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희망의 버스, 이틀간의 기록

등록 2011.07.11 18:45수정 2011.07.1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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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희망의 버스, 이틀간의 기록

 

지난 6월 11일 제1차 희망의 버스가 부산 한진중공업을 다녀 온 지 한 달 만에 출발한 제2차 희망의 버스는 전국에서 190여대 1만 여 명이 다시 부산에 모였다. 7월 1일 평택을 출발해 소금꽃 만나러 온 도보행진단도 9일 동안 천리 길을 걸어 부산에 도착했다. 전국 각지에서 버스가 출발했지만 7월 9일 서울시청 앞 학습지 재능노동자들의 장기농성장에는 부산으로 출발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열기가 느껴져 왔다. 먼저 진보정당은 물론이고 노동시민사회운동진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인 느낌이다. 물론 촛불시민을 비롯해 자발적인 시민들도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채워지는 대로 버스가 출발했다.

 

- 장마전선을 따라 다녀 온 부산 한진중공업

 

장마전선이 한반도 위아래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날씨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충청지역을 지나면서 장대비가 쏟아졌다. 서울에서 출발이 늦어지면서 휴게소는 겨우 한 번만 들르고 곧장 부산역으로 향했다. 휴게소에는 부산으로 가는 관광버스가 주차해 있고 여기 저기 아는 사람들을 만난다. 간단한 요기도 식사시간에 쫓기면서 다시 차에 올랐다. 드디어 부산 톨게이트를 통과한다. 비가 내리는 부산역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문화공연은 열기를 더해 가고 있었다. 한 달 새 10배가 넘는 사람들이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장맛비가 쏟아지는 날 부산역 광장에는 문화제 열기가 뜨겁다.

 

- 민주주의가 꽃 핀 부산역 광장

 

문화제가 끝나고 행진이 시작됐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광장에 물이 차오를 정도다. 프랑카드를 든 행진대오가 역 광장을 빠져나가려 했으나 경찰차벽에 막혀 우왕좌왕이다. 장애인들의 전동차도 움직이기 어렵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을 향하는 대오들의 열기가 너무 강력한 탓에 경찰은 대오를 부산역광장에 가두어 둘 수가 없다. 김밥 옆구리 터지듯 참가자들이 대로로 쏟아진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장대비 속에서도 전국에서 달려 온 사람들의 행진이 시작된다. 영도교를 향하는 사람들의 기세가 드높다. 일회용 우의를 걸쳤지만 비가 온 몸을 적신다. 신발 속까지 물이 스며든다. "정리해고 철회하라", "김진숙을 만나고 싶다!"는 함성이 빗줄기 사이를 뚫고 85호 크레인으로 날아간다.

 

-가진 자들의 사병이 된 용역깡패와 경찰

 

경찰이 차벽을 치고 영도다리 입구를 막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봉래동 로터리를 들어서자 경찰은 차벽을 설치하고 행진대오를 막아섰다. 결국 새벽까지 공방이 벌어졌다. 길을 비켜달라는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과 이를 막아선 경찰 사이의 공방이다. 당국과 회사는 한 겹의 차벽이 아니라 경찰병력 7000명과 용역 3000명 등 1만 여명의 병력을 한진중공업 공장부터 봉래동 로터리까지 겹겹이 쌓아두었다. 한진중공업 자본가는 용역깡패라는 사병으로 공장 안을 막고 국가권력은 경찰력을 동원해 공장 바깥을 철통같이 방어하고 있다. 중앙정부조차도 어쩔 수 없는 봉건영주 내지 토호세력들의 성곽이다. 가히 자본가들의 세상이다.  용역뿐 만이 아니라 경찰조차 자본의 사병으로 전락하는 현장이다.

 

- 집회와 시위를 막는 공권에 맞선 저항권

 

집회와 시위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기본적 권리다. 그러나 자본가들 앞에서 그 권리는 멈춘다. 시민권은 자본의 통제를 받는 국가권력에 의해 무참히 유린된다. 헌법과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이들 자본정권과 독점재벌들은 공권력조차 그들의 자본가들의 사적 이윤 극대화를 위해 활용한다. 이 경우 시민권을 박탈당한 민중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저항권이다.

 

부당한 자본과 부패하고 타락한 공권력에 맞서는 민중들의 저항은 정당하다. 이는 자연법적 권리로서 그 어떤 폭력도 이를 빼앗을 수 없다. 공권력의 이름으로 이를 자행하는 것이야말로 불법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노동자시민들의 발걸음을 물리력으로 막았다. 한 두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공권력의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강력한 최루액을 난사하며 무자비한 연행을 시작했다. 국회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장애인, 어린이, 노약자, 여성을 향해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고농도 최루액을 난사했다.

