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귀신 '정사장'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정연주의 증언 60] 감사원과 KBS 옛노조의 기막힌 거짓말 동행

등록 2011.07.01 15:34수정 2011.07.0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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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옛 노조, '정연주 퇴진' 전면전 나서

 

박승규 KBS 노동조합 위원장 ⓒ 유성호

박승규 KBS 노동조합 위원장 ⓒ 유성호

2008년 봄. 이명박 정권이 나의 퇴진을 위한 총체적 압박을 가하던 때 당시 KBS 노동조합(11대 노조, 위원장 박승규 현 KBS 보도본부 사회부장)도 이에 단단히 한몫을 했다.

 

4월 11일 노조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면서 "정연주 사장의 사퇴를 조기에 이끌어내는 것을 주된 활동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이날 결의는 '정연주 퇴진'을 위한 노조의 본격적인 작전의 개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뒤 나온 모든 노조활동의 초점은 나의 퇴진이었다.

 

"정 사장 있는 한, KBS 미래는 없다"(4월 15일 노보 특보)

"정연주여! 더 이상 공영방송의 가치를 훼손하지 마라" "정연주는 인질극을 중단하라!" (4월 17일 노보 특보)

"정연주는 물러나야 한다. KBS 미래를 위해!!!" (4월 21일 노보 특보)

"비대위 출범! '정 사장 퇴진! 낙하산 반대' 서명 시작!!!" (4월 23일 노보 특보)

 

불과 1주일 남짓 동안 KBS 노조는 네 번의 노보 특보를 발간하면서 나의 퇴진을 위한 전면적인 홍보전에 나섰고, 수구언론은 신이 난 듯 이를 받아 대서특필했다. KBS 노조와 수구언론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신명나게 '정연주 퇴진'을 외치고 있던 그 시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인 최시중씨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3월 25일)한 뒤 나의 제거작업을 위해 적극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시점이기도 하다.

 

100여 개의 검은 만장에는 거짓과 증오가...

 

4월 16일. 출근하니, KBS 본관과 신관 입구에는 증오와 저주, 거짓이 담긴 검은 만장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KBS 방송 카메라 기자가 2008년 6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 정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만장 옆을 지나고 있다. ⓒ 유성호

KBS 방송 카메라 기자가 2008년 6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 정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만장 옆을 지나고 있다. ⓒ 유성호

- 근조 적자경영 무능경영

- 정 사장 웃을 때 조합원은 눈물난다

- 공영방송 파괴하는 정연주는 집에 가라

- 4년째 적자경영 정사장은 사퇴하라

- 남의 아들 군면제는 NO, 내 아들 면제는 OK

- 정연주는 방송독립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 정사장이 있는 한 수신료 인상은 불가능

- 수신료 걸림돌 정 사장은 자폭하라!

- KBS 파괴범 정사장 퇴진!!

- 경영능력 빵점! 위증기술 백점!

- 적자귀신 정사장 KBS 거덜낸다!

- 정사장만 행복하지 직원들은 불행하다!!

- 철면피 정연주 창피해서 못살겠다

- 정연주 자리 집착증에 KBS 미래는 먹구름!!

- 사장 연임 역주행에 KBS 미래도 역주행!

- 정연주 비호세력 함께 떠나거라!!

- 정사장 몰아내고 공영방송 사수하자!!

- 무능경영 증명됐다!! 집에 가서 칼럼써라!!

- 정사장 있는 한 적자수렁 못 벗어난다!!

 

이런 내용의 만장 100여 개가 회사 안팎을 휘감고 있었다. 만장에 적힌 증오와 구호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①적자 경영과 무능 경영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 ②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이 싫어하는 정연주가 있으니 수신료 인상은 불가하다. 그러니 수신료 걸림돌이 된 정연주는 물러나라.

 

'적자 경영' '무능 경영'의 거짓과 왜곡

 

적자 경영, 무능 경영과 관련하여 노조는 '4년째 적자경영 정사장은 사퇴하라'고 했다. '4년째 적자 경영'이라는 말은 4년 내리 적자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노조의 주장은 다음 <표>만 보아도 금방 거짓임이 드러난다.(자세한 내용은 <증언> 17, 18, 44 참조 바람)

 

2003년
 288억 원 흑자
2004년
 638억 원 적자
2005년
 576억 원 흑자
2006년
 242억 원 흑자
2007년
 279억 원 적자
                                 [표] 연도별 KBS 결산 손익

 

이 <표>에 나오는 결산 손익을 포함한 결산 내역은 KBS 이사회, 방송위원회, 국회에 모두 보고가 되는 내용이고, KBS 홈페이지에도 공개가 된다. 그런 공개된, 그리고 매우 단순한 사실조차도 거짓과 왜곡으로 바꾸어 선전활동을 한 것이 당시 KBS 노조의 행태였다. 이 <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가 사장으로 취임한 2003년부터 5년 동안 KBS 결산 손익을 모두 합쳐보면 189억 원 누적 흑자다.

 

또한 이 숫자는 공사 설립 이후 KBS의 결산 손익을 누적적으로 표시한 이익잉여금을 보아도 금방 나온다. 내가 취임하기 전인 2002년 말 이익잉여금은 3955억 원이었고, 5년이 지난 2007년 말 현재 이익잉여금은 4144억 원이었다. 그러니까 이익(흑자)이 189억 원 증가했다.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인데, 이런 사실은 아예 외면하거나 부정하고 '적자 경영' '무능 경영'이라고 했다. 아니, 내 경험으로 거짓 루머를 퍼트리는 무리는 그런 사실 자체에 관심도 없었다. 오로지 '사장 퇴진'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위해 온갖 선동을 할 뿐이었다. 정치감사, 표적감사를 했던 감사원도 그랬다.

