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 아저씨의 만물상, 구경하실래요?

오래된 것이 주는 정겨움

등록 2011.04.18 16:38수정 2011.04.18 16:3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대구 삼덕동 빛살미술관 . ⓒ 조을영

▲ 대구 삼덕동 빛살미술관 . ⓒ 조을영

대구 수성구 삼덕동은 80년대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동네다. 20년 이상된 선술집과 음악 카페 등이 지금도 운치를 더하는 이 동네 골목 한쪽에 두꺼비 아저씨가 운영하는 만물상이 있다. 최근까지 고기구이집과 겸해서 운영하던 그의 만물상에는 비오는 날이면 칸초네 '노노레타'가 우아하게 울려퍼져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하지만 이곳도 시대 조류에 밀려 이제 곧 삼덕동을 떠나야 할 상황이다. 번화가를 바로 옆에 두고 희미한 아날로그의 향수로 지난 시절을 살고 있는 두꺼비 아저씨에게서 삼덕동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시내 중심가 바로 옆에 자리잡은 한적한 문화 유흥가인 대구 삼덕동은 100년이 족히 넘은 일본 적산 가옥이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벽화가 가득한 한옥의 담장을 따라 담쟁이 덩굴이 끝없이 올라가는 곳이다. 화려하고 유행에 민감한 것보다는 손때 묻고 어질러진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장소다. 그중 '뭐든 고치고 빌려준다'는 모토를 내건 두꺼비 아저씨의 만물상에는 재미난 것들이 많다.

 

두꺼비 아저씨 김서비(50)씨는 10년 동안 전국 각지를 돌며 특이하거나 오래된 물건들은 무조건 구입해 왔다. 최근까지 고기집과 병행했던 그의 만물상에 들어서면 눅진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을 한다. 70년대 검정 다이얼 전화기, LP판, 옛날 화로 부터 시작해서 방짜유기 등이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겉에서 보기엔 컴컴한 창고같은 이곳의 초라한 천막 안으로 들어가면 엄청난 물건의 수와 종류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천천히 둘러봐요. 우리 집엔 온갖 잡동사니가 다 있으니까."

 

주인은 사람 좋아 뵈는 얼굴에 허허 웃음을 지으며 구경꾼을 맞이한다. 사진사가 검은 천을 뒤집어쓰고 찍는 옛날 카메라, 어깨 벨트가 나달나달하게 썩어내리는 낡은 아코디언 뒤쪽으로는 꽃미남 복장의 비틀즈,  청년 문화의 상징 들국화, 지금도 리바이벌 되는 불멸의 가수 시인과 촌장 등의 LP판이 장르별로 수천장이 넘게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먼지가 소복이 쌓인 턴테이블은 그 시절 어느 부잣집 거실에서 추억과 행복을 선물하다가 시간과 함께 이곳으로 밀려 온 듯하다. 조선시대 병사들이 전장에서 쓰고 싸웠다는 철모는 어느 영화의 소품으로 쓰였음직하다. 손으로 휠을 돌려야 하는 구식 재봉틀에선 가난한 시절 여인들의 구슬땀을 엿보게 한다. 자판이 몇 개 빠져나간 옛날식 타자기 앞에서 지난날의 누이들이 새침한 표정으로 사장님의 공문서를 타이핑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 많은 물건들의 가격을 다 기억하는지, 가격을 깎아주기도 하냐는 질문에 주인은 연신 웃으며 "물건 값이야 그때그때 상황따라 달라요. 동일한 물건이 많이 들어왔을 땐 조금 싸고, 딱 한 개 밖에 없는 거라면 아무래도 귀한 대접을 받을 수 밖에 없으니 부르는 게 값이죠. 말 잘하면 반 값에도 주고, 단골은 더 깎아주고 뭐."

 

서울 황학동과 인사동의 잡품과 골동품, 동대문의 빈티지샵을 모아 놓은 가게를 차리고 싶은 꿈을 조금씩 실천하려고 이 일을 시작한 그는 유별난 골동품 마니아다.

 

a

두꺼비 아저씨의 골동품점 내부 . ⓒ 조을영

▲ 두꺼비 아저씨의 골동품점 내부 . ⓒ 조을영


자신이 운영하던 실내 포장마차의 반을 만물상으로 차리고 지난 시절의 소시민들이 거쳐간 시간의 역사를 많은 사람들에게 되짚어주겠다는 일념으로 즐겁게 일을 했지만 이제는 문을 닫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 상황에 처했다.

 

싼 물건을 들고 와선 몇십만 원을 쳐달라는 사람, 나중에 값 비싼 물건을 또 사갈테니 지금 좀 깎아달라며 종일 흥정하는 사람, 심지어는 이런 건 공짜로 줘도 되는 거라며 생떼를 쓰는 사람 등 여러 종류의 손님들을 만나는 것도 이 일을 하며 얻게 되는 덤이라 한다.


돈을 많이 벌었겠다고 하니 손사래를 치며 "그저 신기하니까 들어와서들 보는 거지, 사 가는 사람은 잘 없어요. 카페 주인들이 인테리어 용품을 구입하러 한번 들르고 6,70대 노인들이 옛시절이 그리워 하나씩 사모으러 오는 거"라고 말한다.

 

더구나 밥이나 먹고 살려고 겸업하던 고기구이집도 그만두게 되니 더욱 힘들어진 것은 뻔한 사실이다. 가을 쯤 대구 인근의 관광지인 한티재로 이사를 가서도 골동품이 주는 색다른 매력을 아는 이들과 그 정을 나누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 있는 그다. 그리고 시대에 조금 떨어져 있지만 운치와 낭만으로 가득찼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대구 삼덕동의 한 역사로 이 골동품점이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있길 바라는 것 하나뿐이다.

 

a

골동품 . ⓒ 조을영

▲ 골동품 . ⓒ 조을영
2011.04.18 16:38 ⓒ 2011 OhmyNews
#골동품 #대구 삼덕동 #만물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2. 2 "김건희 특검하면, 반나절 만에 다 까발려질 것"
  3. 3 오스트리아 현지인 집에 갔는데... 엄청난 걸 봤습니다
  4. 4 '아디다스 신발 2700원'?... 이거 사기입니다
  5. 5 "어버이날 오지 말라고 해야..." 삼중고 시달리는 농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