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갑자기 죽을줄 알았더라면"

1년도 채 못 살고 하늘로 간 노을이가 보고 싶습니다

등록 2011.06.16 13:24수정 2011.06.1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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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만 나가면 신나게 달려다니던 노을이... ⓒ 박미경

밖에만 나가면 신나게 달려다니던 노을이... ⓒ 박미경

"엄마, 나 이제 알뫼산 쪽은 안 쳐다본다."

"아니 왜?"

"그냥, 그쪽만 보면 자꾸자꾸 노을이가 생각나서..."

 

언젠가 그 녀석이 일을 낼 것만 같아 늘 불안했었다. 주인에게 버려져 거리에서 떠돌다가 하얗고 긴 털이 덕지덕지 왕떡덩이가 되어 우리집으로 왔던 방울이와는 달리 노을이는 너무 활기찼다. 그래서 불안했다.

 

노을이는 지난해 11월 중순 무렵에 우리 집에 왔다. 동네 재래시장에 갔던 남편이 양파망에 갇혀 웅크리고 있는 강아지를 보고 1만 원을 건네주고 데려온 녀석이 노을이였다. 검은 눈망울을 하고 하얀 솜털을 뽀송거리며 젖비린내 나는 혀로 뽀뽀를 해대며 짧은 꼬리를 있는 힘껏 흔드는 녀석은 참 작고 곱고 예뻤다.

 

하지만 녀석은 집에 온 첫날부터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고생했을 녀석을 따뜻한 물로 목욕시키고 젖은 털을 드라이기로 살살살살 말리려는 순간, 우리는 바닥에 후두둑 떨어지는 검정깨알같은 벼룩 무더기에 기겁을 해야 했으니까.

 

녀석의 몸에는 수많은 벼룩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녀석을 본 아이들은 내가 녀석의 목욕물을 준비하기도 전에 이미 그 녀석과 얼굴을 비비고 살을 맞대고 끌어 안으며 오만가지 친한 척은 다했는데...

 

게다가 방울이 녀석은 또 어떻고. 지금껏 집에서 본 동물이라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작은 어항 속에 갇혀 지내는 거돌이(청거북이, 성별 미상)와 다리 두개 달린 '사람'이라는 동물뿐인 방울이고 보니 녀석을 보자마자 엄청 반가워했다. 뭐 간혹 집에서 햄스터나 토끼같은 다리 넷 달린 동물을 만나기도 했지만 그 녀석들은 노을이만큼 붙임성 있게 방울이를 반겨주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드디어 자신과 같은 흰색털을 갖고 생김새도 비슷한 다리 넷 달린 동물과 집에 함께 있게 됐으니 오죽 반가웠을까. 하여간 방울이는 노을이를 보자마자 노을이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친한 척을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 녀석들은 이미 아이들과 함께 집안 곳곳을 한바탕 휘저으며 집구경을 했던 터였다.

 

"너희들, 당장 강아지한테서 떨어져. 그리고 방울이 몸에 벼룩 있는지 보고."

 

그런데 식겁을 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느긋했다. 뭐 개벼룩은 사람한테는 옮기지 않고, 개 몸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도 않으니까 괞찮다나 어쩐다나. 그건 남편 생각이고 노을이 몸에 붙어 있는 녀석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모양새를 보니 이 녀석들은 노을이의 털만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으로의 탈출을 꿈꾸는 듯 했다. 

 

해서 근처 동물병원에 벼룩퇴치약이 있는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아뿔사, 시간이 벌써 밤 10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특히나 동물병원이 있는 곳은 화순에서도 구시가지에 속한 곳이라 점포들이 일찍 문을 닫는 지역이다.

 

그렇다고 어린 녀석의 몸에 모기 등을 퇴치하는데 쓰는 살충제를 뿌릴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손으로 잡기로 했다. 하얀 털에 검은 벼룩이어서 눈에 잘 띄기도 했다. 그렇게 두시간여 동안을 욕실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녀석 몸 구석구석에 둥지를 틀고 있던 벼룩을 잡았다. 100마리까지 세다가 지쳐서 더이상 세기를 중단해 그날 몇 마리의 벼룩을 퇴출시켰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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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처음 집에 왔을 때의 노을이와 남혁이 ⓒ 박미경

지난해 12월 처음 집에 왔을 때의 노을이와 남혁이 ⓒ 박미경

그리고 녀석은 한동안 바깥에 나가 바닥에 발을 딛는 것을 두려워하다가 봄기운이 일면서부터 산책에 재미를 붙여 매일 밖으로 나가자고 졸랐다. 밖에 나가면 끈을 잡고 같이 걷기는 하지만 우리가 잠시라도 멈추거나 의자에 앉아 잠시 쉴라치면 움직이고 싶어 끙끙거리면서도 꼼짝도 않는 방울이와는 달리 노을이는 참 활기찼다.

