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연합>이 '가평전투' 오보 바이러스?

[해외리포트] 호주군 희생자 수와 관련해 '오보의 바다'에 풍덩

등록 2011.05.06 10:24수정 2011.05.0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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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한국 중부전선에서 호주 국기를 게양하는 3대대(가평대대) 병사들. ⓒ 로열호주역사학회 제공

지난 4월 24일은 '가평전투' 60주년이었다(관련 기사 : "난 18세 소년이었고, 지금도 악몽을 꿉니다").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는 한국을 방문해서 '가평전투' 현장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하여 호주 출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길라드 총리는 "가평전투는 너무 오랫동안 잊힌 전쟁의 잊힌 전투(The forgotten battle of the forgotten war)였다"고 회고했다.

길라드 총리는 '가평전투' 현장을 방문한 최초의 호주 총리였다. 4월 24일자 <시드니모닝헤럴드>는 "길라드 총리, 망각한 전쟁을 기억하다(Gillard remember the forgotten)"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했다.

"60년 전, 가평전투에서 호주군은 32명이 전사하고 59명이 다쳤다. 그리고 3명이 포로가 됐다.(32 Australians died, 59 were wounded and 3 were taken prisoner during the battle of Kapyong)"

이 기사는 <시드니모닝헤럴드>가 호주의 대표적인 통신사 AAP에서 배포한 뉴스를 받아서 게재한 기사였다. 같은 날, 다른 신문과 방송에서도 똑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특히 위에 인용한 희생자의 숫자는 정확하게 일치했다. 참고로 '가평전투'에서 희생된 호주군의 숫자는 호주 인터넷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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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전투 희생자 숫자를 보도한 4월 24일자 <시드니모닝헤럴드>. ⓒ <시드니모닝헤럴드>


'오보 바이러스'의 발원지는?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자국 병사를 추모하기 위해서 한국을 방문한 길라드 총리의 행보는 한국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됐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한국 언론에서 보도한 호주군 사상자의 숫자가 틀리게 인용됐다. 그중에서 <조선일보>와 <연합뉴스>의 보도는 다음과 같다.

이 전투에서 호주군은 198명이 전사하고 38명이 실종됐다. 부상자는 892명에 달한다.
- 4월 25일, <조선일보> 김성민 기자 '호주, 美훈장 받은 왕실3대대를 가평부대로 불러'


호주 왕실 3대대는 당시(앞에 가평전투 언급했음) 198명 전사, 892명 부상, 38명 실종이라는 피해를 입었으며 지금도 '가평대대'라는 별칭을 갖고 있으며
- 4월 24일, <연합뉴스> 우영식 기자 '영연방 참전용사, 가평전투 60주년 기념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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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4월 24일자 기사 캡처. ⓒ <연합뉴스>


문맥의 앞뒤만 다를 뿐 <조선일보>와 <연합뉴스>에 인용된 숫자는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런데 호주육군 3대대(이하 가평대대)가 발간한 소책자 <가평전투 60주년>에 기록된 숫자는 AAP 기사와 똑같다. 과연 어느 쪽이 맞을까?

소책자 발간 책임자인 가평대대 소속 알렉스 루빈 본부대장을 인터뷰했다. 루빈 본부대장은 "가평대대에서 발간한 소책자에 기록된 숫자가 정확하다"고 주장하면서 "전쟁기념관은 물론이고 3대대 '가평전투기념관'에도 많은 자료가 있다"고 밝혔다.

루빈 본부대장이 건네준 소책자에는 사상자들의 군번과 계급, 그리고 이름이 명시되어 있었다. 참고로 <조선일보>와 <연합뉴스>가 보도한 '가평전투' 희생자 숫자와 가평대대가 발간한 소책자의 숫자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전사(Killed in Action) : 198명 대 32명(166명 차이)
부상(Wounded in Action) : 892명 대 59명(833명 차이)
전쟁포로(Prisoners of War) : 38명 대 3명(35명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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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대대 발간 소책자에 수록된 '가평전투' 전사자 명단. ⓒ 가평대대


헷갈리는 <조선일보>의 '한 신문, 두 보도'

바로 '가평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호주군 30명이 사망하고 50명이 부상당했다.
-4월 20일, <조선일보> 김성모 기자 '중국, 호주 총리의 6·25 기념식 참가도 문제 삼나'

이 전투에서 호주군은 198명이 전사하고 38명이 실종됐다. 부상자는 892명에 달한다.
-4월 25일, <조선일보> 김성민 기자 '호주, 美훈장 받은 왕실3대대를 가평부대로 불러'

위에 인용한 건 둘 다 <조선일보> 기사다. 그러나 첫 번째 기사의 숫자는 호주3대대의 숫자와 비슷하고, 두 번째 기사의 숫자는 큰 차이를 보인다. <조선일보>가 5일이라는 시차를 두고 상이한 보도를 내보낸 것.

