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교사들, 무소불위 교장 권력에 무릎 꿇었나?

[주장] 뇌물 받은 교장 선처해 달라는 이해 못할 처사, 일벌백계해야

등록 2011.06.02 16:06수정 2011.06.0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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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열린 '교사대학살 중단 전교조 지키기 전국지회장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참교육 지키겠습니다'가 적힌 손수건을 들고 함성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5월 30일 광주광역시 소재 한 고등학교 교직원들이 업자들로부터 수천만 원의 뇌물을 받은 학교장의 선처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런데 서명한 이들 중 30여 명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 조합원들은 물론 전교조의 도덕성과 부패 근절 의지를 믿고 지지해 준 시민들조차 적잖은 충격에 빠졌고, 학교 안팎에서 전교조를 성토하는 목소리로 떠들썩하다. 그러나 전교조를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욱이 교육현장이 온통 비리의 온상이라며 싸잡아 욕하는 것은 그저 속은 후련할지 몰라도 문제 해결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개별 학교의 조직 논리에 밀려 시나브로 부패에 둔감해져가는 전교조의 온정주의를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동시에 학교 내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성찰하고 혁파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기실 이는 흔들리는 공교육을 다잡기 위해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살아가다 보면 동의하기는 싫지만,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 있는 법이다. 전교조의 현재 모습을 고백하는 일이 꼭 그렇다. 참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온갖 모진 세월을 견뎌내며 이룩한 전교조 정신을 세월이 흘렀다는 이유로 결코 폄훼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세월의 더께가 일부 조합원들의 확고했던 신념과 의지, 그리고 뜨거운 열정과 공동체적 가치를 시나브로 희석시켜 갔다.

전교조 집행부는 온정주의 베푸는 조합원들 징계해야

전교조 조합원 수는 2010년 현재 6만 명 정도다. 전국 초중고 교사 수가 40만 명 남짓이니 대략 일곱 명 중 한 명꼴이다. 교총의 회원 수가 15만 명이 넘는 현실에서 전교조 조합원이 가장 많았을 때가 2003년 즈음이고, 그마저도 채 10만 명이 되지 않았으니 분명 '다수'라고 할 수 없는 조직이다.

그런데도 지금껏 교육계 안팎에서 전교조의 위상은 그 어떤 단체보다도 높았고, 그것은 미래세대와 공교육 정상화를 고민하는 수많은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이 밑바탕이 돼주었기 때문이다. 곧, 조합원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전교조라는 이름을 내걸고 열정으로 아이들과 소통했고, 그러한 교육자로서의 올곧음이 시민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수많은 조합원들의 교육에 대한 신념과 열정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번 사건처럼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져 나오는 조합원들의 그릇된 행태와 온정주의에 물든 집행부의 미적지근한 대응은 전교조의 이름을 걸고 참교육을 실천하는 교사들의 자존감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이유야 어찌 됐든 탄원서에 서명한 교사들은 전교조 조합원임을 들먹일 자격이 없다. 부패한 학교장을 두둔했다는 건 스스로도 부패했다는 걸 자인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해서, 그들은 전교조를 자신의 이해관계를 챙기는 데만 이용하려는 자들일 뿐이다.

그들은 조직을 위해 우산이 돼주기는커녕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전교조를 방패삼는 자들이다. 그들이 매월 납부하는 조합비는 핍박 받는 동료 조합원들과 이 시대의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종잣돈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 자신을 위해 적립하는 '보험금'일 뿐이다.

여전히 집행부에서는 '숫자=힘'이라는 낡은 공식에 얽매여 있는 듯하다. 열정을 지닌 한 사람의 조합원이 어중이떠중이 열 명보다 낫다는 사실을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섣부른 생각으로 여긴다. 부패한 교장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에 서명한 교사들이 슬그머니 전교조를 탈퇴하기 전에, 집행부의 단호한 일벌백계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번 일로 크게 생채기가 난 조합원들의 자존감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또한 시민들에게 끊임없이 의심 받는 전교조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다. 집행부가 되레 '세월이 약'이라며 들끓는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은 얌체 짓일 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비난의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는 '메뉴'로 남게 된다.

