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사회의 가장 용감한 전사는?

[서평]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등록 2011.03.26 15:43수정 2011.03.3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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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느 새 3월의 끝자락을 향해 가지만 봄소식은커녕 눈까지 내리는 꽃샘추위에 옷깃만 움츠리게 된다.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에게 3월은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이라더니 정말 꽃소식과 눈소식이 교차하는 요즘이다. 더디 오는 봄 대신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온통 신산스러운 것뿐이다.

고갈되는 화석연료로 매일 오르는 기름값에 힘들어하는 시민들, 시멘트와 댐으로 파헤쳐지는 이 땅의 강줄기, 구제역으로 말미암아 생매장까지 당하는 불쌍한 가축들... 현대 문명의 끝없는 욕망과 그럼으로써 생기는 근심들, 발전과 성장은 과연 무엇이며 나는 또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 건지 혼란스럽고 무력감으로 어지러운 나날이다.


풀리지 않는 마음의 갈증을 안고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도 오아시스 같은 책을 발견했다. 무슨 경전처럼 두툼하여 눈에 확 띄는 이 책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류시화 엮음/김영사 출판)는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 각 추장들의 담화, 연설 또는 편지를 번역해서 엮은 책이다. 그들 삶의 바탕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는 책이며, 인디언들의 지혜는 문명과 개발을 맹신하는 우리들의 과학과 종교, 지식, 철학과 어떻게 다른지 느끼고 깨닫게 해준다.

맘모스가 노닐던 시절 당시 육지였던 베링해를 건너 알래스카로 건너 갔던 몽골리안들이 아메리카 인디언의 시조란다. 어쩐지 책 중간 중간에 나오는 인디언의 사진들이 남같지가 않더라니. 외모뿐만이 아니라 그 심성 또한 동양의 철학과 닮아 있어서 책을 읽는 동안 인디언들의 메시지와 그 영혼의 깊이를 쉽게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었다.

신과 함께 사는 사람들 - In 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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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에게 전하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메시지 (류시화 엮음) ⓒ 김영사


우리는 안다. 모든 종교적인 열망, 모든 진실한 예배는 똑같이 하나의 근원과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또 안다. 학식있는 자의 신, 어린아이의 신, 문명화된 사람의 신, 원시적인 사람의 신이 결국은 모두가 같은 것이라고. 신은 결코 생김새가 어떻게 다른가를 놓고 우리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신은 이 대지 위에서 올바르게 살고 겸허하게 행동하는 모든 이들을 자신의 품안에 받아들인다. (본문 중)

처음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스페인 사람 콜럼버스가 인도로 착각한 나머지 원주민들을 보고 이름 붙였다는 인디언이라는 호칭은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원주민들의 자연 친화적인 삶과 평화에 감명을 받아 신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란 뜻의 'In Dios'라고 한 것이 와전되었다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특별한 종교도 문자도 갖지 않았지만, 이 책에 기록된 그들의 영혼의 울림은 어떤 종교 경전도 갖지 못한 다원성과 상대성이 내포되어 있다. 900쪽이 넘는 이야기들은 부족마다 서로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강들이 이어져 바다로 모이듯 결국엔 하나로 나아간다. '미타쿠예 오야신,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가 그것이다.

불교의 진리를 찾으러 온 벽안의 스님에게, 지하철에서 '사탄아 물러가라'를 외치는 이기적인 종교관을 가진 우리 종교인들이 떠오른다. 내가 믿는 하느님만이 유일한 신이요, 내가 주장하는 것만이 정설이다 라고 주장하는 현대인들이 과연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미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프론티어 정신의 이면

