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한때는 군·경찰보다 무력했다

[서평] 책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을 읽고

등록 2011.03.24 14:03수정 2011.03.2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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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정의(justice)를 위해 강한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불철주야 애쓰는 법치주의의 수호자여야 마땅하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더라도 거대 기업이나 정권의 범죄행위를 목숨 걸고 파헤치는 멋진 검사가 종종 나온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떤가? 떡검, 섹검, 스폰서 검사 등 해괴망측한 용어가 먼저 떠오른다.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의로운 검사'의 모델이 될 만한 사람이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검찰이 그러한 검사를 양산하고 그 활약을 거들어줄 만한 조직인지부터 살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 인터넷에서 경제대통령이라 불리던 미네르바 박대성 사건, KBS 정연주 사장 사건, 한명숙 전 총리 사건 등 국민의 실생활과 정치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여러 사건의 배후에 검찰의 검은 칼날이 번뜩거리고 있다는 것을 시민들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면서 이미 검찰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수직 하강하고 말았다. 

 

큰소리 치던 검사들, 지금은 정권의 주구가 되어

 

우리는 노무현이 대통령이던 시절 전국에 생중계된 '검사와의 대화'를 기억한다. 그때 대통령 앞에서 큰소리치던 젊은 검사들과 이명박 정권의 주구가 되어 충성을 다하는 지금 검찰의 모습은 엄연히 다르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서 검찰이 보호색을 띠는 카멜레온처럼 그 모습을 달리하는데 우리는 익숙하다. 

 

하지만 한번쯤은 의구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 어떤 조직보다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검찰이 왜 대통령에 따라 태도가 달라져야 하며, 나아가 대통령의 의중을 좇아 누군가를 기소하거나 불기소하고 힘 조절을 해가면서 정국에 영향을 미치는가. 검찰이 상명하복의 구조를 지닌 거대한 권력 집단인 것도 문제지만 그 권력의 정점에 선 게 검찰총장이 아닌 대통령이라면 법치주의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 사회 정의를 기준으로 때에 따라서는 살아 있는 권력인 현직 정치인과 대통령에게도 칼날을 겨눌 줄 알아야 제대로 된 검찰일 터다.

 

그런데 거꾸로 대권에 영향을 미치고, 현직 대통령을 조직의 두목으로 섬기며 권력의 눈 밖에 난 사람들에게 무시무시한 칼날을 드리우는, 한낱 백정 노릇을 하는 현재 검찰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고 그 대가로 검찰에 주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은 상식과는 동떨어진 검찰권 행사 상황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찾아보고자 모인 네 사람이 1년 반에 걸쳐 집필한 책이다. 

 

검찰 개혁의 첫 걸음은 그들을 아는 것

 

책 <검찰공화국, 대한민국>(김희수,서보학,오창익,하태훈 공저) ⓒ 삼인

책 <검찰공화국, 대한민국>(김희수,서보학,오창익,하태훈 공저) ⓒ 삼인

이 책 1부에서는 검찰 역사 63년을 되짚었는데 여기서 검찰의 위상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지는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검사로서 소신을 지키다가 재판도 없이 총살을 당한 박찬길 검사 사건만 보더라도, 그 당시 검찰이 경찰, 군인에 비해 입지가 좁고 무력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또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이승만 정권을 지나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지나면서 검찰은 옳은 방향으로 검찰권을 행사하려는 몇몇 소신 있는 검사의 싹을 잘라가며 정권의 입맛대로 움직이고 그 대가로 서서히 권력의 저변을 확대했다. 눈덩이 굴리듯 커진 그 권력은 전 세계에 예를 찾을 수 없는 검찰의 권한 독점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검찰에 수사개시권과 수사종결권, 수사 지휘권, 영장독점청구권, 기소독점권과 기소재량권이 집중된 현 상태를 우리나라 국민은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 검찰제도가 모본으로 삼은 대륙법계 국가의 검찰제도와 식민지 시절 그대로 물려받은 일본 법체계에서도 검찰에 이토록 많은 권한이 집중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저마다 역사의 교훈을 통해 그 권한을 분산시키거나 통제할 방안을 마련해두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검찰이 사실상 모든 권한을 독점한 데 반해 검찰의 권한 남용과 비리를 제재할 만한 장치는 전혀 없다. 임기와 소추 제도로 그 권한 행사의 한계가 설정된 대통령에 비해 보더라도 말이다. 과도한 수사와 기소로 인권을 유린하고 각종 비리 사건에 대해서는 불기소, 부실 수사 등의 방법으로 덮어두는 식으로 정권의 편에 서기도 하며 죽어가는 권력에 대해서는 잔인한 비수를 들이댈 수 있는 발판이 제도로 보장된 셈이다.

 

외적으로는 이러한 제도의 문제점이 있고 검찰 내부에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살아 있어 각각의 검사가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담당 사건을 처리할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나라 검찰 구조상 드라마에 나올 법한 정의로운 한 사람의 검사를 기대할 수 없다.

 

검찰 개혁 시도는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여러 차례 있었으나 늘 난항을 겪어왔다. 정부와 국회의 의지가 희박한 것도 문제이겠으나 일반 시민들이 검찰의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여론이 모이지 않은 것이 더 큰 이유가 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국민 대다수는 이것이 검찰에 의한 타살이란 점을 인식했다. 전 대통령마저 넘어뜨린 검찰의 서슬 아래 일반 시민의 자유와 인권이 침범당한 일 또한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비일비재하다.

 

검찰공화국으로 몰락해가는 현실 외면해선 안돼

 

어느덧 우리나라 검찰은 정치권력을 만들어내고, 또 스스로 세운 그 권력에 협조하고 심지어 그 권력 핵심부를 장악하면서 이 나라를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이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검찰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검찰공화국'으로 몰락해가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에서 나왔다.

 

이 책에서는 형사법계의 전문가들이 모여 수많은 사례와 통계를 통해 검찰이 수사권, 기소권, 영장독점청구권 등을 독점하며 남용하는 실상을 소상히 밝히고 실행 가능한 개선책을 제시한다. 거창한 듯 보이지만 저자들이 검찰에 과도한 변화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법 개정, 제도 개선은 둘째치고 우선 현행법과 기본 원칙이라도 지키자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더불어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상식을 말하는 것조차도 급진좌파로 몰릴 수 있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시민의 관심과 지지가 없이는 검찰 개혁이 이뤄질 수 없다는 확신이 이 책의 탄생 배경이기도 하다.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은 검찰의 거칠 것 없는 칼날 아래 도둑맞은 권리를 되찾자는 선언이다. 변화는 웅성거림에서 시작된다. 우선 시민들이 검찰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고 구체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웅성거릴 때 어느 누구도 제재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검찰 권력은 시민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할 것이다.

 

검찰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위세를 버리고 다시 국민의 봉사자로,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종진 씨는 삼인출판사에서 편집부 팀장으로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2011.03.24 14:03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김종진 씨는 삼인출판사에서 편집부 팀장으로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검찰공화국 #검찰공화국,대한민국 #검사 #오창익 #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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