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은 왜 도박성 투자에 나섰나

[분석] SK 총수 미스터리... 되살아난 2003년의 투자악몽

등록 2011.04.25 21:32수정 2011.04.25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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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 회장 ⓒ 유성호

"한번 크게 (선물투자로) 데였던 사람이 또 (투자에) 들어간 것은 분명 이유가 있겠지. 물론 짧은 시간에 합법적으로 큰 돈을 만들수 있는 곳이 그쪽(선물시장) 밖에 없으니…."

25일 국내 한 대형증권사 투자분석팀장인 A씨의 말이다. 그는 이어 "최근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돈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서 "최태원 회장이 급전이 필요했다면, 그룹 경영권과 관련된 것 말고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계 3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1000억 원대 투자 손실을 두고, 금융권을 비롯해 재계 등에선 투자 배경과 자금출처 등을 두고 궁금증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게다가 시민사회단체까지 나서, 최 회장의 자금출처와 탈세 여부 등을 조사하라고 나서면서 파장은 더 커지는 추세다.

이와 관련, 국세청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최 회장의 투자 자금 출처 등에 대해 현재까지 확인된 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최 회장의 탈세 여부 등 추가 조사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꺼렸다. 최 회장의 SK그룹은 이미 지난 2003년에도 같은 선물(先物 )투자로 큰 손실을 보고, 사법처리까지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왜, 선물 거래에 뛰어들었을까

그렇다면, 왜 최 회장은 위험이 큰 선물투자에 다시 나섰을까. 첫 궁금증이다. 선물투자는 말 그대로 미래의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값으로 거래를 하겠다고 약속하는 거래방식이다. 주로 주식이나 원자재, 외국환 등을 가지고 한다.

자신이 예상한 대로 잘 맞아 떨어지면, 일반 주식시장에 돈을 넣어두었을 때보다 몇 배이상의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이익이 큰 만큼 물론 손실도 크다. 특히 선물시장은 적은 돈을 넣어두고, 그보다 몇 배 많은 빚을 내서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곳보다 '도박성'이 강하다.


알려진 대로, 최 회장이 선물시장에서 1000억 원대의 투자손실을 봤다면, 그만큼 큰 돈이 필요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왜 돈이 필요했을까. 증권가에선 최근새 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최씨 일가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한 대형증권사 투자분석팀장은 "최 회장이 선물투자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 2009~2010년은 (SK의) 지주회사체제가 완성되지 않았던 시기"라며 "이를 완성하기 위해 일부 계열사 주식을 사들일 목적으로 큰 돈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9월까지만 해도, SK그룹의 경우 순환출자 형식을 띠었다. 최태원 회장→SK C&C→SK㈜→SK텔레콤→SK C&C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최 회장의 SK㈜를 중심으로, 지주회사 체제가 되려면 SK텔레콤의 SK C&C 지분 9%(450만 주)를 처분해야 했다. SK 주변에선 최 회장이 이들 주식을 직접 사들이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좀더 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문제는 SK C&C 주가가 너무 높았다. 작년 초만 해도 5만 원 부근에 있던 주가는 9월 말께 2배이상 뛰어 10만 원을 넘기도 했다. 450만주를 사들이려면 4500억 원에 달하는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최 회장이 무리하게 선물시장에 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SK는 작년 10월과 올해 2월께 SK텔레콤의 SK C&C 지분을 우호 세력인 쿠웨이트 투자청과 KB금융지주 등에 각각 분할 매각했다. 이로써 순환출자 구조는 없앴다.

최 회장 그룹 지배권 강화? 사촌 간의 경영권 분쟁에 대비?

또 다른 분석도 있다. 그룹 지배권 강화를 위해 실탄이 필요했다는 분석은 주로 금융, 증권가에서 흘러나온다. 재계쪽에선 최 회장과 사촌 간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최태원 회장과 불편한 관계(?)로 거론되는 사람은 최신원 SKC 회장. 최신원 회장은 SK그룹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직계아들이다. 최태원 회장과는 사촌 간이다. 최신원 회장은 올 3월 SK네트웍스 주주총회장에서 "SK 창업정신이 흐려지고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어 SKC를 비롯해 증권과 네트웍스 등 계열사 지분을 매입하면서, 재계에선 한때 그룹 계열분리설 등이 나돌기도 했다. 최신원과 최태원 회장 간 갈등설도 이어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SK㈜ 지분을 30% 넘게 갖고 있는 최태원 회장이긴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면서 "혹시 모를 사촌 간의 경영권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의 개인적인 투자를 두고, 여러가지 말들이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그룹 경영권 분쟁 가능성 등의 이야기는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룹에서도 최 회장의 구체적인 투자 금액과 목적 등에 대해선 아는 바 없다"면서 "다만 과거처럼 회삿돈이 사용됐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정말 개인 돈으로 투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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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지난 2003년 검찰은 손길승 현 SK 명예회장이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이사회 결의없이 SK해운의 돈 7884억 원을 11개의 차명계좌를 통해, 해외 선물거래에 투자했다고 큰 손실을 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구속되는 손길승 현 명예회장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번 최 회장의 투자 손실 사건의 또하나 궁금증은 바로 돈의 출처다. 물론 SK쪽에선 회삿돈이 아닌, 개인 자금이라고 주장한다. 그룹 관계자는 "이미 알려진 바처럼, 최 회장은 지난 몇 년 동안 계열사 주식을 매각하거나, 담보를 통해 돈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최 회장은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에 걸쳐서 약 4000억 원의 현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8월 SK케미칼 주식 121만주(978억원어치)를 팔았고, 2008년엔 SK건설 주식 200억 원어치도 매각했다. 2009년 2월엔 SK㈜ 주식 103만 주(920억원어치)를 팔았다. 작년 9월엔 SK C&C 주식을 담보로 2000억 원의 돈을 빌리기도 했다. 이 돈을 모두 합하면 4000억 원이 넘는다.

한마디로 최 회장 개인 돈이 충분했으며, 이 돈이 선물투자 등에 쓰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SK㈜와 SK C&C 등의 주식은 최 회장의 그룹 지배권에서 매우 중요한 자산들이다. 이들 자산을 가지고, 위험성이 큰 선물투자에 썼다는 것이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SK는 이미 과거에 선물투자를 통해 80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날린 경험이 있다"면서 "물론 이 돈 역시 회삿돈을 몰래 빼돌려 썼기 때문에 당시 손길승 회장 등이 사법처리를 받았다"고 전했다.

김 소장은 이어 "그런 최 회장이 또 자신의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계열사 주식을 팔거나, 담보로 해서 선물투자에 나섰다는 것이 선뜩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국세청이 세무조사 과정에서 최 회장의 투자 손실을 파악했다면, 자금출처 등 조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지난 2003년 검찰은 손길승 현 SK 명예회장이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이사회 결의없이 SK해운의 돈 7884억 원을 11개의 차명계좌를 통해, 해외 선물거래에 투자했다고 큰 손실을 냈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손 회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사법처리를 받았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13일 중국 출장을 시작으로, 현재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등의 현지법인을 둘러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K 관계자는 "원래 예정됐던 출장이며, 이번 투자 손실건과는 관련이 없다"면서 "다음 주께 돌아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2003년 악몽이 되살아날 것인지, 단순한 개인적인 투자손실 사건으로 끝날 것인지, 최 회장만이 알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선물투자 #지주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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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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