의 실상과 그로 인한 피해와 고통에 대해 자세한 말씀을 드렸더니 놀라시다 못해 경련까지 일으키셨습니다.

(추기경님 성향이 알려진 바 좀 보수적이시고, 더구나 주변에 보필하는 신부님들은 연로한 보수적 신부님들이 대부분이라서 이쪽의 정보가 상당 부분 차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경우는 집무 당시 함세웅 신부님이 한 때 비서신부였다고 합니다.)

면담자들의 이런저런 실상 보고에 대해 추기경님은 깊은 우려와 안타까움을 표하시며 교회가 세상의 불의에 대해 결코 무관심할 수는 없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시고, 현 시국과 촛불시민, 그리고 구속자들을 위한 기도를 해주시면서 면담을 마쳤습니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행동 방향에 대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하실 수도 없었겠지만), 어떤 변화는 분명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습니다.

위 글 중에서도 내가 특히 관심을 갖는 부분은 맨 위 첫 번째 문장이다. '추기경님을 만나 뵙고서야 면담요청서가 추기경님께 보고되지 않은 것을 알았다'는 말을 접하며 충격적인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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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에서 단식하는 천주교 신자들 2008년 8월 18일 천주교 신자들이 서울대교구청에 정진석 추기경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바 있으나 전혀 답신을 받지 못한 채 8월 23일부터 교구청 주교관 앞에서 면담을 요청하며 단식을 시작했다. ⓒ 한상봉


추기경에 대한 사상 초유의 '공개 질의'

대뜸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같은 해 9월 초순의 일이다. 수원교구의 한 사제가 한국천주교회의 대표격인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께 4개 항의 '공개질의'를 제시하며 일주일 동안 단식을 했던 일이다. 그것을 촉발시킨 사연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에 대한 통상적 예에서 벗어나는 '안식년' 발령으로 말미암아 교회 안팎에서 큰 논란이 일게 되었고, 급기야 서울교구의 원로 사제 4분이 정 추기경을 면담하게 되었는데, 함세웅 신부가 공개한 '면담록'에 매우 놀라운 과거 사실 한 가지가 담겨졌다. 그 대목을 소개해 본다.

이 자리에서 함세웅 신부는 추기경에게 평소 하기 어려운 말을 꺼내었다. 김대중(토마스 모어)씨가 대통령이 되어 어느 날 정 추기경을 청와대에 초청하여 함께 식사를 나누신 적이 있었는데, 김대중씨 비서진과 자녀들이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1980년 광주항쟁으로 김대중씨가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 수감 중이었을 때, 1981년 초 김대중씨의 가족들이 당시 청주교구장으로 정진석 주교를 찾아가 여러 차례 김대중씨의 '봉성체'를 청했지만 끝내 거절했다는 것이다. 전두환 신군부의 압력도 있었겠지만 교회지도자의 이런 태도 때문에 그 가족들은 "그러한 교회와 사목자에 대해 늘 깊은 회의와 불신이 남아 있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함세웅 신부는 "사형수가 청한 봉성체를 어떻게 사제가 거절할 수 있는가 고민했다"고 전하자, 정 추기경은 묵묵부답이었다.

이 사실을 처음으로 접한 수원교구의 그 사제는 너무도 충격이 커서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랜 번민 끝에 그는 정 추기경에 대한 '사상 초유'의 공개 질의를 제시하고 답변을 촉구하는 뜻으로 6일 동안 단식을 했던 것이다. 그때 그 사제가 제시한 4개 항의 공개질의를 소개해 본다.

1. 만일 추기경님의 수하에 있는 신부가 어느 사형수의 간절한 봉성체 요청을 거절하였다면 어떠한 처벌을 내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잘한 일이라고 하시겠습니까?

2. 청와대에서 초청되어 식사를 나누실 때, 과거의 그 간청을 거절하신 비목자적 행위에 대해 늦게나마 사과를 하셨는지요? 아니면 지금이라도 사과하실 용의가 있으신지요?

