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 동굴 속의 탱고 (63)

63.

등록 2011.06.08 19:14수정 2011.06.08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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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갈매기의 말대로 날이 밝자 여행가이드가 '똑똑'하며 힘차게 방문을 두드렸다. 테이블 위의 시계는 오전 8시를 가기키고 있었다. 나는 파자마 자락을 질질 끌며 문을 열어주러갔다. 그녀는 일기장에서 말한대로 각진 어깨를 강조하는 타이트한 검정 투피스를 입고서 굵고 검은 안경테 너머로 나를 쏘아보았다.


"식당으로 내려와요. "


이윽고 나와 조제가 샤워를 끝내고 1층으로 내려갔을 땐 시인과 Y, 여행가이드가 한 테이블에서 왁자하게 아침을 들고 있었다.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인 등등 여러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 국기가 걸린 식탁에서 들뜬 기대를 담뿍 담은 얼굴로 에그 스크램블 같은 걸 먹고 있었다. 지난 밤, 클럽에서 만난 미국인 동성애 커플도 서로 음식을 먹여주며 닭살 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자신의 고객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던 환상관광의 그 안내원만큼이나 이 여행가이드는 직업정신이 투철했다. 의자도 손수 빼주고 나이프와 포크도 집기 좋게 당겨 주었다. 그리곤 환상관광 마크가 달린 금빛 뱃지를 자랑스레 보여주며 오빠와 그 안내원의 이야기도 했다. 오빠는 지금 어딘가에서 분노의 술을 위한 조사를 하러 다니는 건 분명하다고 했다. 안내원이 곧 소식을 전해 올 거라고도 덧붙였다.

 

"여기, 와인 좀 줄까요? 영적인 정점에 이르게 하는 음료, 매일 한잔 씩 하면 몸이건 정신이건 모든 건강에 좋아요."


시인은 내 잔에도 넘치도록 따라 주며 말했다. 그리곤 이 게스트하우스가 생긴 이래로 많은 관광객들이 오갔지만 인형을 매달고 온 사람들은 처음이라며 허허웃었다. 나와 조제는 혹시나 그들이 우리 배낭을 열어젖히곤 인형웨이터와 두 머리 달린 꼬맹이와 고양이를 보기라도 할까봐 일순간 움찔했다. Y는 마시던 잔을 힘차게 내리며 '남미의 파리, 아름다운 아르헨티나의 추억은 지금부터 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일기장 주인공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이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정확히 오전 9시가 되자 게스트하우스 앞에 환상관광 이름이 새겨진 작은 버스가 도착했다. 이번에도 각자 나라별로 국기가 그려진 차에 올라탔다. 차가 아무리 크건 말건 단 한명의 손님이 타더라도 그 나라 가이드가 따라 붙었다. '이제보니 그 남자 능력 좋구나. 그 영감이랑 잘해봐' 하며 조제는 킥킥 거렸다. 우리 차의 탑승객은 시인과 가이드, Y 그리고 나와 조제 이렇게 다섯뿐이었다.


"와, 저 건물들 좀 봐."


조제는 화다닥 거리며 나를 창쪽으로 당겼다. 그러자 가이드는 입을 뾰족히 오므리곤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흐흥, 아르헨티나의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가 건축물인 건 분명하죠. 그건 지난 과거에 이 나라 산업과 경제의 발달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와 동시에 문화적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죠.

 

나는 '이 나란 엄청난 부를 누렸나 보군요'하고 응수했다. 그러자 그녀는 안경을 고쳐쓰며말했다.

 

"한국이 조선시대를 거치고 있을 때 아르헨티나에는 이미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었어요. 넓고 광활한 국토와 유럽 문화의 영향 덕에 모든 경제와 문화가 발달했고요. 한마디로 남미 지역에서는 아르헨티나가 가장 으시댈 수 있는 위치에 섰던 거죠. 심지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많은 나라가 전쟁의 폐허에서 허덕일때도 아르헨티나는 풍요로웠어요. 그 당시에 이미 수없이 많은 고층 건물을 짓고,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해서 국민들에게 연금을 주는 선진국형 나라가 돼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우릴 여기로 데려온 이유는 뭐냐고 나는 슬그머니 그녀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가만히 내 얼굴을 들여다 보곤 회심에 찬 미소를 지었다.

 

 

<계속>

2011.06.08 19:14 ⓒ 2011 OhmyNews
#장르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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