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에서 떨어진' 한나라당, 세 가지를 몰랐다

[정치 톺아보기] 4·27 재보선과 이명박 대통령의 패배

등록 2011.04.28 12:01수정 2011.04.2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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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민주당 손학규 당선자가 27일 오후 경기도 분당구 정자동 선거사무실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보이며 기뻐하고 있다.(왼쪽)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서 낙선한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가 27일 오후 선거사무실에서 운동원들을 위로한 뒤 인사하고 있다. ⓒ 유성호·권우성


'재보선은 집권당의 무덤'이라는 선거 공식은 이번에도 유효했다. 야당이 승리했고, 집권여당은 패배했다. 국회의원 3석과 광역단체장 1석 및 기초단체장 6석이 걸린 선거에서 집권여당은 국회 의석 1석과 기초단체장 2석을 건졌을 뿐이다.

내역을 톺아보면, 손학규(민주당)와 이정희(민주노동당)가 이겼고 이명박과 한나라당, 그리고 유시민(국민참여당)이 졌다. 승패의 주체로 당이 아닌 인물을 앞세운 것은 이번 4·27 재보선이 2012년 총선과 대선의 예비선거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만 인물 대신 당을 내세운 것은 '행불 상수'나 '보온 상수'로 통한 안상수 대표의 리더십이 선거 전에 이미 바닥을 보였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잠재적 대권 후보도 아니다. 반면에 손학규와 이정희 그리고 유시민은 본인의 권력의지와 상관없이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꼽힌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안상수의 패배가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패배다.

4·27 재보선의 상징적 메시지 세 가지

이번 선거는 세 가지의 상징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첫 번째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다. 집권당이 전통적으로 여권의 표밭이었던 성남 분당을과 강원도에서 진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중에서도 특히 '천당 아래 분당'에서 패배한 것은 집권당에 충격적이다.

분당을 선거구는 선거법 위반이나 비리가 아니라 여당 의원이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옮기면서 생긴 궐석 선거였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강재섭 후보를 적극적으로 밀었고, 안상수 대표도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다. 강 후보를 반대했던 홍준표 최고위원까지 지원유세에 가세했다. 사실상 한나라당 의원 전원이 분당을에 매달렸다.


그러나 결과는 패배였다. 분당을은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71%의 몰표를 몰아준 곳이다. 강원도는 엄기영 후보가 최문순 후보를 20%p나 앞서다가 지난번 선거처럼 또 뒤집혔다. 두 곳에서의 패배는 내년 4월 총선에서 수도권과 중부권의 참패를 예고하는 것이다.

당장 한나라당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랑에 휩싸이게 되었다. 임태희 실장과 안상수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들의 거취 표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분당을 패배로 한나라당은 분당(分黨)의 위기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 홍준표 최고위원이 "분당을에서 지면 한나라당은 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두 번째는 무기력했던 야권이 2012년에 정권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희망과 야권통합-연대의 메시지다. 

이번 4·27 재보선은 애당초 손학규와 유시민을 위한 선거였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두 번째로 당 대표를 맡았지만 대선주자로서의 지지율은 늘 한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다를 바 없는 그로서는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는 잃을 게 없는 손학규는 한나라당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분당을에서 승리함으로써 야권 대선주자로서의 위상을 굳히게 되었다.

손학규와 유시민의 엇갈린 행보

지난 2월 15일 손 대표의 분당을 출마를 처음으로 공론화한 것은 <오마이뉴스>였다.

"제1야당 대표인 그가 지금 '유시민 지지율'의 벽을 넘지 못하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경쟁자들에게 먹히는 것 시간 문제다. 이명박과의 대결에서 시간은 손학규의 편이지만, 다른 경쟁자들과의 대결에서 시간은 손학규의 편이 아니다. 연말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까지 기다려줄 만큼 너그러운 경쟁자는 민주당에 없다. 존재감을 상실한 그로서는 돌파구를 만들어서라도 현재의 국면을 돌파해야 할 시점이다. 다행히 그 앞에는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4·27 재보선이 놓여 있다.

더구나 민주당 표적집단면접(FGI) 조사에서도 여야 지지성향과 상관없이 유권자들이 '거물'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에서도 강재섭 전 대표와 정운찬 전 총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어 '빅 매치'의 가능성은 그만큼 크다. 지금은 민주당이 강금실, 신경민, 조국 등을 내세워 '간'을 볼 때가 아니다. 지금은 정면승부할 때다. 그것이 손학규의 운명이다." .('거적때기'는 식상하다... '빅매치' 원하는 분당)


손학규 대표가 '사지'에 몸을 던져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야권 승리를 일궈낸 것은 '노무현 정신'을 실천해 민주당의 정통성을 잇는 것이다. 손 대표는 또 당내의 반발 속에서 '통 큰 연대'라는 말로 순천 무공천론을 밀어붙여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강조했던 야권 공동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래서 '시베리아'에서 일궈낸 손학규의 분당을 승리는 강재섭을 넘어 이명박과의 대결에서 이긴 것이다.