<조선일보>는 4월 20일에 가평대대에서 밝힌 것에 근접한 수치를 내보낸 다음 5일 후에는 그것과 큰 차이가 나는 수치를 보도했다. 한 매체가 똑같은 사안을 5일 간격으로 보도하면서, 기자는 물론이고 데스크에서조차 사실 확인을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취재 도중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관리하는 대한민국 정책포털 '공감 코리아'에서도 똑같은 숫자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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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4월 25일자 기사 캡처. ⓒ <조선일보>


6·25 사업단 관계자 "한국 언론이 착각한 것 같다"

호주군 왕실 3대대는 198명 전사, 892명 부상, 38명이 실종됐으며, 지금도 가평대대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 대한민국 정책포털 '공감 코리아' 임진강, 가평전투 60주년, 영연방 참전 기념행사

혹시 <조선일보>와 <연합뉴스>에서 '공감 코리아'의 자료를 인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국제전화로 국방부 산하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단의 이강수 대령을 인터뷰했다. 이 대령은 "위의 숫자는 군사편찬위원회에서 기록한 정확한 자료"라고 주장했다. 이 대령의 설명을 정리하면 이렇다.

"6·25 발발 당시 호주 육군은 3개 대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 3개 대대가 전부 참전했다. 그중에서 3대대(가평대대)가 6·25 전 기간에 198명의 전사자를 기록했다. 한국 언론이 그 숫자를 '가평전투' 희생자로 착각한 것 같다. 결국 자료상의 문제가 아니라 전달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한 것 같아서 '공감 코리아'에 부연설명 첨가를 요구했다."

이강수 대령과 '가평대대' 알렉스 루빈 본부대장의 설명은 일치한다. 루빈 본부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평대대는 한국전쟁 발발 3개월 후인 1950년 9월 28일 부산항을 통해서 참전했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될 때까지 전투를 벌였다. 2개월 모자라는 3년이다. 한국 언론이 보도한 숫자는 3년 동안 발생한 '가평대대' 희생자 숫자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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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에서 열린 '가평전투' 60주년 행사에 참석한 줄리아 길라드 총리를 보도한 호주 국영 abc-TV. ⓒ ab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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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에서 북한군과 눈이 마주친 줄리아 길라드 총리를 보도한 호주 국영 abc-TV. ⓒ abc-TV.


<연합> 오보 그대로 받은 <매경>, <경인일보>, 호주 동포 언론, 현대중공업

루빈 본부대장의 설명을 정리하면 이렇다.

▲호주 육해공군이 3년 동안 기록한 사상자 : 전사 339명, 부상 1216명, 실종 43명, 포로 30명.
▲가평대대(3대대)가 3년 동안 기록한 사상자 : 전사 198명, 부상 892명, 실종 38명.
▲가평대대가 '가평전투'에서 기록한 사상자 : 전사 32명, 부상 59명, 포로 3명.

한편 수많은 언론매체(신문, 인터넷 매체, TV)는 <연합뉴스> 우영식 기자의 4월 24일자 보도를 그대로 받았다. 경제전문지 <매일경제>와 지방신문 <경인일보> 등에서 게재한 것. 이 기사는 현대중공업 웹사이트에도 올라 있다.

또한 <경인일보>도 앞에 예를 들었던 <조선일보>와 비슷한 보도행태를 보였다. 4월 21일자에 김민수 기자가 "아군은 41명(호주 31명, 캐나다 10명)의 인명피해를 낸 반면"이라고 보도해놓고, 3일 뒤에 <연합뉴스> 우영식 기자의 기사를 다시 게재하며 오보 대열에 합류했다.

호주에서 발행되는 동포 언론 매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간지와 주간지를 포함해서 여러 매체에서 <연합뉴스>의 보도를 인용했다. 호주 동포 신문들은 한국의 언론과는 달리 <시드니모닝헤럴드>나 호주 국영 abc-TV 등의 호주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인용했으면 오보를 피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조선>·<연합> 두 기자에게 5일 메일로 출처를 물었으나 두 사람은 아직까지 답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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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퍼레이드를 벌이는 3대대 용사들. ⓒ 윤필립


4월 24일 오전 10시 30분, 시드니 근교 홀스워디에 위치한 가평대대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가평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퍼레이드를 끝낸 다음 기자와 인터뷰를 한 트렌트 스콧 대대장은 "가평 퍼레이드는 호주육군 연례행사(Australian Army's calender) 중에서 아주 중요한 행사"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서 "많은 선배 참전용사들이 호주 전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셨다. 특히 휠체어를 타고 퍼레이드에 참석하신 벤 오도우드 대령의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며 "가평전투에서 비롯된 3대대 정신은 지금도 살아 있고 앞으로도 가평대대에서 잘 보전될 것(The spirit from that time is still alive and well in the Kapyong battalion)"이라고 말했다.

부활절 연휴 중간이었지만 가평대대 연병장에는 수많은 관람객이 운집했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굉음이 울리고 붉은색 연막이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동안,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3대대 병사들은 건물침투시범훈련(Building attack demonstration)을 실제 상황처럼 펼쳤다. 이어서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가평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연단 바로 옆에 위치한 관람석에 앉아 있던 존 브라운(89) 참전용사는 "2/400116 군번으로 2년 동안 가평전투와 마령산전투에 직접 참전했다"며 "가평전투 참전용사는 대부분 작고했다. 이렇게 멋진 퍼레이드에 아주 소수만 참석해서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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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오도우드 대령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벤 로버트-스미스 상병. ⓒ 윤필립


#가평전투 #오보 #한국전쟁 #조선일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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