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가 시한폭탄과 같다?

히로세 다카시의 반핵평화소설 <체르노빌의 아이들>

등록 2011.05.19 10:33수정 2011.05.1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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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냐는 머리카락을 한 움큼 손에 꽉 쥐고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무의식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는 찰나,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흠칫했다. 아무런 통증도 없이 한 움큼의 머리카락이 손에 묻어나왔던 것이다. 여태까지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타냐는 혹시라도 아들이 봤을까 싶어 얼른 고개를 돌려 이반을 살펴보았다."(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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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체르노빌의 아이들〉 ⓒ 프로메테우스

▲ 책겉그림 〈체르노빌의 아이들〉 ⓒ 프로메테우스

히로세 다카시의 반핵평화소설 〈체르노빌의 아이들〉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책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사고로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쑥대밭이 된 모습을 그려낸다. 폭발한 원자로에서 새어나온 유독 가스가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우크라이나 전역을 뒤덮는다.

 

그 사이 정부 당국은 버스를 동원해 피난길을 마련하지만, 이미 아이들은 가스에 잠식된 뒤였다. 하여 팔과 다리와 귀와 잇몸을 비롯하여 전신에 붉은 반점이 생겼고, 며칠 지나자 머리까지 쑥쑥 뽑혔다. 그 사이 시력 저하와 다리 쇠약증세로 익사한 양떼들이 하천에 둥둥 떠다닌다.

 

어디 그 뿐이랴. 정말로 피해가 심각한 아이들을 격리 치료를 시키지만, 그건 치료 목적에 있지 않았다. 그저 의학 연구를 위한 요식행위였다.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의 의사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들을 치료시킬 비책이 따로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의 지시를 받는 간호사들도 차라리 아이들에게 마취제라도 넣어주고픈 마음뿐이다. 

 

그 사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을까? 이 책은 우크라이나의 스피첸코 보건부장관의 발표를 빌려 말한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위험한 상태에 직면한 사람이 150만 명에 달한다고. 그 가운데 35만 명이 어린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KGB가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의 의사들에게 그 피해상황을 함구하도록 명령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조사되지 않는 사람들은 더 많다는 뜻이다.

 

히로세 다카시는 이 책을 왜 썼을까? KGB를 겨냥하기 위함일까? 아니다.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부당함을 고발하기 위함이다. 그는 일본이 원자로를 모두 없애도 전력 사정에는 전혀 장애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러시아로부터 홋카이도를 경유하는 파이프라인을 설치하여 천연가스를 이용하면 더욱 족하다고 한다.

 

사실 원자력 산업의 보급은 1950년대 일본군의 독점자본가들이 돈벌이를 위해 만들어냈다고 한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란 것도 원자·수소폭탄 산업을 경제적으로 성립시키려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원자력 발전소는 에너지 부족 차원이 아니라  군산복합체의 독점과 거대자본의 이익이 결합하여 생긴 해로운 공룡산업이다.

 

이 책을 읽자니 성경에서 무참히 살해당한 아이들이 떠올랐다. 헤롯 대왕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막으려고 두 살배기 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도록 한 것 말이다. 헤롯의 정치적인 야욕이 죄 없는 아이들을 모두 죽음으로 내 몬 일이다. 체르노빌 폭발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아이들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그것 역시 군산복합체의 자본과 이익에 의해 죄 없는 아이들이 죽음에 처한 것과 같은 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우리 안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는 끄떡없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그게 진짜일까? 일본을 들쑤셨던 지진이 우리나라 땅을 흔들어댄다면 어찌 안전하겠는가. 영화 〈해운대〉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우리나라 전역을 뒤덮고도 남을 것이다. 결코 우리도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다.

 

또 있다. 대통령과 정부요원들이 해외의 원전수출을 자랑하고 있다. 과연 그렇게 해도 되는 걸까? 돈벌이만 된다면 다른 나라가 어떤 위험에 직면해도 상관이 없을까. 막말로 다른 나라가 우리한테 시한폭탄을 설치해 놨다면 어떻겠는가. 심한 비유 같지만, 이 책의 말미에 나와 있는 이야기는 원자력 발전소가 꼭 시한폭탄과 같다. 적어도 10년에 한 번 터질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라면 말이다.

 

"원자력 발전소의 미래상을 그리며 앞으로 세계에서 건설될 원자력 발전소는 수천 기로, 1기 당 사고의 위험성은 2만 년에 한 번이라고 나와 있었다. 얼핏 읽어보면 2만 년에 한 번은 극히 적은 횟수 같이 여겨지지만, 만약 2천 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고 계산하면 10년에 한 번 사고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의미가 된다."(169쪽)

체르노빌의 아이들 (양장) - 히로세 다카시 반핵평화소설, 개역개정판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
프로메테우스, 2011


#원자력발전소 #체르노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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