유시민의 힘의 한계, 민주당과의 통합 압력 가중시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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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한나라당 김태호(오른쪽) 당선자와 고배를 마신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가 28일 오전 김해시 장유면 창원터널 입구에서 서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반면에 고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통하는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패배했다. 그것도 손쉽게 승리할 줄 알았던 노 대통령의 고향 경남 김해을에서 한 달 이상 상주하면서 '진지전'을 펼쳤지만 패했다.

김해을 선거는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와 유시민의 대결이었다. 그러나 야권 대선주자 지지도 1위인 유시민은 이번에도 야권후보 단일화에서는 이겼지만 본선에서 패배했다. 지난 6·2지방선거 때도 민주당 김진표 후보와의 단일화에서 이겼지만 본선에선 김문수 후보에게 패했다. 가까이는 가장 적합한 야권 단일후보였던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의 출마를 밀어낸 '소탐대실'의 결과이거나 멀리는 본선 지지층의 확장력에 한계를 드러낸 결과이다.

이번 재보선에서의 원내 진입을 발판 삼아, 내년 총선에서 야권연대의 한 축을 이뤄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고, 그 세력으로 야권 대선후보를 거머쥐려는 3단계 집권 행보는 출발부터 브레이크가 걸렸다. 야권연대를 효율적으로 이뤄내 내년 총선에서 야당이 180석을 확보하고 그중 20석 정도가 참여당의 몫이라는 야심 찬 계획은 당장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원내진입 실패로 인한 국민의 무관심과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호기에 참여당의 힘만으로는 후보를 당선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힘의 한계'는 역설적으로 민주당과의 통합 압력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의 양보로 호남에서 처음으로 '교두보'를 확보했다. 민주당과의 연대협상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야권연대 과정에서 보여준, 유시민 대표와 대비되는 이정희 대표의 '통 큰 리더십'은 야권의 차세대 대선후보로서의 위상을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구태 선거운동에 대한 경고, 사회적 관계망(SNS)의 승리

세 번째는 구시대 방식의 선거운동에 대한 경고와 사회적 관계망(SNS)의 승리다.

최문순 후보는 모든 여론조사에서 10~20%p가량 엄기영 후보에게 뒤졌지만 '뚝심'으로 막판 뒤집기를 이뤄냈다. 언론노조운동으로 몸에 밴 최후보의 강단과 진정성이 일궈낸 승리이지만, 강릉의 한 펜션에 콜센터를 차려놓고 불법선거운동을 한 엄기영 후보의 구태를 응징한 결과이기도 하다. 집권여당을 반대하거나 야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선거 닷새 전에 발각된 '강원도 펜션 콜센터 사건'을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 전파시켰고, 이는 집권여당에 대한 '응징 심리'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 ⓒ 오마이뉴스 그래픽


젊은층과 노장층의 세대 대결 양상을 보인 분당을에서 보여준 투표율 대결은 더 극적이었다. 분당을 투표율 49.1%는 역대 재보선 평균 투표율(30%대)보다는 물론 이번 재보선 평균투표율(39.4%)보다도 10%p가량 높은 수치다. 분당을의 경우, 직장인들이 출근하기 전인 오전 9시 이전과 퇴근한 오후 6시 이후에 투표가 집중됐다. 오전 9시에 10.7%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해 전국 평균(9.7%)보다 높았다.

오후에는 젊은 층의 투표 열기에 자극받은 노장층이 투표장으로 몰려와 민주당과 손학규 캠프에 비상이 걸렸다. 선거 전날부터 선거일 아침까지 투표 독려문자를 보내고 투표 참여 인증샷 올리기 캠페인을 펼친 SNS에서는 다시 투표율 참여를 독려하는 'SOS'가 울려 퍼졌다.

투표 마감 시간인 오후 8시를 앞두고 넥타이를 맨 젊은층이 투표장으로 몰려 투표 종료 1시간을 앞둔 오후 7시에 42.8%였던 투표율이 6.3%p나 올라 49.1%를 기록했다. 직장인 퇴근 시간인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두 시간 만에 몰린 1만5002표는 전체 표 중 18.3%에 해당한다. 이는 분당을 노년층 유권자 비율을 압도한 수치다.

결국 세대간 투표 대결에서 SNS라는 신무기로 무장한 넥타이 부대가 이긴 것이다. 이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SNS가 위력을 떨칠 것임을 예고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은 '온라인 선거 승리의 법칙'만은 아니다. 야권연대라는 관점에서 보면, 김해을과 순천에서 보듯 오프라인에서도 혼자서 백 걸음보다 백인의 한 걸음이 더 소중함을 일깨운 선거였다.
#4·27 재보선 #SNS #손학규 #분당을 #최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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