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립한 지문인식기 회사에 교사들의 지문이?

학교 내 지문인식기 설치 논란, 조지오웰 <1984년> 떠올라

등록 2011.05.30 15:40수정 2011.05.3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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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당신 학교에 지문인식기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뭐, 그렇게 되었어요. 행정실장이 하자고 하니까 다들 별말 없던 걸요."
"아니, 그렇게 쉽게? 당신은 대체 뭐 한 거야?"

나는 벌컥 화를 내고 말았다. 벌써 한 달도 더 된 일이다. 근데 나는 왜 지금 이 얘길 끄집어내는가?

일부 시도 교육청이 일선학교에 지문인식기 설치를 장려(내지 요구)하고 있다는 얘기는 작년부터 간간이 들어왔지만 내가 근무한 전 학교도 올해 새로 옮긴 학교도 그런 말은 없었기에 무심하게 지내오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더는 무심할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동시에 난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떠올렸다.

이런 내게 아내는 이렇게 반문했다.

"새삼스럽게 왜 그러세요? 우리는 매일매일 시시티브이라는 감시망에 포로가 된 채 살고 있어요. 엘리베이터, 지하주차장, 아파트 입구, 백화점, 편의점, 심지어 거리와 버스 안에까지. 개인 이 메일도 정보기관이나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샅샅이 꺼내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구요."

"그래서? 그래서 그냥 당하기만 하고 내버려두잔 거로군?"

애꿎은 아내를 힐난하는 것으로 그날의 대화는 끝이 났지만 지문인식기라는 어둔 그림자는 내 마음 속에 깊게 자리 잡았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문인식기, 너는 대체 뭐냐?

지문 인식기가 '예산절감'과 '잡무 해소'에 도움이 된다?

교사의 출퇴근 시간을 기계 장치로 확인하고 기록 저장하게 되는 교내 지문 인식기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초였다. 대구시 교육청이 '반부패 청렴대책 수립계획, 청렴도 향상 의지 평가 추진 계획'이라는 공문을 통해 '시간외근무 확인용 지문인식기'를 도입하는 학교에 청렴도평가 항목에서 가산점을 부여키로 한 데 대해 전교조 대구지부와 시민단체가 '지문인식기는 인권침해'라며 기자회견과 함께 공식 항의한 것이다.

당시 대구시 교육청 관계자는 지문인식기 도입이 "예산절감과 교사 잡무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했지만 실은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들이 부당하게 초과근무 수당을 챙겨 갈 가능성을 막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교직원 중에는 없다.

사실 '예산절감' 운운은 뚱딴지 같은 소리고 '잡무 해소'란 것도 굳이 따지자면 다섯 손가락으로 수기 장부에 몇 자 쓰는 수고 혹은 컴퓨터를 부팅하고 학교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들어가서 몇 단계를 거쳐 초과근무 신청을 하는 수고를 하지 않는 대신 엄지손가락 하나를 기계에 갖다 대는 정도의 편리 아닌 편리를 말하는 것이니까.

요컨대 지문 인식기는 도적 방지용인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나타나 모든 교직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기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문 인식기에 대한 나의 저간의 태평스런 태도는 절대 다수의 교사들이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어제(29일) 부산광역시 교육청이 공개한 '초․중․고 지문인식기 설치 현황' 자료를 확인하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참고로 이 자료는 지난달 21일 이일권 부산광역시 교육의원이 교육청에 질의한 뒤 받은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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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교육청 산하 초중고 지문 인식기 설치 현황 설치 여부를 묻는 항목에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가 x와 0로 뚜렷이 대비되고 있다. ⓒ 윤지형


부산의 절반 가까운 고교에서 용인한 지문인식기

부산시내 139개 고등학교 중 절반에 육박하는 68개 학교가 지문인식기를 도입했다. 아내의 학교도 그 중 하나였다. 이 숫자는 초등학교가 남부교육지원청 산하 D초등학교를 비롯해 3개 학교, 중학교가 해운대교육지원청 산하 J 중학교를 비롯해 9개 학교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많다. 이 사실은 지문인식기가 고등학교 교사들의 초과근무수당 부당 징수를 막기 위한 장치임을 잘 보여준다.

