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눈꽃마을 고원마루길, 환상이네

[대관령 바우길 도보여행 2]

등록 2011.06.24 10:29수정 2011.06.2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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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눈꽃마을 표지판. 보기만 해도 행복해질 것 같다. 행복하시라. ⓒ 유혜준


다섯 시간을 걸었더니 적당한 피로감이 느껴진다. 횡계읍내에서 황태구이로 저녁식사를 한 뒤, 대관령눈꽃마을 생태체험장을 찾아 나섰다. 횡계읍내에는 황태구이를 파는 식당이 많다.

횡계읍에서 5km 정도 떨어진 곳에 대관령눈꽃마을(차항2리)이 있다. 이 마을은 체험마을로 알려져 있는데, 펜션을 갖추고 있어 숙박이 가능하다. 대관령 바우길 2구간과 3구간을 걸을 참이라면 이곳에서 숙박하면 편하다. 대관령 바우길 2, 3구간이 전부 이 마을에서 시작된다. 이 구간들은 전부 원점회귀 한다. 다시 말해 출발한 지점이 도착지점이다.


횡계읍내에서 이 마을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없어 차량없이 이동하려면 택시를 타야한다. 다행히 횡계읍내에서 대관령눈꽃마을까지의 거리는  5km 남짓으로 가까운 편이다.

대관령눈꽃마을에는 오후 7시가 훌쩍 넘어 도착했다. 정호일 눈꽃마을 사무장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펜션 방을 배정받았다. 복층 구조로 되어 있는 펜션은 6명이 넉넉하게 잘 수 있는 넓이였다. 이곳에서 2박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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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바우길 1구간 양떼목장길에서 본 양떼목장 풍경 ⓒ 유혜준


바우길이나 대관령 바우길 1구간처럼 대관령 바우길 2, 3구간도 이정표나 길표시를 따라 걸으면 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현지에 와서 알게 되었다. 2구간과 3구간은 '바우길 안내지도'에 표시되어 있고, 바우길 카페에도 자세한 지도가 올라 있어 개인적으로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1구간은 확정이 되어 조금 부족하나마 걷는 길에 리본들이 매달려 있어 길을 찾는데 큰 어려움은 없으나 - 그럼에도 길을 잃고 헤맸지만 - 2구간과 3구간은 달랐다. 정호일 사무장은 2구간 길 안내를 해줄 안내자를 소개해주었다. 숲해설가이자 소심원 펜션의 쥔장인 최종서씨였다. 최종서씨는 바우길 탐사대와 함께 대관령 바우길을 만들기 위해 길을 찾고, 구간을 확정하는 일에 참여했다.

12일 오전 9시, 대관령눈꽃마을 생태체험장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는 소심원에서 최종서씨를 만났다. 이날 대관령 바우길 도보여행에 나선 사람들은 우리 말고도 넷이 더 있었다. 친구 사이인 네 명의 중년 남자들은 처음부터 최종서씨와 함께 대관령 바우길 걷기에 나설 예정이었고, 나와 동생이 정호일 사무장의 소개로 끼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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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해설가 최종서씨. 이웃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미소가 인상적이다. ⓒ 유혜준


최종서씨의 안내로 시작된 대관령 바우길 2구간 도보여행은 아주 특별했다. 처음부터 최종서씨에게서는 노련한 숲해설가의 포스가 팍팍 느껴졌는데, 그 느낌이 제대로 맞아 떨어진 것이다. 덕분에 걷는 걸음은 가벼웠고,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대관령바우길 2구간 '고원마루길'은 바우길 지도에 따르면 전체 길이가 13km로 소요되는 시간은 6~7시간 정도. 이 구간은 삼양 목장과 한일 목장 주변의 목초지를 지나는 길로 바우길 구간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있다. 1185미터의 높이까지 올라간다는 것이 최종서씨의 설명이었다. 그렇다고 등산을 하는 것은 아니다. 넓게 펼쳐진 초원을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면서 완만하게 경사가 진 길을 걸을 수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서 웃자란 풀들을 헤치면서 걸어야 하는 단점이자 장점이 있어, 매혹적이기까지 한 길이다.