 

특히 학교운동장에 가면 운동장 가장자리를 '킁킁' 거친 콧소리를 내며 멍멍 짖으며 달려 다녔다. 노을이의 그런 행동이 기분이 좋을 때 내는 소리란 걸 안 후로는 매일 운동장을 찾았다. 즐거워하는 녀석의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 기분이 좋았기에...

 

그날, 4월 둘째주 일요일 아침도 그랬다. 우리가 쉬는 날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 노을이와 방울이 녀석은 동이 트자마자 연신 자고 있는 남편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언제 일어날까 기다렸다. 녀석들의 산책은 거의 남편이 도맡아 하다시피 한 때문이다, 특히 휴일 아침의 산책은.

 

그런 녀석들의 성화에 남편은 잠에 취해 있는 우리들을 두고 혼자 방울이와 노을이를 데리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달리기 한번 시켜주고 오겠노라며. 그리고 얼마 후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노을이가 죽었다며 묻어 줘야겠다며 작은 모종삽을 찾는 남편의 목소리를 떨리고 있었다.

 

잠이 확 깼다. 무슨 소리냐며 쫓아 나갔다. 노을이는 우리가 사는 아파트 맞은 편 작은 야산 한 귀퉁이에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이미 생명의 기운은 없었다. 그나마 큰 고통을 받지는 않아 다행이다 싶으면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아직 어린 녀석이었지만 화장실을 제대로 가릴 줄 모른다고 많이 타박하고 야단쳤는데, 너무 크면 키우기 힘들다고 방울이보다 간식도 적게 줬는데, 전날 저녁에 반찬으로 나온 돼지고기 몇 점 달라고 보채는 걸 모른 척 주지 않았는데..

 

남편은 방울이 때문에 노을이가 사고를 당했다며 방울이가 놀랐을 거라고 하면서도 방울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남편에 의하면 평소 말을 잘 듣는 녀석들이고 매일 가던 길이라 이날따라 녀석들 목에 목줄을 매지 않았단다. 그런데 남편과 노을이는 함께 길을 건넜는데 방울이 녀석이 한눈을 파느라 뒤쳐졌다고 했다.

 

남편과 노을이, 그리고 방울이가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 있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그리고 남편이 노을이와 함께 방울이를 데리러 가려고 왔던 길을 다시 건너려고 주위를 살피던 찰나 노을이가 방울이쪽으로 내달렸고 그 순간 달려오던 차에 치이고 말았다고 했다. 정말 순식간이었단다.

 

아마도 노을이는 뒤쳐진 방울이를 자기가 챙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여느때처럼 방울이를 향해 달려간 듯했다. 노을이는 방울이와 산책할 때면 늘 앞장서서 달렸다. 그러다 방울이가 뒤쳐지는 모양새면 방울이에게 달려갔다가 앞으로 내달렸다가 하면서 방울이를 챙겼다. 아마 그날도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그날 노을이는 갑자기 우리 가족이 됐던 것처럼 갑자기 우리들 곁을 떠났다. 그리고 잠에서 깬 아이들이 노을이 소식을 듣고는 아직 어린 녀석인데 갑자기 죽었다며 불쌍해서 어떡하냐며 우는 통에 한동안 집이 울음바다가 됐다.

 

그리고 벌써 두달여가 지났지만 노을이는 우리 가슴 속에서 쉽게 잊히지가 않는다. 지나간 사진첩을 보거나 노을이와 함께 갔던 장소를 지나칠 때면 녀석이 더 생각나고 집안 곳곳에 배어 있는 녀석의 흔적에 아직도 가슴이 아리다. 우리집에서 노을이의 이름을 올리는 것은 금기 아닌 금기다. 서로 아플까봐.

 

하지만 녀석을 묻은 알뫼산이 집에서 훤히 바라다 보이는데다 매일 방울이와 함께 산책하는 길에 있어서 녀석을 생각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아이들은 아직 어리니까 녀석을 많이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도 노을이가 잘 잊혀지지 않나 보다.

 

지금도 밖에 나가면 신이 나서 달려 다니던 노을이의 활기찬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특히 학교 운동장을 신이 나서 콧소리를 내며 달려 다니며 멍멍 짖어대던 녀석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날 함께 있지 못해서, 지켜주지 못해서 녀석을 생각할 때마다 자꾸만 미안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1.06.16 13:24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방울이 #노을이 #알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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