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이 '의무급식'이 돼야 하는 이유

[서평]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등록 2011.03.10 12:05수정 2011.03.1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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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미국 공화당의 상징이다. ⓒ www.gop.com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이성적 동물이다. 그런데 이 일상적인 명제를 당신은 한번이라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지? 알겠지만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 이 자연스러운 우리의 능력은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기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상당히 복잡한 체계다. 
  
물론 언어를 단순히 정보를 전달한다는 기능의 관점에서 파악한다면 단어는 항상 동일할 뿐이다. 하지만 반대로 정체성의 관점에서 파악한다면 언어는 각 개인마다 좁혀질 수 없는 특유의 고유성을 지닌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일찍이 얘기했던 것처럼 단어에 대한 개개인의 경험이 공유될 수 없다면, 그 단어는 각자에게 완전히 다른 것,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여기 '오마이뉴스'라는 한 단어가 있다. 이 단어가 과연 국적, 이념, 지지정당, 성별, 연령, 월수입, 혹은 출생지를 막론하고, 글을 읽을 수 있는 인간이라는 모든 개체에게는 같은 존재로서 이해될까? 보장컨대 아마 결코 그렇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언어는 단순히 '언어'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규칙을 습득하고 방대한 규약사이에 자신의 생각을 끼워 넣는 일련의 복잡한 작업을 말하는 것이 된다. 동시에 그 언어에 결합된, 결코 보편화 될 수 없을 개인 경험까지 되새기면서 말이다.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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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삼인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UC버클리 대학의 교수인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이런 언어가 가지고 있는 양 극단의 두 가지 특성을 '프레임(frame)'이란 개념을 통해 설명하려 한다. 그는 책에서 이 '프레임'이란 개념이, 언어가 가지는 가장 기본 정보전달의 기능을 넘어서 개인 정체성 차원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더 나아가 정치적으로도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이 '프레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떠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그 자체라 저자는 말한다.

언어의 예를 들어보자.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언어를 접하는 매 순간순간 그 단어와 표현을 통해 그 언어가 설명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자연스럽게 애쓰게 된다고 주장한다. 단적인 예로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 당신은 이제 더 이상 '프레임'이란 단어를 영화나, 기계 장치의 틀로 생각하며 글을 읽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당신은 이 글을 읽는 순간 만큼은 '프레임'하면, 먼저 '언어'와 '사고'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당신의 프레임에 대한 확대된 관점과 생각의 틀은, 이 글이 끝나는 순간까지 당신을 지배할 것이다.


저자인 조지 레이토프는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말하는데, 인지과학자이기도 한 그는 이러한 현상은 반복되는 이해 자체가 뇌의 시냅스들을 최대한 가깝게 연결하도록 물리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그리고 이것을 '언어의 프레임'이라 말한다.

그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이유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과연 어떤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야기할 것인가. 여기 '자유'란 단어가 있다. A라는 집단은 진정한 자유란 자유롭게 돈을 벌 '시장의 자유'라 주장하고, B라는 집단은 진정한 자유란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발언하고 투표할 '정치의 자유'라 주장한다고 하자. 어느 쪽의 자유도 분명 자유와 연관되어 있지만, 양쪽의 자유는 또한 이처럼 서로 투쟁하는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A라는 집단이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서 B보다 먼저 '시장의 자유'를 말했고 그것이 옳은 것이라 대중에게 반복해서 주장했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레이토프의 주장대로 그것을 듣는 이들은 점차 자유라는 개념을 그들이 제공하는 해석과 가까운 것으로 파악하게 돼버리고 말고, 심지어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마디로 A가 말하는 자유의 프레임에 지배당해 관점이 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의 지배가 더 위험한 것은, A의 주장이 사실 틀린 것이라 반박하게 되는 B의 입장이다. 처음에 B는 A와 달리, 진정한 자유란 '시장의 자유'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사실 '정치의 자유'가 더 소중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고, A의 입장을 비판하기 위해 B는 A가 속해 있는 곳으로 호기 있게 뛰어들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마음으로 A가 제시한 자유의 프레임을 학습하고 또 반복한 B는, 그러나 어느 날 비판대신에 A의 입장에 일정부분 동조하게 되어버렸다.

이것은 그릇된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서조차 우리는 그러한 주장을 이해해야 하고, 때문에 자유라는 개념을 상대가 제시한 프레임을 통해 파악함으로써 그 해석에 친근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를 통한 투쟁은, 대개 프레임 자체를 '먼저 만들어낸 자'들이 승리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힘없는 서민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이유며, 반대에 입장에서 섰던 사람이 변질되는 이유이다.  

'무상급식'이 '의무급식'이 되어야 하는 이유

이러한 언어 프레임의 특성을 설명해서 조지 레이코프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건 미국 진보, 아니 전 세계 진보 세력에 대한 특별한 충고다. 이것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조금은 이상한 제목 자체가 그것을 암시한다.

미국에서 코끼리는 공화당을 대표하는 동물로, 그걸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진보세력이 그들의 언어를 반박하기 위해 그들의 프레임 속에 기어들어가는 짓을 해선 안된다는 걸 설명한다. 기실 그는 이 책에서 그동안 미국 보수 세력의 승리는, 보수의 프레임을 통해 진보가 프레임을 제시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결국 진보는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아무 것도 모른 채 그 보수의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대기만 했다고 비판한다.

조지 레이코프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통해 진보에 제공하는 충고는 이것이다. 먼저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일회의 논쟁에서 승리하거나 패배하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프레임의 틀을 먼저 만들어내어 대중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적을 자신의 프레임에 끌어들여 우리의 규칙에 따라 게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만일 이것이 힘들다면 최소한 상대편을 반박하기 위해 상대편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해 그들의 프레임을 공론화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령 '부자급식'이라는 용어를 막기 위해 민주당이 내세운 '무상급식'이, 얼마 전 민주당 서울시당 일부 지역협의회와 서울시교육청, 일부 자치구에서 '무상'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공짜'라는 부정적 의식을 고려해 '의무급식'으로 용어가 바뀐 사례가 좋은 예다. 물론 반대하는 측은 언어가 가지는 원래의 틀, 즉 정보전달의 기능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하겠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처럼 조지 레이코프의 주장은 현재의, 그리고 앞으로의 한국 정치현실에도 귀중한 참고가 된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책의 가치를 생각해볼 시점이다.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무상급식 #의무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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