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날아온 청첩장에 '찜찜'

울며 겨자 먹기로 가야 할 사이도 아닌데... 우울하네

등록 2011.05.13 13:58수정 2011.05.1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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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 ⓒ 오문수


퇴근을 앞두고 책상을 정리하는 데 편지 한 통이 왔다. 무슨 편지일까? 알고는 지내지만 20년 정도 만나지 않던 사람의 편지다. 부부의 성명이 적혀있는 걸로 봐서는 청첩장이나 초대장이 아닐까? 봉투를 개봉한 순간 딱딱한 종이가 보인다. 그랬다. 청첩장!


누군가 "편지란 정이 담긴 나의 목소리를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 글로 적어 보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성 편지에서는 두근거림을, 오랜 친구한테서는 흐뭇함과 미더움을, 군에 있을 때 보내오는 가족 편지에서는 위안을, 고도원의 편지에서는 깨달음을 얻는다.

뭘까? 하는 기대는 이미 "아! 그럼 그렇지"로 확답을 하고 내용을 대충 훑어 본 후 책상머리에 던진다. 아들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해 달라는 내용이다.

남의 자녀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마음속에 파문이 일고  기분이 찜찜하다. 혹 20년 전에 우리 집 애경사에 경조사비를 보냈는데 내가 기억하지 못한 건 아닐까. 내가 혹시 빚진 건 아닐까? 곰곰 생각해봐도 아니다.

내 속 좁은 생각으로 축의금을 계산했기 때문일까. 허긴 이번 주말에 축의금을 내고 자리에 참석해야 할 곳이 세 곳이다. 비슷한 시간에  열리는 결혼식 세 곳은 내가  반드시 참석해야 할 자리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지인들 양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자녀들 결혼식으로 나가는 경비도 상당하다. 

그러나 20년 만에 그리고 그렇게 친하다고 생각이 안 드는 사람한테서 받는 청첩장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무슨 뜻으로 보냈을까? 그냥? 아니면 모 고위직 인사가 몇 년 전 지위를 무기(?)로 보냈던 씁쓸했던 청첩장과 동종? 그런데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가야할 처지도 아니다. 시골처럼 한 마을에 살아 어쩔 수없이 얼굴을 봐야 할 처지도 아니다.


요즘 뉴스에는 자녀 결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치른 후 나중에 언론에 알려지는 미담이 종종 들린다. 나는 그런 훌륭한 사람은 못되지만 잘 알지도 못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는 부모님 상을 당했을 때도 알리지 않았다. 행여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해서다. 몇 년 전 돌아가신 부모님 상에 조의금을 보낸 건 아닐까 하고 찾아봐도 아니다.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이나 위로전화 한 통 했던 적도 없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참가해 마음과 물질을 나누던 것은 옛날 살기가 어려웠을 적 상부상조하던 미풍양속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러한 미풍양속이 변질돼 준조세쯤으로 여기는 세태다. 일 년에 참가하는 경조가가 수십 건이면 부담이 되는 게 당연하다. 그것도 마음에 없는 청첩장을 받을 때는 더욱 씁쓸하다. 


20년 만에 받는 청첩장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지만 차라리 청첩장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좋은 면만 기억하고 있었을 텐데….
#청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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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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