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자부심이 클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더군요"

[인터뷰] 다큐멘터리 <오월愛> 김태일 감독

등록 2011.05.09 15:15수정 2011.05.0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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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보니 어느새 5월이다. 숫자를 따라가며 휴일을 확인하다 5일에 한 번, 10일에 두 번 미소를 지었다. 쉴 만한 다른 건더기는 없나 달력을 보던 눈동자가 18일에 멈췄다.

 

'그래, 5월에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있었지.'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5·18 민주화운동을 그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속의 짧은 몇 줄로만 기억할 때, 빠른 속도로 잊혀가는 5월의 광주를 그 '기적 같은 봄날'을 카메라에 담아낸 다큐멘터리 <오월愛> 감독 김태일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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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愛 감독 김태일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월愛 감독 김태일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명함이 특이했다. '다큐멘터리 프로덕션 상구네-김태일 주로미'라고 찍혀있다. 15살 된 아들 이름이란다. 다큐를 찍는데 가족들이 다함께 참여해 돈이 가장 적게 드는 프로덕션을 꾸렸다. 일종의 '가내수공업'이라고 할까.

 

"아들의 직설적인 이야기로 한다면 이제 아빠도 돈 되는 일을 해야 되지 않겠냐, 아빠 좋아하는 일만 해서 어떻게 살 수 있냐고 극영화나 대박나는 것 좀 만들어 보라고 계속 잔소리를 해요. 다큐멘터리가 돈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다보니 작업과 생활이 별개로 가야되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못 되죠… 광주에서 작업할 때 한 달 정도 아들과 함께 있었어요. 데리고 다녀보니까 확실히 배우는 게 많더라고요. 5·18은 책 속의 몇 줄 글로 밖에 없는데 그때 당시 참여했던 분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게 애한테도 큰 느낌과 자극이 있었나 봐요. 이제 조금씩 아빠가 하는 작업에 대해 아는 것 같고요. 그러더니 이젠 뭐 자기가 돈을 벌어서 투자하겠다 이런 얘기도 하고 그래요."(웃음)

 

친구처럼 살가운 부자의 우정이 엿보였다. 시인을 꿈꾸며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던 그는 '제 나름의 몫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다큐멘터리에 뛰어들었다. 첫 작품이 <원진별곡>(1993)이다.

 

"원진레이온이 원래는 양복 안감 같은 걸 만드는 곳인데, 일본에서 노후화된 기계들을 한국이 수입을 해 온 거예요. 일본에서도 관련 노동자들이 직업병을 많이 앓았던 건데 한국으로 들여온 거죠. 한국은 나중에 직업병 인정을 받았는데 일본은 못 받았어요. 93년도쯤에 중국으로 팔려갔는데, 이게 자본주의 발전단계와 비슷하죠. 일본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다시 중국으로. <원진별곡>은 원진 레이온 노동자들이 직업병을 인정받기까지의 싸움을 다뤘습니다."

 

<원진별곡> 이후 가장 필요한 작업이지만 방송에서는 다루지 않는 이야기, 그게 지금 가장 필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에서 다루다 보니 지금까지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만 다루게 되었다는 그.

 

역사란 것은 이야기되지 않으면 기억되지 못한다

 

그런 그의 시선이 5·18민주화운동에 머문 건 어쩌면 당연한 귀착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한국 사회의 모습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자 '민주화의 토대를 마련'해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가 고2때 몸이 안 좋아서 2달간 고향(경북 예천)에서 요양을 했었어요. 그 때 뉴스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때 당시 폭도들의 난동, 그런 기억들이었는데, 저는 내심 저렇게 자국민들을 폭력적으로 대할 수 있을까. 폭도들이 아니라 일반 시민같이 보이는데. 이런 의혹 정도만 가지고 잊고 있다가, 대학에 가서 5월에 관한 세부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인생관과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지요."

 

그가 풀어가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역사적 현장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 본 적 없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이다.

 

"그분들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자부심이 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뵙고 보니, 그런 자부심이 안 보여요. 어쩌면 배운 것도 없고 그래서 자기가 하는 것들을 당당히 말하거나 인정받지 못하지 않았나. 그래서 그 분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고, 그 분들께 참 고생이 많으셨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리는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죠."