 

 피부에 최루액을 직접 맞아 화상을 입은 사람들과 얼굴에 최루액을 뒤집어쓴 사람들은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50여명이 연행되는 과정도 매우 폭력적이었다. 살수차에서 최루액이 포함되지 않은 물만 뿌려대도 그 압력 때문에 대오가 전진하지 못하거나 흩어지기 마련인데 경찰은 고농도 최루액까지 섞어서 뿌려댔다. 그러나 거기 모인 대오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1박 2일 일정으로 너무나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은 그 곳을 떠나지 않았다.

 

- 85호 크레인에서 김진숙이 우리게 던져 준 질문

 

먼저 185일 째 35m 높이 85호 크레인에 있는 김진숙이라는 한 사람이 우리에게 던져 준 삶의 의미 때문에 최루액이 아니라 그 어떤 폭력에도 사람들은 그 곳을 떠날 수 없다. 한 사람이 동료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반대하면서 6개월 넘게 고공 백척간두에서 외롭게 외치고 있는데 이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말의 인간적 양심이 있다면, 최소한의 사람의 도리가 있다면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거기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은 투사이거나 조직된 노동자가 아니다.

 

이 야만의 시대를 그냥 모른 채 하거나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소시민이다. 그들은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왔고, 역사에 대한 소명의식을 조그마한 실천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기에 어떤 정치적 야망이나 목적의식적인 조직가들보다 더 처절하게 상황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며 눈물을 흘리고, 그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함께 즐거워하는 공동체 사회의 미덕을 발휘할 줄 알았다. 아스팔트 위에서 비를 맞으며 연설하고, 노래 부르고, 졸고, 이야기 하며 함께 한 1박 2일이었다.

 

이른 새벽 다양한 사람들의 흥겨운 공연과 밤새워  배부른 자본가들의 재산을 지키는 경찰들의 피로에 찌든 모습과 대조되었다. 그 어떤 1박 2일 연예 프로보다도 흥미진진했고 진한 사람의 채취가 넘쳐흘렀다. 비록 비에 젖은 신발과 양말이며 발 냄새가 지독했지만 말이다. 이튿날 뜨거운 여름 햇볕이 쏟아지는 아스팔트 위에 펼쳐진 우산과 양산의 물결은 우리나라 최대 해수욕장 해운대에서 펼쳐지는 여름 풍경과는 또 다른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간밤의 최루액 난사와 폭력연행에 대한 규탄기자회견이 진행된 뒤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는 농성을 시작되었다.

 

- 다시 제3차 희망의 버스를 출발하며

 

국밥을 나눠 먹으며 곳곳에서 공연과 공동체 놀이도 펼쳐진다. 밤을 새운 사람들은 우산 밑이나 나무그늘 그리고 상가 처마 밑 그늘에서 단잠을 자거나 담소를 나눈다. 엄마 아빠를 따라 온 아이들도 새로운 풍경을 신기해한다. 한마디로 난장이다. 오후가 되자 기획단은 회의를 통해 한 달 내로 3차 희망의 버스를 출발시키길 것을 발표한다. 그리고 85호 크레인 위 김진숙 지도위원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참가한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역사가 이 날을 기억할 것"이며 "희망의 홀씨가 희망이 되는 꽃밭"을 예로 들며 승리를 기원했다. 사람들은 진한 동지애와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부르며 버스에 올랐다. 바로 3차 희망의 버스를 출발하는 시작으로 만들자는 다짐을 했고 각 자 삶의 현장으로 출발했다. 봉래로터리를 출발하고 1차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에게 소환장을 남발했던 영도경찰서 옆을 지나 영도대교를 건너면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항구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차가 출발하기 무섭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두 차례 휴게소에 들르는 시간 외에는 모두 피곤한 모습으로 잠을 설쳤다.

