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다 CJ 햄, 하지만 이걸론 부족하다

우리나라 식품이력추적제의 허술함... 기업과 시민 모두 안심할 수 있는 제도 개선 필요

등록 2011.03.10 20:10수정 2011.03.1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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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조작 콩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진 씨제이제일제당의 '영양쏙쏙 김밥햄'과 사조대림의 '숯불구이맛 김밥햄', 신라수산(유통업체는 씨제이제일제당)의 '알찬소시지'. ⓒ CJ·사조대림


서울환경운동연합은 9일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햄과 소시지에 유전자조작(GMO) 원료가 사용되고 있다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서울환경운동연합은 현재 유전자조작 식품 표시제도의 허술함을 지적하며 2008년 정부가 약속했던 '유전자조작식품 표시제'가 즉각 강화되어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또한 기자회견 후 식품기업들에게 원재료 관리 상태에 대한 정보공개와 향후 유전자조작 식품 사용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습니다.

10일, 그에 대한 첫 번째 답변이 도착했습니다. CJ 제일제당은 공식문서를 통해 이번에 문제가 된 제품(영양쏙쏙 김밥햄, 알찬소시지)에 사용된 원료는 각각 미국과 중국에서 수입한 것인데, 원료 생산업체에서 보내온 '유전자조작 구분유통증명서' 및 '실험증명서'를 믿고 제품에 사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의도적이 아닌, 비의도적 혼입에 의해 유전자조작 원료가 검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CJ 제일제당은 향후 유전자조작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관리한 제품만을 생산 보급할 계획이라고 약속했습니다. 또, CJ 관계자는 "식품기업은 소비자의 선호에 민감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원하는 원료만을 사용해 더욱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누리꾼들과 서울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의 관심과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부터 유전자조작 원료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끌어 낸 것입니다.

너무나 미흡한, 우리나라 식품이력추적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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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된 콩에 대한 수입신고를 확인한 증명서 ⓒ 서울환경운동연합


'영양쏙쏙 김밥햄'에 사용된 분리대두단백은 미국산이며 '비의도적혼입률' 0.9% 이하로 관리되었다고 하는데요. CJ 제일제당은 그에 대한 구분유통증명서를 환경운동연합에 보내왔습니다. 또 '알찬소시지'에 사용된 원료에 대한 실험증명서도 함께 보내왔습니다. 이 증명서에 따르면 콩은 중국산이고, 0.1% 시험기준을 통과한 것이라고 합니다.

정부가 확인해준 서류에서도 유전자조작식품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에서 왼쪽 서류가 '영양쏙쏙 김밥햄'에 사용된 미국산 콩에 대한 서류이고, 오른쪽 서류가 '알찬소시지'에 사용된 중국산 콩에 대한 신고확인증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의문이 하나 듭니다. 기업에서는 구분해서 관리하고 있다고 하고, 정부에서 인정한 수입신고서 확인증에서도 유전자조작식품 표시를 면제하고 있는데, 서울환경운동연합에서 조사할 결과에는 왜 유전자조작 원료가 검출이 되었을까요? 바로 이 지점이 현재 표시제와 식품관리의 허술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나라는 식품이력추적제도와 같은 식품안전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제도가 미흡합니다. 식품이력추적제도는 식품과 식품원료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생산, 유통, 판매되었는지를 확인하고 관리하는 제도입니다. 즉 식품의 생산, 유통, 판매, 소비의 각 단계를 확인할 수 있어 발생될 수 있는 식품안전 사건 사고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으며 발생원인과 책임기관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우리나라도 식품이력추적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각 단계에서 발생하는 서류의 신뢰도가 높지 않고 제도에 대한 이해도 낮습니다. 또한 식품이력추적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행정기관 역시 턱없이 부족한 인력과 장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사회 전체에 만연한 무사안일주의가 가장 큰 문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6번째 주재료는 알 수 없는 게 현재 표시제도

환경운동연합 해피빈 홈페이지 ⓒ 화면캡쳐


이번 햄·소시지 경우에도 수입업체 등에서 제출한 서류만을 가지고 수입신고확인을 해준 것에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미국은 유전자조작생물체의 관리를 위한 국제협약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 내에 표시제도를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중국 역시 안전성이 승인되지 않은 유전자조작 쌀이 불법으로 유출되는 등 부실한 관리로 유명합니다.

미국과 중국 같이 유전자조작 식품관리 후진국에서 제품을 수입할 땐 더 철저한 검사와 확인을 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납꽃게 사건, 농약 과일 사건, 멜라민 사건 등 식품안전 사건사고 때마다 요구되는 더 철저한 관리 감독이 시간만 지나면 정책 우선순위에서 늘 뒷전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현행 표시제에서 원재료 중 5대 원료만 표시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과 2차 3차 가공품의 원재료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번에 검출된 제품 중 '알찬소시지'의 원재료를 보면 "어육, 돼지고기, 옥수수전분, 밀가루, 정제소금, 분리대두단백, 복합조미식품, 산도조절제, 백설탕, 천연색소(코치닐색소, 파프리카추출색소), 향미증진제, L-글루타민산나트륨(향미증진제)"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분리대두단백은 CJ제일제당의 답변을 통해 보면 6번째 주원료였습니다.

다행히 CJ에서는 분리대두단백에 대한 구분유통관리 서류를 가지고 있었지만, 만약 유전자조작 콩을 사용한 분리대두단백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순서가 5번째가 아니라 6번째라면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현재 표시제도입니다. 또한 원료를 알 수 없는 복합조미식품, 향미증진제에 유전자조작 콩이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서울환경운동연합의 조사에서는 검출되지만, 식품제조사나 식품관리기관의 관리에서는 빠져나갈 가능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2001년에 만들어진 유전자조작식품 및 농산물에 대한 표시제도는 현재 소비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비의도적혼입 허용치가 3%나 되는데요. 이는 현재 관리수준에 비해 턱없이 높은 수치입니다. 유럽의 경우 비의도적혼입허용치가 0.9%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부는 표시제도를 즉각 강화해 소비자의 알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해야 합니다(☞'현행 GMO표시제'). 

서울환경운동연합은 현재 유전자조작식품 모니터링을 위한 3번째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유전자조작 표시제도가 강화될 그날까지 직접 조사와 모니터링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유전자조작식품, 누리꾼이 직접 점검합시다(☞모금함 바로가기)
* 추신 : 식품의약품안전청 홈페이지에는 유전자조작식품 표시제도에 대한 소개가 있습니다. 다른 국가의 제도도 소개하고 있는 데요. 현재 식약청 홈페이지에는 유럽제도와 일본제도가 뒤바뀌어 있습니다. 식약청 홈페이지 관리자 분은 정정해주세요. 네티즌들이 요구하는 유럽제도가 수준이 낮다고 오해하실 수 있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 이지현 기자는 서울환경운동연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지현 기자는 서울환경운동연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환경연합 #유전자조작 #GMO #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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