대관령에는 마가렛이 지천으로 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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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 노란빛이 선명하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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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마가렛. ⓒ 유혜준


6월은 산에 들에 꽃들이 피어나는 계절. 길을 나서자마자 화사하게 핀 꽃들과 마주치고 또 마주친다. 최종서씨는 앞장서서 풀숲에서 수줍게 피어 있는 꽃들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뒤따라 걷는 일행들에게 꽃 이름부터 전설, 얽힌 이야기들을 한 보따리씩 풀어놓는다.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풀어놓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꽃이나 나무를 보면 처음 볼 때와 다른 느낌을 받는 건 당연지사. 숲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지수가 가파르게 상승한다. 내딛는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건 덤이다.

환하게 웃음 짓는 것 같아 '함박꽃'이라 불리게 된 산목련이 북한 국화로 북한에서는 '목란'이라 불린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애기똥풀이야기와 더불어 잎의 색깔을 바꿔 벌, 나비를 유혹한다는 개다래 이야기도 이 길에서 들었다. 대관령에는 마가렛이 지천으로 피어 눈길을 잡아끄는 것으로 모자라 걷는 발걸음까지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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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만 털을 두르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에 비해 기품이 있어 뵈는 건 순전히 털 때문?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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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소들.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우리를 힐끔거리고 살핀다. 얼굴에 얼룩이 진 녀석이 칡소. ⓒ 유혜준


1시간쯤 걸어 대관령 사파리목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목장 쥔장에게 커피를 대접받았다. 이 목장에는 양을 방목하고 있어 양떼목장길(대관령 바우길 1구간)을 걸을 때 보지 못했던 양을 볼 수 있었다. 목장 쥔장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있는 양은 2천 마리가량이란다. 그것밖에 안 되나? 했더니 수입이 금지되어 있단다.

완만하게 경사진 목초지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양들은 죄다 털을 깎았는데 딱 한 녀석만 털을 외투처럼 두르고 있었다. 그 녀석만 진짜 양 같고, 털을 홀라당 깎인 녀석들은 어째 양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관령 사파리목장에서는 양 구경 말고도 승마체험도 할 수 있다. 겨울에는 실내에서 말을 탈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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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대관령 바우길 2구간 고원마루길은 목장을 둘러싸고 있는 길이라 널찍널찍한 것이 특징이다. 임도처럼 차량 한 대가 너끈히 지나다닐 수 있는 넓이다. 그런 길의 특징은 마을을 산책하듯이 걷기 좋다는 것. 가끔 가파른 오르막이 나오고, 내리막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 정도쯤이야 조금 가쁜 숨을 내쉬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을 지나 한참을 걸으니, 저 멀리 풍력발전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완만한 능선의 목초지가 이어진다. 길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버리고 없다. 그저 너른 풀밭이 막막하게 펼쳐질 따름이다. 풀을 밟으며, 풀을 쓰러뜨리며 걸을 수밖에 없다. 풀을 밟고 걷자니 발밑에서 풀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잠깐만 지나갈 테니 조금 뒤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주렴.

어린아이 새끼손톱처럼 작고 하얀 은방울꽃이 대롱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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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방울꽃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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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방울꽃 ⓒ 유혜준


아, 은방울꽃 군락지인가 보다. 어린아이들 새끼손톱처럼 작고 하얀 꽃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바람이 불면 한꺼번에 맑고 밝은 소리가 터져 나올 것 같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도 꽃들은 바람에 잔잔하게 흔들릴 뿐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귀를 스치는 건 바람에 누웠다가 일어나는 풀들이 내는 소리뿐. 은방울꽃이 피는 계절이 바람과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누렇게 색이 변한 꽃들이 제법 눈에 많이 띈다. 가는 세월을 그 뉘라서 막을 수 있으리오. 꽃은 피었다가 지고, 한 번 왔던 계절은 다음 해를 기약하면서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사라진다.

