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이완용이 있다

[서평] <이완용 평전> 합리적 근대인의 전형과 매국노 사이에서

등록 2011.06.21 12:05수정 2011.06.2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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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평전> 표지. ⓒ 한겨레출판

<이완용평전> 표지. ⓒ 한겨레출판

한반도가 19세기에도 근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고대 노예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는 일제의 식민사관에 맞서기 위해, 조선 후기부터 자본주의가 '맹아' 상태에 있었음을 주장하며  '근대' 의 이행을 규명하고자 노력했던 사회경제사학자 백남운.

 

근대라는 목표를 향해 순항 중이던 조선이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근대화 달성에 실패했다는 가설을 제기하여 '식민지 반(半)봉건사회론'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사회주의자 백남운이 만약 월북하지 않고 남한에 머물러 박정희의 계획경제를 목격했다면 그는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었을까.

 

과거 골수 운동권 좌파임을 자처하던 세력들은 적어도 '근대'라는 점에 있어서 자신들을 탄압했던 박정희와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의 정신적 대부나 다름없던 안병직이 자신의 '실수'를 시인하고 전향을 선언하자 힘없이 쓰러져갔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모순과 역설은 철 지난 레퍼토리가 아닌, 근대를 지탱하는 두 가지 축인 '합리적 사유'와 '도구적 이성'으로 단단히 무장한 채 살아가는 현대의 우리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이완용 평전>은 우리가 매국노로 치부해버렸던 이완용의 모습이 도구적 이성 및 합리적 이성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서술한다. 이완용과 우리는 '근대'의 토대인 합리적 사유와 도구적 이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매국노'로 점철된 이완용에 대한 일방적 비판 대신 이완용의 '합리적 사유' 와 '도구적 이성' 이 어떻게 친일과 매국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조명해주고 있다.

 

합리적 이성이 주어진 조건 내에서 최적의 해를 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완용은 놀랍게도 합리적 이성을 구현하는 데 일관적인 기준을 적용한 정치인이었다. '친미'에서 '친러'로, 그리고 '친일'로 이어지는 그의 행보는 우선 정세를 기민하게 탐색한 후 제약조건 하에서 고려할 수 있는 모든 사항을 고려하며, 최선의 결정을 내린 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서 반드시 대비책을 마련해두는 '도구적 합리성'과 '합리적 이성' 의 결정판이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변절이 아닌 일관된 '소신'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완용은 당시 사회진화론을 수용하여 애국계몽을 전개하고 있던 지식인들과 놀랍도록 유사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이완용은 을사조약 체결 직후 아래와 같은 상소문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변호했다.

 

"새 조약의 주된 취지에 대해 말하자면, 독립이라는 칭호가 바뀌지 않았고 제국이라는 명칭도 그대로이며 종묘사직은 안녕하고 황실도 존엄합니다. 다만 외교상의 한 가지 문제만 잠시 이웃 나라에 맡긴 것인데, 우리가 부강해지면 되찾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중략) 종당에는 국가 간의 외교 문제에서 감정이 야기되는 일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은 어찌 염려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 <이완용평전> 208쪽

 

대한자강회를 비롯한 계몽운동 단체와 근대 문명을 받아들인 유학파 지식인들은 을사조약에서 명시했던 "한국이 부강을 인할 시"까지 일본이 대한제국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에 근거하여 부강을 위한 실력양성의 기치를 더욱 높이 내걸었다고 저자는 서술한다.

 

근대적 이성은 계몽주의와 동시에 사회진화론이라는 쌍생아를 낳았으며, 사회진화론에 기반한 "우승열패"와 "약육강식"의 폭력적 근대화가 어찌 해볼 수 없는 제약조건이라면, 그 제약조건 속에서 최대의 해를 구할 수 있는 합리적 방식은 '실력양성' 뿐이라고 이완용은 생각했다.

 

그의 합리적 사유는 놀랍계도 애국계몽운동 지식인들에게 통용되고 있던 사고방식과 크게 다를바 없었다. 단지 그는 대한제국의 관료로서 이미 '결정난' 것이나 다름없던 조약에 도장을 찍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말미에 소개되는 이완용의 일상생활 역시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재산이란 하늘이 잠시 맡겨둔 것이기에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며 그래서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소신을 갖고 있던" 이완용은 비교적 검소하게 살았고 당시 귀족들처럼 여자를 탐하지도 않은 채 문방사우를 수집하며 글쓰기와 손자들에게 가르쳐줄 <천자문>을 직접 써서 책자로 만드는 소소한 일상을 보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친일파를 옹호하느냐" 하는 비판을 제기할 사람도 많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는 이완용을 '변호'하는 것이 아닌,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일상에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와 같은 비판은 초점을 비켜간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놀랍도록 모범적이고 합리적인 관료인 아이히만을 다각도로 조명함으로서 인간 안에 숨겨진 '악의 평범성' 을 성찰할 것을 주문한 것처럼 말이다.

 

합리적 이성이 주어진 조건 내에서 최적의 해를 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오늘날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제약조건을 놀랍도록 냉정하게 인식하고 그에 맞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자인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목적과 관계하지 않으며 어떤 목적에 가장 적합한 수단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는 도구적 이성'이 지배 계급의 주장을 정당화하고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음을 역설했다. 우리 안의 '합리적 이성'이라는 괴물은 이미 주어진 현실을 불변의 고정된 조건으로 간주하면서 진보의 여지를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가 되돌아볼 일이다.

 

"이완용이 매국노라는 오명을 쓴 것은 인간성을 상실한 그의 탐욕 때문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한 가운데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실리를 추구했던 그의 사고 때문이었다. 무모하게 분개하거나 실리없는 의리만을 고집하는 태도를 버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중시했던 그는 100년 전 다른 양반 관료들과 달리 선진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사고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망국의 현장을 떠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3·1운동으로 민족의 분노가 표출되었을 때도 그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분노하는 군중의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차별, 불평등, 억압에 분노하기 보다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실리를 추구했던 그의 태도 가운데서 우리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믿는 현대인의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 - <이완용평전> 298~299쪽

덧붙이는 글 | <이완용평전>(김윤희 씀, 한겨레출판사 펴냄, 2011년, 16000원)

2011.06.21 12:05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완용평전>(김윤희 씀, 한겨레출판사 펴냄, 2011년, 16000원)

이완용 평전 -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

김윤희 지음,
한겨레출판, 2011


#역사 #근대 #도구적이성 #합리적사유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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