 

감사원과 KBS 옛 노조의 거짓말 동행

 

나의 해임 구실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감사원은 2008년 특별감사에서 숫자를 가지고 온갖 장난을 다 했다. 흑자가 발생한 2003년의 통계는 아예 빼버렸고, 2006년은 적자로 둔갑시켰다. 그러면서 감사원 회의에서는 2005, 2006년의 결산 손익이 흑자로 되어 있는 <표>를 보면서 "이게 위에서 내려온 논리에 별로 안 맞습니다. 박스를 좀 빼주시고… 왜냐하면 이렇게 되면 정연주 사장 경영 잘 했네라고 보이는 박스입니다"라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증언> 18 참조)

 

"위에서 내려온 논리"는 '적자 경영'과 '무능 경영'으로 몰아 해임의 근거를 마련하라는 '윗분의 뜻'을 의미하는 것일 터였고, "정연주 사장 경영 잘 했네라고 보이는 박스"는 2005, 2006년의 흑자를 나타내는 <표>인데, 그걸 아예 언론 발표문에 없애 버리라는 말이었다.

 

2008년 나의 강제해임에 이르는 길에 감사원도, KBS 노조도 그렇게 거짓과 왜곡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의 행태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풍경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영방송 KBS의 경영 목표가 돈을 많이 벌어서 흑자 경영을 하는 것일 수가 없다. 민간 상업방송 방송이라면 사적 이윤의 극대화가 경영 목표일 수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의 경영 목표가 이윤의 극대화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공영방송의 경영 목표는 공정한 보도와 고품격의 프로그램 제작을 통해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 어려운 재정 상황을 맞게 되면 적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KBS에 적자가 발생하면 국회와 KBS 노조에서 제일 먼저 문제를 삼았다. 국회에서 결산 심의를 하거나 국정감사를 할 때 한나라당은 '적자 경영'과 '무능 경영'을 탓하면서 나더러 '떠나라'고 했다. KBS의 10대 노조(위원장 진종철)와 11대 노조(위원장 박승규)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 진정한 공영방송의 노조라면 오히려 회사측이 적자가 발생했다고 제작비를 삭감하는 것을 문제 삼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제작비를 아껴서는 안 된다고 질책을 했어야 했다.

 

KBS 노조가 그렇게 하지 않고 '적자 경영'과 '무능 경영'을 집중적으로 문제삼은 것은 '정연주 퇴진'이라는 다른 정치적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신료 인상 걸림돌, 정 사장 자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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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직원이 2008년 6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사무실에 정연주 사장을 비난하며 만들어 놓은 허수아비 옆을 지나고 있다. ⓒ 유성호

KBS 직원이 2008년 6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사무실에 정연주 사장을 비난하며 만들어 놓은 허수아비 옆을 지나고 있다. ⓒ 유성호

KBS 노조의 검은 만장에 담긴 두 번째 핵심 주장은 '수신료 걸림돌 정 사장은 자폭하라!'라는 구호에서 보이듯 정연주가 있으면 수신료 인상이 불가능하니 떠나라는 것이었다. 이 구호는 너무도 노골적으로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 쪽에 추파를 던지는 것이었다.

 

당시 국회의 의석수로 보나,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의 상황으로 보나, 수신료를 올리기 위해서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에 '눈엣가시'같은 존재인 정연주를 제거하는 것이 선결 조건이라고 당시 KBS 노조는 보았다. 그래서 나를 '수신료 인상의 걸림돌'로 보고 '자폭'할 것을 권유한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과 사고는 사실 KBS 내의 적지 않은 직원들이 공유하고 있었다고 나는 본다. 정연주가 사장으로 있는 한 수신료 인상은 물건너 갔으며, 그래서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과 통하는 인물이 KBS 사장으로 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런 입장은 '수신료 인상'을 공영방송의 공적 재원을 충실하게 하기 위한 공공성 측면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자신들 직장의 재원이 튼튼해서 '고용 안정, 복지 대박의  일터'가 되도록 하는, 조직 이기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럴 경우, 정치적 흥정도 가능해진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특보 출신이 사장으로 오면 수신료 인상이 확실해질 것이니, 그 선택이 가장 '옳은 선택'일 수 있었다(내 경험으로, 이런 입장을 가진 직원들 대부분의 가치관이나 세상을 보는 눈은 한나라당, 수구언론과 많이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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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백운기입니다' ⓒ 송주민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백운기입니다' ⓒ 송주민

실제로 그런 주장은 내가 해임되고 KBS 후임 사장 이야기가 등장하자마자 바로 나왔다. 지금 김인규 사장의 비서실장을 하고 있는 백운기 기자가 내가 해임된 지 불과 1주일 지난 뒤인 8월 18일 KBS 사내 게시판에 '내가 본 김인규 선배'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백운기 기자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 언론특보였던 김인규씨를 두고 "누구보다 KBS를 사랑하는 사람, 김인규 선배 외에 다른 분이 저는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 대해서는 'KBS에 대한 애정이 없는 인물'이라면서 이런 내용의 글을 남겼다.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다고 강조하는 것을 보면서 '다른 점은 몰라도 저 양반(정연주 지칭)은 분명히 KBS에 대한 애정은 없구나' 확신하게 됐다.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구도에서 정 사장이 KBS 사장으로 버티고 있는 한 수신료 인상은 절대 불가하다는 것이다… 정 사장에게는 우리 삶의 터전인 KBS가 단시 자신의 '숭고한 이념'을 실현할 수단에 지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KBS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백운기 기자뿐 아니라 박승규 전 노조위원장, 박선규 전 청와대 언론비서관으로부터도 들었다. 그 내용은 <증언 37, 38, 39>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정연주 #KBS #백운기 #박승규 #진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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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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