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거야"

지적장애 3급 아들의 세상을 향한 첫 발걸음

등록 2011.05.29 16:38수정 2011.05.2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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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조끼를 입은 승혁이. ⓒ 임선미

5월 28일 토요일은 아들에게 참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제게도 특별한 날이었고요. 다름 아닌 아들과 제가 난생처음으로 봉사활동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가끔 인구 총조사에 응하거나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봉사활동'을 한 적은 있지만 직접 자원봉사센터에 신청해 활동한 건 이날이 처음입니다. 마치 첫 데이트를 기다리는 심정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설렘보다는 걱정이 더 앞섰습니다. 가끔 20~30분 간격으로 얼굴 근육을 찡그려 불만을 표출하고(아들에게 요즘 틱장애가 많이 나타나네요) 또 원치 않는 상황이면 갑자기 발을 구르고 두 손으로 얼굴을 쥐어뜯는 등 자해행위로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전력'이 있는 아들과 함께 자원봉사를 한다는 게 시작부터 긴장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들의 나이도 14살,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전 학년이 연간 18시간 이상 봉사활동을 하게끔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미 아들은 어렵게나마 이미 일반 친구들이 보는 중간고사까지 치른 상태였습니다.

장애학생이긴 하지만 일반 중학교에 입학한 이상 되도록 일반 친구들이 하는 것을 따라가 보는 것이 제가 아들을 일반 중학교에 보낸 목표이기에 자원봉사를 굳이 피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다만 시작이 두려웠던 거겠죠.

장애를 겪는 아들과 함께 참여한 자원봉사

포털 자원봉사기관인 '1365'에 아들과 저 그리고 내친김에 딸까지 자원봉사 등록을 하던 날 왜 이리 마음이 뿌듯하던지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꼭 아들과 동반해야 하는 특성상 자녀와 함께할 수 있는 봉사만 물색하던 중 딱 맞는 일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린 토요일 데이>라는 제목의 봉사활동인데 매달 맨 마지막 토요일에 열리는 환경정화 봉사활동입니다. 주 내용은 한강 주변의 쓰레기를 줍는 것이지요. 마침 아이들의 수업이 없는 노는 토요일이라서 아침부터 한강에 나가 음악분수 근처에서 놀다가 옷까지 거의 젖어버린 아들을 봉사활동 하자고 데려가려니 처음엔 강하게 거부하네요.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여가며 살살 달래서 봉사활동 집합장소인 뚝섬유원지역 3번 출구 앞으로 가니 어느덧 아들 또래의 중학생과 대학생들 그리고 단체로 온 직장인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다들 놀러만 갈 줄 알았는데 봉사활동을 위해 이렇게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일단 모두 예쁘고 기특해 보입니다.

난생 처음 하는 봉사활동에 갑자기 여기저기서 몰려든 사람들로 '대인기피증'이 심해진 아들은 평소 했던 대로 갑자기 내 손을 뿌리치고 어디론가 달아나려고 합니다.

얼른 아들 손을 겨우 붙잡아 데려와서 우리 옆에 가득 쌓여 있는 쓰레기를 줍기 위한 집게와 나무젓가락, 대형 쓰레기봉투 등 자원봉사에 필요한 물품을 보여주니 다행스럽게도 아들의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가 보입니다.

초등학교 때 했던 아침 봉사활동을 떠올렸나 봅니다. 그때는 쇠집게로 했는데 이번엔 나무젓가락으로 쓰레기를 줍는 겁니다. 장애 아동이라서 처음엔 잘 못할까봐 아침 봉사활동에 참여를 안시키다가 6학년 때 처음으로 아침 봉사활동에 내보냈습니다. 승혁이가 어디로 없어지면 어떻게 하나 선생님과 저 친구들 모두 걱정 반 우려 반이었는데 승혁이는 생각보다 그 일을 좋아했습니다. 따분한 교실수업보다는 밖에서 뭔가 한다는 게 그래도 즐거웠나 봅니다.

