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할머니 찐빵

등록 2011.05.05 10:33수정 2011.05.0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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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빵 할머니 가게 가게 안에 앉아 있는 할머니 ⓒ 최성규


보건지소를 나와 나로도 항구 쪽으로 쭉 이어진 길을 따라 걷는다. 조금만 가다보면 치킨집이 나오고 그 옆에 아담한 천막이 있다. 파란 천막에 '할머니 찐빵'이라는 작은 종이가 붙어 있다. 바로 '홍중심' 할머니가 운영하는 찐빵 가게. 


날씨가 따뜻할 때는 천막이 꽁꽁 잠겨 있다. 그러다 찬바람이 불라치면 문을 여는 찐빵 가게. 할머니 혼자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좁디 좁다. 그 안에 작은 살림살이. 막 반죽한 찐빵이 놓여있는 평상.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이 살포시 앉아있는 솥.

나로도에서 유일한 찐빵 독점기업이지만 가격은 참 착하다. 1000원에 찐빵 세개. 크기도 적당하거니와 팥고물도 실하다. 대형마트들이 착한 가격을 유별나게 홍보 해대지만 여기에 비할 바는 아니다. 더 올려 받아도 될 거 같은데 할머니의 원칙은 변함이 없다.

환자분들이 좀 뜸해진 늦은 오후. 살살 다가오는 배고픔에 찐빵가게로 발을 떼어놓는다. 가게 앞에 우두커니 서서 손가락으로 찐빵 개수를 말한다. 홍중심 할머니는 말을 듣지 못하시기 때문이다. 다행히 말은 가능하셔서, 눈치껏 대답도 하고 찐빵도 담아주신다.

올해는 날이 따뜻해졌는데도 가게가 문을 열었다. 지난 겨울이 너무 추워서 이제야 열었나보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드릴려고 천막 앞을 기웃거렸다. 가게 안에 앉아있던 할머니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두 손을 들며 반색을 하신다. 그러다 갑자기 손이 바빠진다. 인사만 하고 가려던 나에게 건네는 비닐봉지. 안에 들어있는 찐빵 5개. 이리 퍼주고 남는 게 있을까. 마침 장을 보고 오느라 수중에 고구마가 있었다. 실한 놈으로 추렸다. 똑같이 5개를 드리니 오히려 미안해 하신다. 그만 주라며 내 손을 잡는다. 하지만 오는 정에 가는 정이다.

이 분을 처음 뵌 것은 보건지소에서였다. 어느 날, 진료를 받으러 오신 할머니. 초진 환자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등록해야 한다. 홍XX. 뭐라구요? 할머니. 홍&%. 직원이 못 알아들어서 답답한 할머니. 알아듣기 힘들어서 답답한 간호사 선생님. 몇 차례 통성명이 오가도 별 소득이 없자 할머니는 답답했는지 횅 나가버리셨다. 그 후로 진료실에 더 이상 오지 않는 할머니를 찐빵가게에서 만났다. 봉지에 찐빵을 싸주시면서 보건소에 침 맞으러 가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아직까지 지키지 않은 약속.


이젠 그 약속을 나도 못 지키게 되었다. 다른 보건지소로 옮길 날이 다가온 것이다. 서서히 짐을 정리하던 중 할머니 생각이 났다. 나로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찐빵도 이젠 안녕이다. 코가 많이 안 좋다던 할머니. 겨울에 찐빵 파느라 무리하면 또 심해질텐데. 문득 찐빵이 먹고 싶어졌다.
#찐빵 #할머니 #한의사 #공중보건의 #나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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