요컨대 절반에 가까운 고교 교사들은 자신과 동료 교사들의 범죄 가능성을 첨단 기계장치에 의존해 방지하겠다는 데 동의한 셈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왜 많은 교사들은 지문과 같은 자신의 생체 정보를 내주는데 그토록 무감각했을까? 초과근무수당 부당 수령에 대한 몇몇 기사를 검색해 보니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19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박영아(한나라당)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교직원 각종 수당 부당수령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8∼2010년 초과근무확인대장을 허위로 기재하거나 시간외수당과 출장 수당을 동시에 청구하는 등 부당한 방법으로 수당을 챙긴 교사는 모두 9673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부당 수령액은 46억8942만원이었다." (<세계일보> 2011년 5월 20일자)

"정부가 일부 공무원들의 관행적인 초과근무 수당 챙기기를 뿌리 뽑기 위해 사전에 이를 원천 차단하고 적발 시 처벌을 강화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행정안전부는 공무원들의 시간외 근무 수당 부정수령 행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초과근무수당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고 19일 밝혔다. (<뉴시스> 2010년 1월 19일자)

그런가 하면 놀라운 사건도 일어났다.

"첩보영화에나 나오는 최첨단 지문위조 사건이 고등학교에서 발생했습니다. 고등학교 교사가 실리콘으로 만든 가짜 지문을 이용해 1년간 초과 근무 수당을 챙겨온 사실이 적발됐습니다." (작년 12월 5일 한 지상파 방송의 뉴스 일부)

이로 인한 따가운 사회적 시선을 자나 깨나 동네북이기 십상인 교사들은 민감하게 느꼈을 것이고 지문인식기를 도입하려는 교육청과 학교장들은 또한 그런 여론과 분위기를 십분 활용했을 것이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상당수 교사들은 나만 깨끗하면 지문인식기든 뭐든 무슨 상관이람, 했을 터이다. 아내도 처음엔 그런 식으로 말했었다.

그러나 과연 그래도 좋은 것일까? 아니 지문인식기를 앞에 두고 오웰의 저 끔찍한 '1984년'을 떠올리는 건 지나친 과민반응일까?

효율적 관리라는 명분이면 무슨 짓을 해도 좋다?

우선 묻기로 하자.

범죄 예방이라는 명분을 위해서라면 어떤 기계 장치도 용인되어야 하는가? 일부 학교에서 학생들 간의 분실 사고를 막기 위해 교실과 복도에도 시시티브이를 달자는 얘기가 나왔다가 철회되기도 했다지만 이쯤 되면 가정 내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침실에도 거실에도 시시티브이를 설치해 놓고 경찰이 그것을 실시간 감시하게 하면 된다는 소리가 나오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

그런 세상이 바로 '1984년'의 세상 아닌가? 누군가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는데 나는 그 누군가를 영영 볼 수 없다는 사실 만큼 무서운 게 있을까? 우리는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 나를 30초 이상만 주시해도 불쾌하거나 두렵거나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은가 말이다.

지문인식기로 돌아가 보자.

난립한 지문인식기 회사에 내 지문이?

일차적으로 지문은 생체 정보다. 인터넷을 한번만 두드리면 지문인식기 회사가 얼마나 난립해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종류와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학교마다 도입 소요 예산이 천차만별인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요컨대 너무나 쉽게 내 준 내 지문은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어떤 지문 인식기 회사의 데이터에 저장되며 내 지문 정보가 언제 어디로 팔려나갈지 아무도 모를 뿐 아니라 그것을 통제할 주체도 없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생긴 문제는 누가 책임지는 것인가? (이미 아파트 현관 열쇠를 지문 감식기로 대체하는 집도 있다지 않은가?) 그 책임은 돌고 돌아 결국엔 지문 감식에 동의한 자신에게 돌아오게끔 되어 있다.

두 번째로 지문인식기는 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  교사인가 관리자인가? 교사 다수의 편의인가, 관리자의 관리 편의인가? 대답은 명백하다. 교사를 위한 것도 교사의 편의를 위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 교사들의 편의를 말한다면 그 '편의'가 결국엔 우리 모두를 옥죄는 감시와 통제의 일상화를 앞당기는 당근 아닌 당근일 뿐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부정 방지를 위한다는 명분이 아무리 옳은 것이라 하더라도 지문과 같은 생체정보에 관한 한 이를 강요할 수가 없고 허용해서도 안 된다.

