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던 일본 기저귀, 이젠 제일 못 믿겠다

일본 원전사고 이후 걱정 늘어난 아기엄마들

등록 2011.04.05 14:11수정 2011.04.05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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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구입한 건어물 물과 바람까지도 불안한 날들 ⓒ 정가람

▲ 급하게 구입한 건어물 물과 바람까지도 불안한 날들 ⓒ 정가람

며칠 전 친정엄마께서 산후조리 때 먹을 산모미역과 건어물을 사놓으라며 돈을 보내주셨다. 둘째 출산 예정일은 5월 말. "아직 두 달이나 남았는데 벌써" 라는 내 말에 엄마는 일본 원전사고 얘기를 꺼내셨다.  

 

"우리야 살만큼 살아 어찌돼도 괜찮다만, 너희는, 애들은 한참을 더 살아야 하는데 큰일이다. 이젠 물도, 바람도 믿을 수가 없으니···. 내 생각엔 점점 더 심해지면 심해지지 나아질 것 같진 않다. 지난 겨울에 수확해 잘 말린 걸로 많이 사둬라." 

 

1년에 한번 꼴로 구입하는 육수용 건어물이 바닥이 보여 구입 할 때도 되긴 했지만, 일본 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급증하고 있는 사재기 열풍에 나도 한 몫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그냥 넘긴다 하더라도, 이제 겨우 생후 17개월인 내 아이가, 곧 태어날 둘째가 먹을거리인데. 산모미역부터 국물용 건어물―멸치, 새우, 홍합, 다시마를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주문했다. 

 

일본산 기저귀 사재기 열풍이 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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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있는 풍경 끝도 없는 기저귀의 행렬 ⓒ 이희동

▲ 아이가 있는 풍경 끝도 없는 기저귀의 행렬 ⓒ 이희동

건어물을 주문하고 달력을 보니 어느새 사월. 둘째 출산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두 번째 출산이다 보니 첫째만큼 준비할 게 많진 않다. 하지만 둘째는 장마철에 신생아 시기인 생후 50일을 보내야 해 천기저귀 대신 종이기저귀를 쓸 예정이라 준비에 이만저만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 원전사고 이후 일본 종이기저귀 가격이 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작년부터 계속되는 엔고 현상으로 일본 종이기저귀 가격이 껑충껑충 뛰던 차, 방사능 유출에 따른 안전문제까지 더 얹어져 엄마들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일본 대지진으로 국제운송이 불안해 기저귀 공급이 끊길 것을 걱정한 일부 엄마들은 기저귀 사재기를 시작했단다. 여기에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 걱정까지 겹쳐, 지진 전 수입된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기저귀뿐만 아니라 일본 유아용품 전반에 걸쳐 사재기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동안 기저귀뿐만 아니라 많은 유아용품에 있어 일본 제품이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우리집만 하더라도 천기저귀 커버, 아기 빨대컵, 노리개젖꼭지, 아기옷 세제, 아기과자, 젖병, 아기 손톱가위, 온습도계가 일본산이다. 국산과 비교해 더 비싼 일본제품을 굳이 쓸 필요가 있냐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있지만, 대다수의 엄마들이 무턱대고 일본제품을 고집해 쓰는 건 아니다.

 

국산과 수입 유아용품을 꼼꼼히 비교해보고, 써보고, 수많은 후기들을 읽어보고 가장 내 아이에게 맞는, 조금 더 비싸더라도 안전하고, 오래 쓸 수 있는 용품으로 고심 끝에 구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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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진앙과 현재 가동 중인 기저귀 공장 원전 사고 지점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다 안전할까? ⓒ 에누리 닷 컴 구매가이드

▲ 지진 진앙과 현재 가동 중인 기저귀 공장 원전 사고 지점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다 안전할까? ⓒ 에누리 닷 컴 구매가이드

믿던 일본 제품, 이젠 가장 믿지 못하게 됐다

 

그 중 하루에도 많게는 열장 넘게 사용하는 종이기저귀가 엄마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이다. 직접 육아를 하지 않는 입장에선 국산도 좋은 것 많다며 이번 기회에 국산으로 갈아타라는(사용하던 제품을 바꾸는 걸 엄마들 사이에서 '갈아탄다'라고 한다) 조언을 할 것이다. 하지만 가격대비 비싼 일본산 기저귀를 쓸 수밖에 없는 엄마들의 입장도 헤아릴 필요가 있다.