3. 안중근 토마스 의사에 대한 홍 신부의 목자적 방문과 종부(병자)성사 집전을, 당시 서울교구장이신 뮤텔 주교님께서 살인자 운운하며 반대하였고 홍 신부를 처벌까지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오.

4. 순수 가정입니다만, 앞으로도 만일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건희 재벌회장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되었다 할 때(억울하게건 아니건 간에) 그 사형수가 정 추기경님께 기도와 도움을 간청한다면 역시 거절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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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을 든 예수상 방상복(구들장으로 개명) 신부가 원장으로 있는 경기도 안성의 ‘유무상통마을’ 성당에는 못을 빼서 손에 들고 있는 예수상이 있다. 2008년 9월 8일 오전 수원교구의 방상복 신부는 정진석 추기경(서울대교구장)에게 답변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서울대교구 <굿 뉴스> 게시판에 올렸다. 방 신부는 9월 1일 공개된 서울대교구 정의구현사제단 원로사제 4명의 정진석 추기경 ‘면담록’을 읽고, “밤잠을 설치며 마음이 아려서” 공개 질의를 게시판에 올리게 되었다고 <가톨릭뉴스/지금여기>에 밝혔다. 당시 방 신부는 추기경의 답변을 기다리며 6일 동안 단식을 하겠다고 밝혔다. ⓒ 한상봉


추기경의 '정보 한계'에 대한 의심

이 공개질의에 대한 정 추기경의 답변은 물론 없었다. 연로하신 추기경께서 인터넷을 이용하시는지 안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정 추기경은 수원교구 사제의 공개질의를 전혀 모르고 있을 공산이 크다. 맨 위에 소개한 단식 신자들의 면담요청서 건에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듯이 정 추기경은 '인의 장막' 안에서 외부 정보와 유리되어 있을 개연성이 큰 것이다.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그런 일이 왜 생기는 것일까? 주변 주교들과 신부들이 자신들의 이념 성향 때문에 정 추기경을 보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보를 차단하는 것은 아닐까? 또는 사형수의 봉성체까지도 거절할 정도로 극단적인 면을 지닌 정 추기경의 성품을 잘 헤아린 나머지 스스로 알아서 기는 것은 아닐까?

두 가지 문제는 확연하다. 하나는 한 사제가 사상 초유의 공개질의와 6일 동안 단식을 할 정도로 정 추기경이 어떤 문제성과 엄밀히 결부되어 있다는 점이고, 또 한 가지는 정 추기경이 외부 정보들을 폭 넓게 수렴하지 못하는 '한계' 가능성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한계 가능성이 명확하다면 정보화 시대에 그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4대강 파괴사업'과 관련한 정 추기경의 인식 수준과 무책임한 발언은 큰 우려를 갖게 하는데, 그것 또한 정보의 한계로부터 유발되는 게 아닌가 싶다.        

어느 분야든 정점에 있는 사람은 '인의 장막'을 경계해야 한다. 이승만의 몰락은 '인의 장막'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현 이명박 대통령도 '인의 장막' 안에 갇혀 있다. 그는 만나고 싶은 사람과만 만나고, 자기 사람들만 요직에 앉히며, 일방통행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런 형태가 정 추기경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

다시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참회와 속죄의 시간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죄와 허물이 있을 수 있으며 시행착오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겸손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쇄신이다. 개인이나 공동체나 쇄신이 발전을 낳는 법이다.

덧붙이는 글 | 함세웅 신부는 김수환 추기경의 비서를 비낸 적은 없지만,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서울대교구 홍보국장으로 김수환 추기경을 측근에서 보좌한 시절이 있었다. -필자 주

이기사는 <가톨릭뉴스/지금여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함세웅 신부는 김수환 추기경의 비서를 비낸 적은 없지만,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서울대교구 홍보국장으로 김수환 추기경을 측근에서 보좌한 시절이 있었다. -필자 주

이기사는 <가톨릭뉴스/지금여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4대강사업 #정진석 추기경 #정의구현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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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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