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도의 해외진출에 대한 단상

최근 건설사의 브라질 고속철도 사업참여 포기 등을 보고

등록 2011.04.11 17:42수정 2011.04.1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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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국철도의 해외진출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이하 '철도공단')이 2005년 1월 우리나라 철도 사상 최초로 해외 진출에 성공, 중국철도 감리사업을 수주한 것을 필두로 하여 최근에는 한국철도공사, 서울도시철도공사 등 각 공기업이 앞 다투어 해외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철도의 경쟁적 해외진출 추진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늦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늦게나마 다행이며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된다.

필자는 2004~2006년에 한국철도 사상 최초로 해외 진출에 성공, 중국철도 감리사업 수주업무를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한국철도의 해외진출과 관련하여 느끼는 단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맨 먼저 한국철도 해외진출의 물고를 튼 것은 철도공단의 중국진출이다. 철도공단은 경부고속철도 건설과정에서 축적한 기술과 경험, 노하우를 활용해 중국 고속철도 건설사업에 진출하기로 하고 2004년 11월 중국지사를 설립하여 사업관리, 감리, 엔지니어링 자문 등의 분야 개척을 목표로 선정하여 추진한 결과, 2005년 1월 우리나라 철도 106년 사상 처음으로 쑤이닝(遂寧)-충칭(重慶)간 148㎞의 철도 중 시험선 구간 12.6㎞에 대한 감리용역을 따냈다.

이어서 2006년 1월 우한(武漢)-광저우(廣州)간 983㎞의 여객전용선 중 제1구간 152.8㎞ 구간에 대한 감리용역 입찰에 참가해 사업을 수주했고,. 2008년 3월에 하얼빈(哈爾濱)-다롄(大連) 904㎞ 구간의 고속철도건설 엔지니어링 자문용역 계약을 수주했다. 그후 철도공단은 2010년에 중국철도 7개 사업을 수주, 2014년까지 약 500억 원의 수입을 예상하는 등 세계 속에서 한국철도의 위상을 드높이고 국위를 선양하는데 독톡히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철도공단의 활발한 중국진출에 힘입어 2009년에 카메룬 국가철도마스터플랜수립 용역을 수주하고 최근에는 브라질 등 세계 각국의 철도시장 진출을 목표로 다각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가장 독보적인 사업은 브라질 고속철도사업으로, 캄피나스~상파울로~리우제자이네로 구간 511㎞를 잇는 23조 원(브라질 정부안) 규모의 초대형 고속철도 사업이다.

