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나타난 빨간 헬기...'어, 불났네'

건조한 봄날, 산불에 조심 또 조심 합시다

등록 2011.03.14 14:34수정 2011.03.1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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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동 입안 가득 봄 향기를 전해주는 고마운 식물입니다. ⓒ 황주찬


지난 12일 오후 1시쯤입니다.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식사를 하려고 봄동을 버무리다보니 점심시간이 약간 늦었습니다. 갖은 양념을 넣고 맛있게 버무린 봄동을 한입 가득 넣고 오물거리고 있는데 초등학교 2학년인 조카 녀석이 헐레벌떡 현관문을 엽니다.


그리고 두 아들에게 자랑스레 던진 말.

"불났다. 근데 내가 신고했다."

저는 조카의 말을 흘려들으며 봄 향기를 한껏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멀리서 '두두두두'하며 간헐적으로 들리던 헬기 소리가 점점 가까이서 들립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은 들었는데 입 안 가득 피어오른 봄향기를 거부할 수 없어 그 소리를 애써 외면합니다. 옆자리 두 녀석은 밥 먹다 말고 점점 흥분하더니 결국 헬기소리에 함성을 지르며 베란다로 달려갑니다.

웬일인지 헬기가 아파트 베란다 바로 코 앞에 둥둥 떠 있습니다. 확성기 소리가 너무 커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색깔이 빨간색입니다. 소방헬기가 틀림없습니다.


소방헬기, 시뻘건 불길 향해 물폭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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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헬기 엄청난 소리와 함께 아파트로 돌진할 듯 날아왔던 여수시 소속 소방헬기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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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폭탄 여수시 소속 소방헬기가 화재 발생 지점에 시원하게 물폭탄을 던지고 있습니다. ⓒ 황주찬


황급히 베란다로 달려갔습니다. 열린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동네 뒷산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불길이 구봉산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소방헬기는  시뻘건 불길을 향해 물주머니에서 물폭탄을 던집니다.

옷을 대충이라도 걸치고 화재현장으로 달려가야 하나 고민했다가 괜히 불 끄는데 방해만 되지 않을까 갈등만 깊어집니다. 불길은 번지는데 사람이 안 보입니다. 애타는 심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동안 헬기는 엄청난 굉음을 내며 오고갑니다.

철없는 아이들이 신나서 떠드느라 한바탕 집안이 뒤집어졌습니다. 요란한 소리에 오침에서 깬 막내는 헬기소리에 더 놀라 악다구니를 치며 웁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의 시선은 산불 현장에 고정입니다.

아파트에서 화재진압 협조를 바라는 방송이라도 나오면 당장 달려가리라 마음 먹습니다. 그러나 방송은 잠잠하고 마음은 답답합니다. 그사이 구급차도 오고 화재진압 인원들도 나타나 구봉산으로 번지는 불길을 막았습니다.

어느 정도 불길이 잡히니 두근거리는 가슴이 가라앉고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오릅니다. 동네 뒷산에 가끔 불이 났는데 그럴 때면 동네 아저씨들과 함께 불을 끄러 갔습니다. 그저 어린마음에 신나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한 그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두 아들과 함께 다니던 숲 탐험 장소 홀랑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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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등산로 초입에서 산불을 막아 다행입니다. 더 위로 올라가면 마른 나무가 많은 구봉산 중턱입니다. 큰 산불로 이어질 뻔 했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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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두 아들과 자주 오르는 등산로입니다. 검게 탄 흔적에 가슴이 아립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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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현장 등산로에서 옆으로 시선을 돌리니 처참한 모습이 보입니다. ⓒ 황주찬


어릴 적엔 들뜬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산불 발생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곳은 두 아들과 종종 산책을 하는 길입니다. 딱따구리와 여러 동식물을 관찰하는 곳인데 아빠와 두 아들의 숲 탐험 장소가 이번 불로 홀랑 타 버렸습니다.

또, 조금 떨어진 곳은 '따라라락'하고 숲을 울리는 딱따구리의 둥지가 있는 곳입니다. 이번 불에 무사할지 걱정됩니다. 수차례 오간 헬기에 놀라기도 했겠지요.

이래저래 피해가 많습니다. 불난 이유가 궁금해 여수시에 물었더니 담당공무원은 담뱃재로 인한 실화인지 휴경지를 소각하다 발생했는지 조사중이랍니다. 가끔 어르신들이 봄바람 불면 해충을 없앤다며 논두렁, 밭두렁을 태우다 산불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산불이 그렇게 일어난 것은 아니겠지요? 두렁 태우기는 해충을 없애는데 무익하고 자칫 익충까지 죽이는 일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요즘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또 하나의 산불 발생 원인 중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등산객에 의한 실화입니다.

살랑살랑 봄바람, 불씨와 만나면 거대한 화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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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침막 등산로 초입에 걸린 펼침막입니다. '산불조심'이라는 구호가 무색합니다. '라이터 두고 오세요'라는 글을 눈에 띄게 덧붙이면 좋겠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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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나무 산불을 온몸으로 맞은 어린 생명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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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친구 14일 아침 화재현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만난 숲속 친구입니다. 고라니 인지 노루인지 멀어서 구별이 안됩니다. 간벌로 몸 숨길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물끄러니 바라보는데 미안한 마음입니다. ⓒ 황주찬


이번 산불이 등산객에 의한 실화인지 알 길은 없으나 가끔 담배 불씨로 인한 화재로 산이 온통 타 버린 소식을 듣습니다. 그럴 땐 정말 화가 납니다. 또, 종종 산에 오르면 이해 못할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건강을 위해 힘껏 정상에 올라와서는 터 잡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합니다.

담배 피우는 행동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금연과 흡연은 개인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곳이 공공장소이거나 특히, 숲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번처럼 큰 화재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고 타인에게 해를 미칠 일이기 때문입니다.

산불이 난 그날은 제가 사는 곳에도 '건조특보'가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여간 조심해야할 일이 아닙니다. 건조하고 바람 많은 봄입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지만 불씨와 만나면 거대한 불길이 되어 모든 것을 집어 삼킵니다.

산에 오를 땐 불필요한 물건과 마음 속 짐 함께 두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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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생명 새 생명의 움틈은 언제 보아도 경이롭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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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산불현장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입니다. 화재로 인해 매케한 냄새가 아직 지워지지 않았는데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날아옵니다. 이 꽃이 기어코 저를 불렀습니다. ⓒ 황주찬


14일 아침, 구봉산 정상에 거쳐 지난 토요일 산불이 났던 곳으로 내려왔습니다. 오는 길에 다양한 생명을 만났습니다. 다행히 그들은 무사합니다. 그동안 숲이 무성해 보이지 않던 녀석들이 간벌을 하니 몸 숨길 곳이 없어 서투른 숲 탐험가에게 고스란히 몸뚱이를 내보입니다.

고맙게도 이곳까지는 화마가 미치지 않아 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내려가니 처참합니다. 채 피워보지도 못한 어린 나무가 이번 불에 검게 탔습니다. 가엽기만 합니다. 불 탄 어린나무를 보고 있자니 다시 한 번 산행 중 조심해야 할 일들이 생각납니다.

산에 오를 땐 불필요한 물건은 내려놓고 오면 어떨까요? 마음 속에 내려놓아야 할 짐도 함께 두고 오면 더욱 좋겠지요. 그나저나 이번 산불에 뒷산 딱따구리는 잘 있을지 궁금합니다. 올 봄에도 '따라라락'하는 청명한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복지방송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복지방송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구봉산 #소방헬기 #숲 속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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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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