 

희망의 버스 기획단 책임을 맡았던 시인 송경동은 부산을 출발할 때부터 목이 다 잠겨 있었고 서울로 오는 내내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연행된 사람들 대부분이 풀려났다는 소식도 전해 온다. 다시 빗줄기가 굵어진다. 출발하던 날 남하했던 장맛비가 다시 희망버스를 따라 북상한다. 여기저기 산사태가 나고 물난리로 농경지가 물에 잠기고 이재민이 생기고 인명피해도 있다고 한다. 인재에 더해 자 재해까지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

 

-다 차린 밥상에 젓가락만 들이밀어야

 

밤 12시쯤 집에 도착하고 인터넷을 통해 1박 2일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되돌아본다. 1987년 이후 24동안 치열하게 전개 되었던 민주노조운동은 지금 그 역할을 하지 못 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해고당하고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며 최저임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삶의 한계선상에서 고통 받고 있다. 실업자들도 늘어만 간다. 1박 2일 제2차 희망의 버스 일정을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신자유주의 정세를 돌파해 내는 조직된 노동조합의 일원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는 시민의 한 사람이 된 것에 책임을 느낀다. 다시 난장을 펼쳤던 봉래동 사거리가 생각난다. 경찰의 최루액 발사와 대규모 연행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끝 낼 즈음 참가했던 한 시민이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성토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시민들이 이렇게 판 깔아놨는데 몸으로 실천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다 차린 밥상에 젓가락 들고 나타나듯 기자회견에 얼굴만 내밀면 다냐고 했다. 기자회견 뒤 한 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는 2008년 촛불시민이었고 민중들의 분노가 밑으로부터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지금 관성화된 운동을 반복하고 있는가? 피로했지만 제법 시간이 흘러서야 잠이 든다.

 

- 절망의 버스를 타는 사람들

 

7월 11일 월요일 아침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희망의 버스 소식을 크게 보도한다.  "희망버스 1만명 최루액·곤봉 진압...힘을 보태면 세상이 달라질까… 목격자라도 되고 싶었다...김진숙, 강경진압 트위터로 접해 차마 볼 수 없어 꺼놨다...취재수첩 들고 "어디서 왔어요" 묻자 "그게 중요해요?""(경향신문), "최루액 물대포·영도 차벽…시민 희망행렬 막았다...의료단체 '발암물질 최루액' 의혹 제기...희망버스는 불안한 현실 '저항 아이콘"(한겨레)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적절한 표현이다. 

 

그러나 시대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 수구보수자본신문들은 "노사합의 됐는데··· 외부세력 7000명 몰려 시위"(조선일보), "한진重 시위 '물대포 해산'… 50명 연행"(동아일보), "[사설] 유감스러운 '희망 버스' 도심 시위"(한국일보), "[사설/컬럼] 한진重 노사합의 흔드는 외부세력의 얼굴들"(동아일보)이라며 절망을 노래했다. 그들은 여전히 부패하고 가진 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며 신자유주의 욕망의 기관차를 타고 어둠의 계곡으로 질주하고 있다. 말하자면 절망의 버스를 타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한시라도 빨리 그 버스에서 내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물론이고 무고한 다른 이들의 목숨조차 위태롭게 할 것이다.

 

- 전국 방방곡곡에서 투쟁하는 또 다른 김진숙을 만나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전 어제 부산 영도 봉래동 로터리 긴급 기자회견장에서 만났던 시민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진숙 지도위원을 반드시 살려야 합니다." 이 시대의 절망을 딛고 희망의 상징이 된 김진숙 지도위원을 살려야 한다는 부탁을 몇 번이나 했다. 명색이 민주노총 중앙임원을 오래했고 노동운동을 했다는 필자를 부끄럽게 했다. 자본운동에 대응하지 못하는 노동운동은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다. 한진중공업은 국내에서 노동자들을 수십 년 동안 착취 해 번 돈으로 필리핀으로 공장을 옮겼고 그 곳에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원시적인 자본축적으로 하고 있다.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이후 이 땅에는 해외투기자본이 물밀듯이 밀려왔고 단 기간에 투기적 이윤을 챙기고 빠져나갔다. 이름하여 해외 투기자본 또는 '먹튀'자본이라 불렀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국내투기자본이며 역시 먹튀자본이다. 자본은 국가권력조차 매수해 노동자를 착취하고 탄압하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노동착취와 민중수탈이 고도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재와 같이 투쟁이 거세된 노동운동만으로 이를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로 드러났다. 노동자운동, 민중‧시민운동 그리고 노동자들의 계급적 정치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희망의 버스운동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반(신자유주의적)자본주의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펼쳐지고 수많은 한진중공업과 김진숙을 살려낼 수 없다.

2011.07.11 18:45 ⓒ 2011 OhmyNews
#희망의 버스 #김진숙 #한진중공업 #최루액 #영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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