이 브라질 고속철도 사업과 관련하여, 최근에 브라질 고속철 수주전에 뛰어들 의사를 밝혔던 롯데건설, 현대엠코, 코오롱건설, 삼환기업, 한신공영 등 국내 건설사들이 사업성 미흡을 이유로 의사를 철회하는 등 진출전략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함대의 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브라질 고속철도 사업단 단장이 해임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브라질 고속철도 사업은 아직 입찰이 시작되지도 않았고, 사업단이 밝히는 바와 같이 브라질 현지 건설업체들로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사업을 수주하면 되는 일이며, 현재까지는 수주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형)건설사들이 빠지게 된 부분은 지금부터라도 차분히 그 원인을 분석하고 앞으로 다른 사업에서 똑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먼저, 해외 철도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 철도시장에 정통해야 하고 해당 프로젝트의 특성을 확실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 나라의 문화와 관습, 역사 등을 꿰뚫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문화와 관습에 맞는, 그 시장 특성에 맞는, 그 프로젝트에 맞는 수주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브라질 고속철도사업은 브라질 정부가 70%의 자금을 대고, 나머지 30%는 민간에서 조달하는데, 민간조달 30% 중 브라질 업체가 80%, 낙찰 컨소시엄이 20%를 각각 대야 하는 사업으로 낙찰자가 건설, 40년간 운영권을 갖는 BOT(Build, Operate, and Transfer) 사업이다. 다른 사업도 그렇지만, 특히 BOT 사업은 일종의 민간투자사업으로 사업의 수익성, 채산성을 우선적으로 따져봐야 하는 사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컨소시엄 구성도 처음부터 민간주도로 구성, 운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래야만 참여하는 민간기업이 사업의 수익성을 철저히 분석하여 그에 맞는 조건을 발주자에게 요구하고 협상하여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철도의 브라질 사업단은 철도공단 등 관 주도로 사업이 추진되었고, 사업의 특성을 철저하게 파악하지 못한 결과(?), 발주자측이 제시하는 사업비(23조원)만 믿고 사업 참여전략을 수립하여 운영해왔다. 그러다가, 사업에 참여하는 민간기업들이 수익성을 분석하기 위하여 사업의 현지를 실사하여 사업을 분석해본 결과 사업비가 40조원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사업단이 제시했던 금액에 비해 사업비가 17조원이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으며, 운임 수입이 고정돼 있는 한 사업성은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실제 사업비가 23조원을 넘으면 초과분을 민간사업자가 부담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이는 건설업체들이 모두 불참을 결정한 주된 이유다. 물론 입찰일정이 당초 4월 11일에서 7월 11일로 연기되었다고 하니까, 변화된 조건에 맞추어 새로운 수주전략을 짜서 추진하면 된다. 그러나, 관건은 수익성을 어떻게 확보하는가에 있다고 할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형고속철도의 대외 신인도이다. 한국형고속철도차량 KTX-산천은 그동안 경부고속철도 건설과정에서 프랑스로부터 기술이전 받아서 독자적으로 개발, 해외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충분한 시운전을 거쳐서 국내에서도 투입, 운행되고 있지만 여러 차례의 사고를 거치면서 대외 신인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사고의 원인으로 KTX-산천 차량의 기술적 결함은 없다고 하지만, 고속철도의 해외 진출 등 대외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기술적 검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고속철도 차량의 안정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 철도 건설 뿐만 아니라 운영분야의 진출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운영분야는 어떤 기술적 측면 보다는 경영의 측면이 크기 때문에 비용절감 및 경영효율화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운영의 측면에서 첨단기술을 이용한 무인운전, 대합실 없는 역 운영, IT를 활용한 철도운영시스템 구축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철도공사는 브라질 고속철도사업에 있어서 철도운영기관인 ANTT에 기관사 교육, 운영시스템 구축 자문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충분치 않으며, 운영에 있어서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 전체에서의 비용절감 방안 등 다양한 대안(solution) 제시를 통한 운영분야 참여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넷째, 해외사업도 민자사업 뿐만 아니라, 가능하면 재정사업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현재 가장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브라질고속철도 사업은 민자사업으로 여러 가지 리스크가 많이 따를 수 있는 구조이다.  중동과 같은 석유자본이 풍부한 나라는 재정사업으로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카타르의 전철 프로젝트들은 브라질처럼 민자가 아니라 전량 재정공사로 발주되어 사업의 안정성을 기대할 수 있어 적극 참여토록 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철도와 광물 등 타산업과 패키지로 진출을 위한 종합대책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철도개발이 활발한 저개발국가는 정부재정은 부족하나 자원이 풍부한 경우가 많으므로 자원과 철도개발을 연계하는 패키지딜 방식의 진출이 가능하며, 이는 적극 권장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철도공단과 철도공사, 롯데건설 등 민간건설사 등이 협력으로 추진하는 몽골철도 진출사업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철도의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범정부적 지원과 민-관-학 합동체제의 구축과 리스크관리 체계구축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한국철도의 해외진출은 어느 한 기업의 진출이 아니며,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며 민관협력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철도협회가 지난 2009년5월에 설립되었으나, 아직까지 해외진출 실적은 미미하다. 외국의 경우를 보아도, 철도선진국인 프랑스와 일본은 각각 SYSTRA와 해외철도기술협력협회(JARTS)라는 해외철도진출 통합지원기관의 운영을 통해 자국철도의 해외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또한 해외사업에 있어서 리스크관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사업수행에 따른 정치․경제적 리스크, 법․제도적 리스크, 계약관리 리스크 등 각종 리스크 관리계획을 수립,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사업의 성공적 완수에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2년전 세계적인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철도에 440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철도에 올인하겠다고 했다. 이는 그동안 사양산업으로 인식되어왔던 철도가 부활하여 그야말로 '철도의 르네상스'를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녹색성장의 선두주자라 하는 철도 시장은 말 그대로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세계 철도시장의 규모는 2010년 현재 연간 210조원에 달하며 2015년까지 약 260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듯 천문학적인 규모의 세계 철도시장에서 우리 한국철도가 우뚝 서길 기대해본다.
#한국철도 #해외진출 #브라질 #고속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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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철도청 및 국가철도공단, UNESCAP 등에서 약 34년 공직생활을 하면서 틈틈히 시간 나는대로 제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온 고창남이라 힙니다. 2022년 12월 정년퇴직후 시간이 남게 되니까 좀더 글 쓸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좀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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