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자던 터키 상인, 이런 이유 있었네

[8일간의 터키일주] 이스탄불의 남대문 시장이라는 '그랜드 바자르'

등록 2011.05.19 13:49수정 2011.05.1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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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바자르의 입구 ⓒ 최지혜

그랜드바자르의 입구 ⓒ 최지혜

서울에 남대문 시장이 있다면, 이스탄불에는 그랜드 바자르가 있다. 이곳은 터키어로 '카파르 차르쉬'라고 부르며 '지붕이 있는 시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베야즈트 지구에 위치하고 있는 거대한 시장은 그 크기가 세계 최대이며 출입구만 해도 20개이고, 65개의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마치 미로와 같다.

 

그 통로 60여 개에 상점이 5,000여개라고 하니 실감조차 할 수 없는 규모다. 현지인보다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그랜드 바자르는 방문자 수가 여름에는 10만 명, 겨울에는 3~4만 명에 육박한다. 동서양의 문명이 만나는 곳, 그곳의 시장을 둘러보자.

 

이스탄불의 주요 유적지라는 블루모스크, 성소피아성당, 톱카프 궁전을 둘러보고 케밥으로 점심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앙카라로 떠나기 전, 그랜드 바자르에서 쇼핑을 즐기는 것이 다음 일정이다. 그랜드 바자르로 걸어서 이동을 하기로 하고 가이드를 따라나서는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날씨가 흐려도 좋으니 비만은 오지 않기를 바랐거만 결국 후드를 뒤집어쓰고 10분 정도 걸었던 것 같다.

 

걷는 동안 마주친 터키인들은 정말로 유쾌했다. 우리를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곤니찌와~"라고 말을 걸어오는가 하면, 한 터키인은 우리 일행 중 유일하게 20대였던 남자아이를 향해 "사무라이?"라고 말을 걸기도 했다.

 

때로는 중국인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고, 한국인임을 안 터키인들은 더욱 반갑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네주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가이드에게 세되교육을 받은 대로 "메르하바(안녕하세요)" 라고 방긋 웃으며 받아쳐줬다. 수많은 상점들을 지나치며 인사를 몇번이나 외쳤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 없으면서도 유쾌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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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바자르의 크기는 세계 최대. ⓒ 최지혜

그랜드 바자르의 크기는 세계 최대. ⓒ 최지혜

그랜드 바자르 안쪽으로 들어서면 긴 통로처럼 길이 이어지고 양쪽으로 상점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있다. 그런데 이 길이 다가 아니다. 길의 사이 사이로 골목들이 뻗어있고, 그 골목들 하나 하나에서 또 골목길이 생겨난다. 가이드를 따라 중앙지점까지 이동한 후, 그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약 한시간여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앞서 둘러봤던 관광지들에서 줬던 자유시간에 비하면 아주 긴 시간이지만, 이 거대한 시장을 둘러보기에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나마 나는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다행이다. 문제는 이 복잡한 미로 속에서 약속장소를 찾아올 일이 걱정이라는 것이다. 머릿속에 나의 동선을 그려가며 천천히 쇼핑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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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특산품인 카펫 ⓒ 최지혜

터키의 특산품인 카펫트 ⓒ 최지혜

그랜드 바자르에서는 다양한 터키의 특산품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많이 보이고 또 그만큼 유명한 것이 카펫이다. 이곳뿐 아니라 어느 상점거리를 가도 길이나 쇼윈도에 전시되어 있는 화려한 카펫들을 볼 수 있다. 이란의 카펫이 유명하다고 하지만, 터키의 카펫을 따라올 수는 없다. 터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올로 실을 꼬아서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헤레케 카펫은 오스만 제국시절 궁전에 사용할 목적으로 전국에 있는 장인들을 이주시켜서 생산했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다. 또한 동서양의 문물이 만나는 곳이라 그들의 문화가 혼합된 특이하고 화려한 문양의 카펫을 만날 수 있다. 그만큼 가격이 엄청나서 나 같은 서민들은 구경하는 것만으로 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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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자는 말로 호객행위를 시작하는 터키인들의 영리한 상술 ⓒ 최지혜

사진을 찍자는 말로 호객행위를 시작하는 터키인들의 영리한 상술 ⓒ 최지혜

왜 이스탄불의 남대문 시장이라고 했는지 알만하다. 시장 거리를 기웃거리고 있으니 귀찮은 호객꾼들이 자꾸만 달라든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을 상대해봤는지 그 요령도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랜드 바자르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5개국어 정도는 기본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한참 구경을 하고 있는데 한 상인이 목에 걸고 있는 카메라를 가르키며 "take my picture"라고 말을 건넨다. 가이드로부터 사진을 찍자고 하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았던 탓에 그를 경계할 수 밖에 없게 되더라. 그래서 머뭇머뭇 망설이고 있었더니 자꾸만 사진을 찍자며 자기를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혼자였다면 오히려 도망갔을지도 모르지만, 오빠와 함께라 조금은 의지가 되어 그를 따라갔다. 그가 멈춰선 곳은 어느 카펫 가게 앞, 자신의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던 거였다.