 

<오월愛>에 나오는 분들을 인터뷰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다들 인터뷰하기를 극도로 꺼렸다. 신뢰를 맺기까지 근 1년이 걸렸다. 아예 광주에 내려가 대인시장 근처에 터를 잡고 다큐멘터리 제작에 들어갔다.

 

"광주에서 40대 이후 나이 드신 분들은 5·18에 대해서 모르는 분들이 없거든요. 다 생생한 체험을 했잖아요. 누구를 만나도 다 할 이야기가 있으신 분이니까. 그런데도 인터뷰는 절대 안 한다 그래요…. 하루는 대인시장에서 토마토 파시는 아주머니가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거예요. 인터뷰를 못해서 풀이 죽어있었는데 그 목소리를 들으니 힘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토마토를 사 먹게 됐는데 아, 토마토 파시는 아주머니가 항쟁 때 주먹밥을 하셨다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친해지면서 카메라로 찍고…."

 

시기적으로, 지리적으로 5·18 민주화운동의 외부자라는 그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광주 현지의 분위기에 5·18을 지금 시점에서 다루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전남대 정문 같은 경우, 자긍심으로 여긴다면 허물지 않거든요. 그게 현실적으로 광주지역에서는 5·18에 대한 기억들을 잊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아픈 상처니까. 광주에 계신 분들마저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다보니까, (과거만 가지고 살 수는 없으니) 도청 철거를 하자, 광주도 경제 발전을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쪽으로 사람들 목소리도 옮겨가고…. 마지막까지 있었던 항쟁 유적지가 사라지면 그 기억도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유적지가 사라지면서 우린 역사를 책으로밖에 만날 수 없고 그런 사실들이 안타까워요."

 

5·18 민주화운동은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기억할 만한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그런 인식은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제작에 더 힘을 쏟게 되었을까. 

 

5월을 넘어 세계의 민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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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애 포스터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월애 포스터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언제나 우리가 무관심했던 소외된 곳을 조명하던 그다. 그에게 광주는 결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5·18 민주화운동처럼 누군가에 의해 일방적 시선의 피사체로만 인식되고 기억되었던 제3세계의 사람들로 시선은 옮겨갔다.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는 다른 시선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은 <민중의 세계사> 10부작 기획으로 움트고 있다.

 

"<민중의 세계사>란 타이틀로 10부작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1편은 오월愛였고, 2편은 인도차이나, 3편은 팔레스타인을 그려낼 생각입니다. 세계사가 주로 제1세계가 만들고 이론화시킨 거잖아요. 정작 제1세계로부터 고통 받았던 제3세계 시선의 세계사는 없습니다. 그게 안타까웠어요. 가령 캄보디아에 대해 알고 싶어 찾아보면 프랑스 사람들이 만든 책들이 가장 자세히 다루고 있죠. 인도차이나전쟁 하면 우리들은 그냥 베트남 전쟁으로만 알고 있지만,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이라든가, 라오스에 대한 미국의 비밀전쟁도 있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부분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그 땅에서 살아가는 정말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역사의 괴물 앞에 산 개인들의 이야기에 시선을 두는 그는 인도차이나에서도 밑바닥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룰 생각이다.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 그리고 그런 사연들이 느끼는 연대가 <민중의 세계사> 연작들 속에서 어떻게 되살아날지 기대가 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내가 먹을 몫까지 이웃과 나누는 공동체 정신, 인간들이 연대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10일 동안의 광주'를 젊은이들은 주목해야 한다며 힘주어 말하는 그.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그 때의 현장에 있었던 분들을 말하는 그가 있기에, "산 자"들은 잠시나마 그 분들을 기억한다. 빨간 날부터 챙기던 나를 포함하여.

덧붙이는 글 | - 5·18 다큐멘터리 오월愛는 5월 12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Blog.naver.com/ nona-mestars, Twitter. @truedocu/ @cinemadal)

- 이 기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희망세상> 5월호에도 실렸습니다. 

2011.05.09 15:15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 5·18 다큐멘터리 오월愛는 5월 12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Blog.naver.com/ nona-mestars, Twitter. @truedocu/ @cinemadal)

- 이 기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희망세상> 5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월애 #김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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