경사가 완만하다 해도 길이 없는 곳을 걷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걸음은 더뎌지고, 호흡은 저절로 가빠진다. 그리고 올라선 고원마루.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바위가 놓여 있다. 이름하여 시루떡 바위. 꽃이나 바위에 먹을 것 이름을 붙은 것을 듣거나 볼 때 마음은 스산해진다. 예전에, 아주 예전에 먹을 것이 모자라던 시절에, 어쩔 수 없이 굶주림을 견디던 사람들은 꽃을 보고, 나무를 보고, 바위를 보고 먹을 것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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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떡 바위. ⓒ 유혜준


지금이야 먹을 것이 지천이다 못해 아까운 줄 모르고 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음식물쓰레기를 줄이자는 슬로건까지 내거는 상황이 되었다. 집에서 음식물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마음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불편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죄받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버리는 음식물은 죽어서 지옥에 가서 먹는다는데, 나 이다음에 죽어서 지옥가면 최소한 배는 안 곯겠다는 생각까지도 하게 된다. 아니, 배 터져 또 죽을 지도 모르겠다.

시루떡 바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이등병 바위가 있다. 군모에 일(一)자형 계급이 그려져 있어 이름이 그리 붙었단다. 남자들은 계급장 비슷한 것을 보면 군대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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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다. 이런 곳은 풀을 밟으면서 혹은 헤치면서 걸어야 한다. ⓒ 유혜준


이곳에서 보니 선자령의 풍력발전기가 아주 잘 보인다. 멋진 풍경이다. 앞이 툭 트인 풍경을 보면 마음이 완전히 비워지는 것 같다. 바람, 당연히 시원하지. 걸으면서 쏟아낸 땀이 한 순간에 식으면서 선뜩한 한기마저 느껴진다.

고원마루길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점심식사를 했다. 이 길, 중간에 식당이 없으므로 점심은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펜션에서 아침에 밥을 해서 도시락을 쌌다. 반찬은 김치와 구운 스팸, 그리고 김밖에 없었지만, 꿀맛이었다. 우리와 일행이 된 남자 분들은 라면을 끓여 함께 나눠 먹었다. 이 길 중간에는 식수로 이용할 수 있는 물 또한 없으므로, 부족하지 않게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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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발전기. ⓒ 유혜준


이날, 우리는 대관령사파리목장까지 가서 출발할 때 걸었던 길로 되짚어 내려왔다. 아직 구간이 완전하게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만간 지역주민들과 합의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대관령 바우길을 널리 알릴 예정이란다.

길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지역 주민과 합의를 하는 것이다. 길이 일단 열리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고, 그러다보면 이런저런 예기치 못했던 문제들이 일어난다. 대부분의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그 지역에 오랫동안 살고 있던 주민들에게 돌아가게 되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이런저런 피해 때문에 사유지인 경우 길 개방을 꺼려하거나 아예 막는 경우도 있다.

즐겁고 행복한 도보여행을 하려면 걷는 마음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쓰레기는 버리지 않고 꼭 되가져와야 하고, 걷는 길에 농작물에 절대로 손을 대지 않는 건 기본 예의다. 잊지 말자.

점심식사를 하고, 걸으면서 짬을 내어 쉰 것까지 포함해 여섯 시간 반 동안 길 위에 있었다. 한껏 여유를 부리면서 느림의 미학을 맛볼 수 있는 길, 대관령 바우길 2구간 고원마루길이었다.

대관령 바우길 2구간 고원마루길(13km)

차항리 대관령소심원․황병산식당 → 캔터키목장 → 승마클럽 → 동녘골삼거리 → 풍차길(목장길) → 풍차길 정상 → 승마클럽 → 눈꽃마을생태체험장

이 길을 걷고자 하는 분들은 대관령눈꽃마을로 미리 연락하면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연락처 : 033) 333-3301 대관령눈꽃마을 정호일 사무장
#도보여행 #대관령바우길 #대관령눈꽃마을 #고원마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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