 

오빠랑 나랑 차례로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고 났더니 이제는 축구 얘기를 꺼낸다. 2년전 한국의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던 사람이 자신의 사촌이라며 공감대를 이끌어내려고 하지만 오빠랑 나는 둘다 대표팀 코치 이름과 얼굴까지 알 정도로 축구에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저 A매치가 있을 때나 뜨거운 애국심과 친구들과 환호하는 맛으로 보는 정도일 뿐. 나름대로 리액션을 한다고 했지만 우리의 반응이 영 심심했을 것이다. 인사를 하고 다시 가던 길을 가려고 했더니 가게에 들어가 구경을 하고 가라고 한다. 그제서야 '아, 이거였구나.' 싶었다. 여행객의 심리를 이용한 일종의 상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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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캔들램프 ⓒ 최지혜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캔들램프 ⓒ 최지혜

많은 볼거리들이 가득한 시장 안에서 가장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이 캔들램프들이었다. 화려한 색감과 촛불의 은은함이 조화를 이뤄 로맨틱한 빛을 만들어낸다. 아마 내가 이것 저것 들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하나 샀을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모던한 분위기로 꾸며진 내 방과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했지만, 구입하지 않은 더 큰 이유는 들고다니는 것이 귀찮아서다. 물론, 가격을 알게 되었다면 더 쉽게 포기했을 거지만.

 

터키는 밸리댄스가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바자르에서는 많은 댄스 의상들을 판매하고 있다. 터키여행의 마지막 밤에 밸리댄스를 볼 일정이 있었는데 인원수가 부족한 이유로 아쉽게 취소가 되었다. 사실,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볼 수 없게 되니 더 아쉽게 느껴졌다. 술탄을 유혹하기 위해 췄던 춤이라는 그 치명적인 배꼽춤을 봤어야 하는데 말이다.

 

한땀 한땀 수를 놓은 운동화는 또 한번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나는 물건 하나를 구매하는데 꽤 오랜 생각을 하는 편이다. 사고싶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나에게 필요한지, 갖게 된다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를 다시 한번 고민한다. 이 운동화는 소장용으로라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쳐박아놨다가 결국은 버리느니 안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감하게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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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색깔과 문양의 물담배 기구들 ⓒ 최지혜

화려한 색깔과 문양의 물담배 기구들 ⓒ 최지혜

터키에서 유명한 걸로 치자면 물담배를 또 빼놓을 수 없다. 이스탄불의 곳곳에는 물담배를 필 수 있는 까페도 있다. 노천까페에서도 물담배를 피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랜드 바자르에도 물담배 기구를 판매하고 있다. 역시나 그 색깔과 문양이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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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내부 골목길에서 볼 수 있는 카페나 음식점들 ⓒ 최지혜

시장 내부 골목길에서 볼 수 있는 까페나 음식점들 ⓒ 최지혜

시장 골목의 곳곳에는 바깥쪽에 테이블이 놓인 까페나 음식점들을 만날 수가 있다.  이곳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기도 하지만 '차이(차)'문화에 익숙한 터키인들이 차를 마시기도 한다. 터키에 다녀온 후에 보았던 여행 전문 프로그램에서 그랜드 바자르가 소개되었다. 이곳에서 차를 배달하는 사람들을 다루는 내용이었는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점들과 찻집이 연결이 되어 있어 전화를 걸면 스피커폰으로 주문을 받아서 배달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여행 전에 봤다면 조금은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후회가 되기도 했다. 역시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여행가기전 그곳에 대한 공부는 충분히 해두는 편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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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바자르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판매되고 있다. ⓒ 최지혜

그랜드 바자르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판매되고 있다. ⓒ 최지혜

이 밖에도 화려한 도자기 그릇들, 전통 악기, 액세서리, 과일로 만든 비누 등 다양한 터키의 특산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처 사진을 찍어오지 못했지만 꼭 소개해야할 것이 있다. 바로 '나자르 본죽(Nazar boncuk) '이라고 불리는 부적같은 물건으로 겉은 푸르고 가운데는 까만 구슬과 비슷하다.

 

이것은 그랜드 바자르 뿐만 아니라 터키의 어느 기념품샵이나 휴게소 어디에서든지 판매하고 있을 정도로 통용화된 것이다. 나자르는 '악마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뜻이고, 본죽은 '구슬'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악마의 눈을 가둬놓은 구슬로 이것을 지니고 있으면 모든 화가 도망을 간다 하여 집이나 사무실 또는 버스 등에 걸어놓고 다닌다. 얼토당토않는 미신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곧은 심지를 갖고 있어 당시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굳이 미신때문이 아니더라도 인테리어용으로 사용하기에도 괜찮은 듯 하다.

 

약속시간이 가까워져 다시 돌아가는데 쉽지가 않다. 머릿속에 나름대로 동선을 그리며 움직였는데도  어느새 헤매고 있었다. 몇 번의 착오 끝에 겨우 우리가 만날 장소를 찾아냈다. 그랜드 바자르를 간다면 거의 직선으로 길게 이어진 중앙거리를 기준으로 잡고 쇼핑을 하는 것이 길을 덜 헤매는데 좋을 것 같다.

 

쇼핑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스탄불에 간 이상 그랜드 바자르는 한 번 정도 들러주면 좋을 것 같다.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도, 진귀하고 화려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dandyjihye.blog.me

2011.05.19 13:49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dandyjihye.blog.me
#터키 #이스탄불 #그랜드바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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