우리의 정신까지 지배할 '빅브라더'의 한 얼굴

경찰이 가만히 길을 가는 사람을 붙잡고서 지문 날인을 강요하거나 몸수색을 벌이면 누구든 불쾌해할 것이고 이에 반발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발적으로 매일 매일 내 지문을 기계 장치에 대고 나를 증명한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하는 거라 거부감도 없고 어려울 것 하나 없다?

이말 저말 안 듣고 차라리 편하다? 그렇다면 교문 기둥 양쪽에 어떤 투시 장치를 설치해 놓고서 거기를 지나가는 순간 나의 출퇴근 상황이 절로 체크되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지문을 기계에 갖다 대지 않고 단지 교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조용히, 편안하게, 나도 모르게 나의 모든 것이 감식되고 저장되고 관리자에게 보고된다면 말이다!

지문인식기는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첨단기술을 동원한 관리·감시체제의 한 부분이다. 그러기에 이것을 허용하면 저것이, 저것을 허용하면 또 다른 저것이 밀고 들어올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교사들이 제 시간에 교실로 들어가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교실 출입문 감지기, 교사들이 수업을 잘 하는지 학생 폭력은 안 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시시티브이, 교사들이 쉬는 시간에 주식투자 사이트를 열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신종 기계 도입 ….

내 상상력은 여기까지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 SF 영화에 등장하고 그것이 종종 현실에서 바로 실현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관리' 하는 자들은 말한다. 지문인식기와 같은 편리하고도 효율적인 기계를 거부하는 것은 뭔가 켕겨서 그런 것 아니냐고. 당신만 무구하면 그만 아니냐고. 그들의 이런 말을 달리 옮기면 이렇다.

'네가 마녀가 아니라면 마녀 사냥을 반대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마녀만 사냥하니까 네가 마녀가 아님을 증명하면 그뿐이다.'

과연 그런가? 지문이라는 생체 정보를 '관리의 효율성'이나 '나의 편리'라는 논리에 굴복해 허용하는 것은 첨단 기계로 하여금 내 몸을 지배하게 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이 필경 우리의 정신마저 지배하게 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전체주의에 대한 묵시록적 고발, '1984년' - 저 비극적 아이러니

효율적 관리·감시 사회의 극단으로서의 전체주의에 대한 묵시록적 고발인 오웰의 '1984년'은 다음과 같은 절규 - 비극적 아이러니와 함께 끝난다.

"윈스턴은 빅 브라더의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그 검은 콧수염 속에 숨겨진 미소의 의미를 알아내기까지 4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오, 잔인하고 불필요한 오해여! 오, 저 사랑이 가득한 품안을 떠나 스스로 고집을 부리며 택한 유형(流刑)이여! 그의 코 옆으로 진 냄새가 나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잘 되었다. 싸움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윈스턴이 마침내 죽임을 당하는 순간이다. 빅 브라더는 그에게 저항하는 윈스턴을 철저하게 '개조'(고문 따위로 몸만 굴복시키는데서 끝내지 않고 정신까지 완벽하게 지배하여 자발적으로 그를 '사랑'까지 하게 함으로써)한 다음 총살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나도 빅 브라더의 한 얼굴인 지문인식기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재빨리 걷어치우고, 저 효율적으로 '관리'되는 사회, 즉 '사랑이 가득한 (빅브라더의) 품안'에 폭 안기면 오랜 세월(윈스턴은 '40년'이라 했다) 무익한 '싸움'을 할 필요도 없이 소아적 자기를 극복('승리')하고 '빅 브라더' (최고 관리자)를 사랑하게 될까? 끔찍한 상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내일이라도 당신의 지문 정보부터 돌려받도록 해요! 학교 내 빅브라더에 저항하는 일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사회를 물려줄 수 있는 첫 걸음이란 걸 함께 잊지 맙시다. '1984년'은 결코 멀리 있지 않으니!"

덧붙이는 글 | 전교조 홈페이지에도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전교조 홈페이지에도 올립니다.
#지문인식기 #생체정보 #교사의 인권 #초과근무수당 부당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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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고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인간의 교사로 살다>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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