학교장의 무소불위 권력과 전횡 막아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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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양성윤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전교조 조합원들이 전교조 지키기를 위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 유성호


한편, 이번 일은 일선 학교장의 무소불위한 권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학교장의 부패 행각을 몰랐을 리 없는 교직원들이 모르는 척 눈 감는 것도 모자라 탄원서에 서명했다는 건 학교장의 힘이 어느 정도인가를 여실히 증명해준다. 더욱이 이 학교장은 과거 교육지원청의 교육장을 역임했던 지역 교육계의 '거물'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많은 학교에서 교직원회의가 학교장과 교감, 보직교사들이 업무 지시를 하는 자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설령 논의할 안건을 올린다고 해도 학교장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현실에서 교사들은 이미 무력해질 대로 무력해졌다. 요즘 회자되는 말로 '평교사 백 명의 열정보다도 학교장 한 명의 기호가 학교를 바꾸는' 현실이 돼버린 것이다.

학교장에게는 교사 승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이번 비리에서처럼 한 건에 수천, 수억짜리 큰 공사가 아니라면 웬만한 공사계약은 임의로 체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수학여행 버스와 숙박 업체와의 계약도, 급식 납품업체를 선정하는 것도, 심지어 고작 한두 달 근무하는 기간제 교사의 임용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학교장 한 사람의 손에 달려있다.

막강한 권력 밑에는 그의 힘에 기생해 자기 몫을 챙기려는 측근 그룹이 생기기 마련이고, 시나브로 학교 내 교직원 사회에는 이른바 '왕당파'와 '독자파'로 나뉘게 된다. 측근들인 '왕당파'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독자파'들조차 '왕'을 뒤에서 조롱할지언정 막강한 힘에 눌려 '눈 뜬 장님'으로 살아가기 일쑤다.

현 정부 들어 추진된 학교자율화는 예상했던 바대로 학교'장'자율화로 변질된 지 이미 오래고, 그렇잖아도 막강한 그들의 권력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고 말았다. 학교장을 향한 아첨만이 춤을 추고, 대다수의 교직원들이 모르는 척 눈 감고, 입과 귀를 닫아버리는 순간 학교는 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번 사건이 이를 정확히 증명한 셈이다.

열 살배기 아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학교장은 학교 내 대통령이자 국회의장이며 대법원장과 같은 존재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 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안다면, 더 늦기 전에 당장 학교장의 '칼춤'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수 년 전부터 마련된 대안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 단언컨대, 의지의 문제다.

기존 학교장의 근무평정에 따른 승진제도를 다양화하려는 노력도 중요하고, 학교운영위원회에 실질적인 심의의결권한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교직원과 학생들의 참여의식을 높이고 자존감을 살릴 수 있는 교사회와 학생회 등의 법제화도 시급히 도입되어야 할 사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를 주문한다면, 무엇보다도 평교사로 시작해 교감을 거쳐 학교장에 이르는 피라미드식 단선적 승진 구조를 업무별로 특화시키는 한편 임기제를 도입해 학교를 순환적인 조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학교 구성원들의 합의체가 만들어지고, 학교의 제반 업무를 그곳에서 토론을 통해 결정하게 되는 민주적이고도 교육적인 구조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교육계 일부에서는 전가의 보도처럼 '일부 학교, 특정 학교장만의 문제'라며 애써 쉬쉬하고 있지만, 교사들은 물론 학부모와 어린 학생들조차 그 심각성을 모르지 않는다. '이 자리까지 오기 위해 한 평생 다 바쳤다'는 학교장들의 애끓는 하소연이 그들이 지닌 막강한 권력의 이유일 수는 없다. 더 이상 학교가 변화를 싫어하는 구태의연한 곳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이 학교 내 부패 척결의 소중한 계기가 되지 못하고 온정주의 등으로 말미암아 흐지부지된다면 우리 교육은 꼭 그만큼 곪게 될 것이고, 급기야는 도저히 손 써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전교조 집행부와 교육 당국의 맹성과 특단의 조치를 촉구한다.
#학교장 비리 #학교자율화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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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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