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쏟아낼 수밖에 없던 앙카라 한국공원

8일 간의 터키일주

등록 2011.05.09 14:35수정 2011.05.0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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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한국공원의 입구, 한국과 터키의 국기 모양을 차례로 새겨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 최지혜


아직도 생생하다. 2002년 대한민국들 뜨겁게 달궜던 월드컵의 열기. 준결승전에서 아쉽게 패배를 한 두 나라가 3,4위전에서 나란히 마주섰다. 양국은 상대편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며 서로를 응원했다. 경기의 시작에 앞서 개회식때는 보기 드물게 양국의 국기가 관객석에서 한꺼번에 물결치는 가슴벅찬 광경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멋진 경기를 보여주고 난 후, 승패에 관계없이 서로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훈훈한 형제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대한민국과 터키. 이 두나라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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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인 석탑인 석가탑을 본떠 만든 위령탑 ⓒ 최지혜


그로부터 9년 후. 버스에서 우르르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내린다. 닫혀져 있던 공원 문이 열리고 한 어린 터키인 소녀가 입구에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건넨다. 쭈뼛쭈뼛 수줍은 듯 눈인사를 하며, 조그마한 입에서 나온 말은 "안녕하세요". 조금은 어색하지만 분명한 한국어다. 그런 모습이 사랑스러워 다가가 그녀의 손을 꼬옥 잡고 "안녕"이라며 인사를 건넨다. 이윽고 인상이 좋은 한 부부가 웃으며 인사를 한다.


이렇게 세 명의 가족이 지키고 있는 이곳은 터키의 앙카라에 있는 한국공원이다. 작은 공원부지에 싱그러운 꽃들이 둘러져 있고, 이른 저녁 청사초롱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공원은 정 가운데에는 한국전쟁 당시 목숨을 잃은 터키군의 이름들이 새겨진 석판이 양쪽으로 세워져있고, 그 중앙에 석가탑을 닮은 위령탑이 은은한 빛을 내며 서있다. 한국공원이라는 이름답게 한국을 대표하는 탑의 모습을 닮기 위해 3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완성된 탑이다.

공원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로부터 간단한 사연들을 들어서였을까?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탑 아래에서 진행된 몇 초의 묵념시간이 그렇게 숙연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땅과 민족을 지켜내기 위해 싸우다 목숨을 다한 그들에게 짧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난 뒤 가이드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다시 한번 전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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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원에 세워진 석판에는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터키군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 최지혜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터키에서 지원군을 보낸 이유는 나토에 가입하기 위해서였다. 그 동기가 어떻든 20대 초반의 많은 젊은이들이 참혹한 전쟁의 현장에 파병되었고, 그들의 청춘은 피가 되어 한국땅에 뿌려졌다. 전쟁이 끝나가고 본국으로 돌아갈 때가 가까워왔음에도 터키군은 유독 한국에 대한 걱정을 거두지 못하고 고아원을 지어 전쟁에서 혼자가 된 아이들을 자기의 자식처럼 돌보기까지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현지에 거주하는 가이드로부터 전해들은 말은 가슴이 저리도록 고마움을 갖게했다. 얼마전 연평도 사건이 있었을 때, 터키의 국민들은 그 사건을 이렇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나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지켜낸 땅을 우리가 지켜야한다. 한국에서 다시 전쟁이 난다면 꼭 가서 돕겠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일부도 있겠지만 정작 한국의 교민들은 자신은 다른 나라 땅에서 살고 있다며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고 하고,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역시 피난갈 궁리만 했던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젊은 그들의 영혼이 애달퍼서였을까? 그들의 사랑이 고마워서였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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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원의 밤을 밝히는 청사초롱 가로등 ⓒ 최지혜


간신히 참아낸 눈물이 터져버린 것은 몇 분 후였다. 이 한국공원을 관리하고 있는 아저씨와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나서다. 언젠가 불시에 이 공원을 찾은 적이 있는 가이드는 관리인 아저씨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많지 않은 수당을 받고 하고 있는 일이지만, 아저씨는 이 공원을 자신의 집처럼 관리한단다. 정원에 심어진 꽃들을 일일이 손수 다듬고 정성스럽게 물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아내와 어린 딸도 매일같이 나와 함께 공원을 지킨다고 한다.

가이드의 말을 듣고 뒤돌아서며 아저씨가 눈이 들어왔을때 어떤 연민과 고마움이 복받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래전 한국전쟁에 참가했다가 생존한 터키인들이 방한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들이 쏟아냈던 눈물과 비슷한 감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쟁을 마치고 돌아가며 폐허가 된 이 땅이 앞으로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는데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흘린 눈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작 이 나라를 도왔던 자신들의 나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그것에 대한 연민도 더해졌다고 한다. 내나라의 은인이자 형제인 그들에게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 우리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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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원 입구에 놓여진 방명록 ⓒ 최지혜


사실 처음 일정에 한국공원이 포함되어있는 것을 보고 많이 실망스러웠다. 거기 뭐 볼것이 있다고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나 싶었다. 그런데 터키의 아름다운 자연이나 고귀한 유적지보다 여행내내 내 마음 한구석을 잔잔하게 울린 곳은 바로 이곳이었다.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면 앙카라에 있는 한국공원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애절하게 들려준 가이드의 진심어린 설명이 없었다면 이런 감동은 미처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이곳은 그저 그런 시간낭비인 동네공원정도로 남았을 거다.

터키 여행의 본격적인 이야기를 이곳부터 시작하는 이유도 터키와 우리와의 끈끈한 인연에 대해 들려주고 싶어서다. 이렇게 터키가 우리의 마음속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 모두가 나와 같은 감동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욕심마저 든다. 여행의 첫날 이곳을 방문하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앞으로 터키를 더 아름다운 눈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공원을 나오며 방명록 한 페이지에 '한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마음을 표했다. 나의 진심이 영혼이 되어 떠돌고 있을 그들의 마음에 가 닿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여행은 2011년 4월 26일부터 5월 3일까지 이뤄졌습니다.

이글은 개인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dandyjihye.blog.me


덧붙이는 글 여행은 2011년 4월 26일부터 5월 3일까지 이뤄졌습니다.

이글은 개인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dandyjihye.blog.me
#세계여행 #유럽 #터키 #앙카라 #한국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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