 

"저도 같은 고민이요. 여러 가지 기저귀 다 써봤는데 일본 꺼 만한 게 없더군요. 지금 20개월이고 밤에 12시간 정도 차는 아가라 무니망 팬티 기저귀 밤에만 채우는데, ***. **** 새더라고요. 이제 한 팩 남았는데 뭘로 갈아타야하나 생각 중이에요. 웬만한 건 다 써봐서. 팬티기저귀가 밤에 편한 거 같아 더 선택폭이 좁네요..."(맘스홀릭베이비 카페 회원 뽀*** 게시글)

 

"(일본) 기저귀를 사용하는데요. 아무래도 요것이 메이드인 재팬이라. 지금 떨어져서 주문해야하는데, 아무래도 방사능이니 어쩌지 해서 걱정이 되어서 기저귀를 갈아타야 할 듯싶어요.(중략)...(일본) 기저귀 쓰고 국산기저귀 갈아탔을 때 발진 없이 사용한 기저귀 있음 추천해주세요"(맘스홀릭베이비 카페 회원 금*** 게시글)

 

육아에 있어 정답은 없다고 한다. 이 말은 아기마다 체질이 다르고 조건이 다르기에 각자 아기에 맞는 육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같은 기저귀라 하더라도 아기 피부에 따라 발진이 생기기도, 안 생기기도 한다. 기저귀를 바꿀 경우 발진이 생기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심하게 발진이 생겨 몇날 며칠을 아기도, 엄마도 고생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꽤 많다.

 

기저귀 다음으로 매일 사용해야 하는 품목이 물티슈와 분유. 물티슈도 아기 피부가 예민한 경우 발진을 일으키는 제품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계속 천기저귀를 사용한 우리집 첫 아이의 경우 기저귀 발진 문제는 없었지만, 물티슈 발진이 있어 매번 물로 씻기고, 가제 손수건을 빨아서 닦아줘야 했다.

 

그리고  분유. 기저귀만큼은 아니지만 분유 소화장애로 고생하는 아기들이 많은 분유를 거친 끝에 일본산 조제 분유에 정착한다. 분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기 과자를 생산하기 때문에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그런 분유와 과자는 당장 입으로 들어가는 제품이라 방사능 문제에 대한 걱정이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 유명 기저귀 회사에선 원전 사고 지점과 현지공장의 거리가 멀어 안전하다는 공문을 띄우고, 다른 유아용품 회사에서도 방사성 물질 유출에 따른 검사를 철저히 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내 아이가 관계된 일에 있어서 안 해도 될 걱정을 사서하는게 엄마들이기에 불안함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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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올라오는 엄마들의 불안 더해가는 내 아이의 안전 걱정 ⓒ 맘스홀릭베이비 네이버카페

▲ 카페에 올라오는 엄마들의 불안 더해가는 내 아이의 안전 걱정 ⓒ 맘스홀릭베이비 네이버카페

일본 지진 이후 인터넷 육아카페에는 매일 수십 건이 넘는 걱정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그동안 믿고 썼던 일본제품에 대한 안전 문의에 대한 글에서부터, 불안해서 더 이상 쓰지 못하겠다는 글, 대체상품 문의 글이 게시판을 가득 메우고 있다.

 

"나는 아직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 그냥 있기는 한데... 우리나라도 안전하지는 않다고 하니... 요즘엔 더 걱정이다... 일본에 사는 사람도 있는데 뭐 그러냐 하겠지만... 그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뭘 알아야 걱정을 덜하지"(맘스홀릭베이비 카페 회원 동*** 게시글)

 

불안을 감내하고 일본제품을 고집하는 엄마들보다는 당분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보다 믿을 수 있는 다른 제품으로 갈아타려는 엄마들이 늘면서 국산을 비롯해 미국산, 유럽산 유아용품들 대체상품 후기도 줄을 잇고 있다. 수입이 많지 않은 일부 독일산 제품을 찾는 엄마들도 늘고 있단다.

 

그동안 일본제품에 편중돼 있던 기존 유아제품시장이 이번 기회를 통해 분산될 것 같아 긍정적 측면도 있겠지만, 덩달아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아기용품 가격상승에 한 몫할가봐 엄마들의 걱정은 더 늘었다.

 

아이 안고 우는 일본 엄마, 남의 일 같지 않다

 

일본 대지진은 천재지변이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치지만, 원전사고는 분명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 그도 인간의 욕심이 불러일으킨 대재앙이다. 원전 사고 이후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다는 뉴스보다는 불안과 걱정을 가중시키는 소식만 보이는 요즘이다. 게다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가 직접 바다에 유입되고 있다는 소식에 설마 하던 바닷물 공포까지 겹치고 말았다.

 

수산물시장이 매출 급감으로 흔들리고, 유아용품 시장이 사재기로 불안하고, 혹시나 비가 올까, 바람의 방향이 바뀔까 일기예보를 보는 매일매일 초조하기만 하다.

 

젖먹이를 가슴에 안고 이 아이의 미래가 너무나 걱정이라며 울먹이던 뉴스 속 일본 엄마의 눈물이 어느새 내 가슴의 눈물이 되고 있다. 아이들의 미래를 빌려 쓰고 있는 우리의 오늘, 우리가 망쳐버린 아이들의 내일을 물려주며 무슨 말을 해야할까…….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면서도 그 모든 걸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는 강인한 존재라고 하지만, 매순간순간이 흥미롭고 신나는 날들인 자라나는 아이 앞에서 오늘도 나는 한없이 작아지기만 한다.

#방사능 유출 #일본 기저귀 #유아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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