초등학교 때 아침 봉사활동의 경험을 떠올리고 나서부터 아들의 봉사활동은 그때부터 무리없이 잘 진행되었습니다. 시간은 총 두 시간이었지만 햇빛이 너무 따가운 이미 초여름 날씨인지라 뙤약볕 아래서 나무젓가락으로 쓰레기를 줍다 보니 갑자기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승혁이는 저보다 더 열심히 누구보다 묵묵하게 쓰레기를 줍고 있습니다.

다른 중학생들은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와서 가끔 재잘거리기도 하는데 친구 하나 없이 늘 엄마하고만 다니니 승혁이가 묵묵한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런 승혁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환경봉사 활동을 이끄는 팀대장(정확한 호칭을 모르겠습니다)이 승혁이에게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습니다. 승혁이도 '모범 봉사자'로 선택된 것이 싫지만은 않은지 열심히 쓰레기를 줍는 모습으로 촬영에 임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오네요. 시작부터 너무 앞서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는데 아마 아들에게 자원봉사 활동은 물고기가 제 물 만난 격인 것 같습니다. 다른 봉사활동보다는 좀 단순한 점도 있었고 봉사활동 장소가 늘 아들의 놀이터이자 산책로인 집 근처 뚝섬 한강시민공원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쯤 지나자 역시 제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토록 열심히 담배꽁초를 줍더니 갑자기 긴 갈댓잎을 꺾어서 허공을 향해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지루하다는 뜻입니다. 말 표현이 서툴고 가뜩이나 말하기 싫어하는 아들이라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가 잦습니다. 이럴 땐 누군가가 긴급하게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합니다.

아들이 세상 속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으면

자칫 감정이 격해지면 또 어디서 갑자기 문제 행동을 할지도 모르니까요. 출발할 때는 중학생부, 청년부, 일반인부로 나뉘어 출발해야 했는데 어른인 저만 혼자서 중학생부에서 아들 옆에 그림자처럼 따라가니 봉사활동 대장님도 저희 모자의 '상황'을 눈치채셨는지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처음에 집중하기는 무척 어려워해도 일단 관심만 생기게 되면 미친듯이 파고드는 아들의 특성상 자원봉사 대열과 자꾸 이탈하려는 아들을 데려오기 바쁩니다. 그때까지는 몰랐는데 잠시 영동대교 아래 그늘진 곳에서 아들의 얼굴의 빨갛게 익은 걸 확인하고는 준비해 온 얼음물을 주니 아들의 불안했던 마음도 차츰 안정되어가는 듯합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서 마지막까지 열심히 강 주변의 담배꽁초를 주웠습니다.

그래도 한강시민공원은 생각했던 것보다 쓰레기가 많지는 않아서 기뻤지만 쓰레기의 대부분은 담배꽁초였던 걸 보면 아무래도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을 줄여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첫 자원봉사를 하면서 가장 기뻤던 것은 아들도 이제 사회를 위해서 무언가 해도 되지 않을까 희망을 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시작은 소박하지만 아들이 조금씩 자원봉사에 흥미를 느끼게 될 때까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봉사를 하면서 세상 속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들이 예전에 아주 좋아했던 <강아지 똥>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나온 대사가 떠오릅니다.
바로 흙덩이가 강아지 똥에게 했던 말입니다.

"너도 이 세상에서 무엇엔가 꼭 귀하게 쓰일 거야"

아들과 무사히 첫 자원봉사를 끝내던 날 마음속에서 떠오른 말입니다. 지금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고통 탓에 세상 밖으로 나오기 힘겨워 하는 또 다른 '승혁이들'이, 자신의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별처럼 고운 민들레꽃을 피우게 하는 강아지 똥처럼 언젠간 꼭 세상에서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전해주고 싶습니다.
#자원봉사활동 #강아지똥 #장애아동 #세상체험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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