우리는 가난하지만 풍요로웠다. 소유는 죄를 짓는 일이나 마찬가지라 여겼다. 문명인을 자처하는 얼굴 흰 사람들이 몰려 왔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베풀고 농사 지을 땅을 내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땅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그곳을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언제나 더 내놓으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땅은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땅은 우리의 어머니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 어머니는 자신의 자식들인 동물과 새, 물고기 그리고 모든 인간을 똑같이 먹여 살린다. 하지만 얼굴 흰 사람들은 뭐든지 금을 긋고, 그것들이 오직 자신의 것이라고 말했다. (본문 중)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침략의 역사로 부를 만큼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대가로 이루어졌다. 유대인을 무참히 학살해 비난받은 독일인들처럼 아메리카 역시 원주민들 내쫓고 죽이고 세워졌다. 중고등학교시절 밑줄을 그으며 외웠던 신대륙을 발견하고 개척했다는 서양인들의 '프론티어 정신'은 사실 원주민들의 멸망에 다름 아닌 것임을 성인이 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문명의 이름으로 유럽인들인 얼굴 흰 사람들이 얼굴 붉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어떻게 속이고 살륙하였는가, 인디언들은 어떻게 싸우고 죽어갔는가 그 거대한 역사에 바치는 진혼곡이기도 하다. 미국의 역사는 철저히 침략과 파괴의 역사이다. 힘이 곧 바로 정의요, 평화와 정의 중에 택하라면 정의를 택하겠다는 미국 주류층의 사고방식은 오늘날 그대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재현되고 있다. 오늘의 미국이 저토록 호전적인 것은 애초부터 그 출발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하지만 우리는 남을 짓밟아본 일이 별로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다고 우쭐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약소국이었으므로. 과연 그럴까? 베트남전에서 누구보다 용맹한 따이한으로, 동남아 해외연수생 노동자들에게는 공포의 압제자로, 이라크에 파병하기까지 우리또한 얼마나 폭력적인 민족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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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간중간에 들어있는 100여장의 당시 사진들이 묘하게 가슴을 울린다. ⓒ 김영사


어지러운 삶의 새로운 지침서

...인디언들은 하루종일 물에 관한 노래만 불렀다. 옆에 있던 백인이 물었다. 왜 물에 관한 노래만 하느냐고. 인디언은 대답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단지 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신들은 왜 그렇게 사랑에 관한 노래만 하는가? 당신들에게 부족한 것은 사랑이기 때문이지 않은가?  (본문 중)

새로 열리는 시대는 폭력, 전쟁, 강철이 지배하는 남성성의 시대를 넘어서, 평화, 사랑, 흙이 포용하는 여성성의 시대가  될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는 듯 이야기 하고 있다. 그들의 정기적인 단식과 '땀천막'을 읽으면 새로 펼쳐지는 시대는 웰빙의 열품이 불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으며, 전(前)-미국인, 전-캐나다인들을 말살한 얼굴 흰 사람들의 문명이 오히려 야만으로 평가될 시대가 머지않아 도래할 것임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있다.

내게 큰 메아리로 남아 책장을 쉬이 못넘기게 한 것은, '가장 용감한 전사는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소유물들을 기꺼이 나눠 주면서도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구절이다. 남에게 베푸는 것이 가장 용감한 것이다 라고 표현을 하는 것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다.

몇 백년 전의 이야기지만 마치 내 앞에 인디언 추장이 앉아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부드러운 산들바람과 같은 지혜의 말이 그 어떤 교훈보다도 더 친근하게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하루라도 평원의 한적한 곳을 거닐면서 마음을 침묵과 빛으로 채우지 않으면 갈증난 코요테와 같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나는 마음에 그런 갈증이 날 때마다 이 책을 펼쳐 보아야겠다.

한 뼘의 땅일지라도 소중한 것을 지키라.
홀로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일지라도 그대가 믿는 것을 지키라.
먼 길을 가야 하는 것이라도 그대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라.
포기하는 것이 더 쉬울지라도 삶을 지키라.
내가 멀리 떠나갈지라도 내 손을 잡으라.
- 푸에블로 족의 축복 중에서
#나는 너가 아니고 왜 나인가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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