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서 탈출했는데, 하멜등대 세워 기념?

여수에 오면 한번 걸어보세요. 오동도에서 여수수산시장까지

등록 2011.07.15 11:30수정 2011.07.1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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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어우러진 여수 오동도 산책로 ⓒ 전용호


바다를 느끼고 싶다면 오동도로 오세요

오동도로 향한다. 오동도는 거제 지심도에서 시작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끝자락이다. 오동도는 여수를 상징하는 섬이다. 바다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전라선 기차를 타고 종점에 내리면 바다 향이 묻어오는 여수항이 있었다. 지금은 기차역도 옮겨가고 여수항은 세계박람회 준비를 위한 공사 중이라 그런 풍경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오동도가 유명한 건 바다위로 걸어갈 수 있는 방파제로 연결된 섬이었기 때문이다. 방파제 위를 걸으면 여수항이 보이고 반대편으로는 푸른 바다 수평선이 펼쳐진다. 방파제 끝에는 오동도가 있다. 방파제는 768m로 상당히 길다. 동백열차가 다니지만 오동도의 참맛을 느끼려면 쉬엄쉬엄 걸어가는 것이 좋다. '한국의 걷기 좋은 길 100선'에도 지정되어 있으니 여유를 갖고 걸어보시라.

오동도는 작은 섬이다. 옛날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동도라 했다고도 하고, 섬모양이 오동잎 모양이라서 오동도라 했다고도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섬에 오동나무가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대신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 난대 상록수림이 하늘을 가리고 섰다. 산비둘기들이 인기척에도 놀라지 않고 열심히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워낙 동백꽃으로 유명한 섬이라서, 여름철에는 기대만큼 화려한 맛은 없다. 대신 시원한 숲을 걷는 아늑함이 있다. 숲길에서 바다 쪽으로 곳곳에 산책로가 있다. 용굴, 바람골, 물개바위, 등등 아름다운 해안가 풍경을 볼 수 있다. 파도소리, 기적소리, 유람선이 떠다니는 풍경은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를 말해준다. 갯바위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도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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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 산책로에서 바다로 향하면 갯바위가 어우러진 바다풍경이 아름답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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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음악분수 ⓒ 전용호


오동도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아오면 광장이 나온다. 광장에 서면 음악분수가 시원한 물줄기를 하늘로 올리고 있다. 매 정시와 30분에 15분간 연출하는 음악분수는 귀와 눈을 즐겁게 한다. 절정에서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물줄기는 한여름의 더위를 싹 씻어 버린다.

광화문 동상보다 1년 빠르게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


오동도 방파제 입구에서 산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일출명소인 일출정이 있는 곳이다. 일출정에 서면 오동도와 방파제가 어우러진 여수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여수항은 엑스포장 건설로 어수선하다. 좁은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산 정상에는 자산공원이 있다.

아침 일출 때면 산봉우리가 자색으로 물든다고 하여 자산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당연히 일출 명소이기도 하다. 자산공원 중심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있다. 늠름하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이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어 자세히 본다. 왼손에 칼을 들고 오른손에 북채를 들고 있는 모습이 당당하다. 이 동상도 갑옷은 광화문 동상과 유사하다. 언제 세워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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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공원에 있는 이순신장군 동상. 박정희대통령이 성금을 냈다는 기념비도 서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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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동상건립기. 이충무공의 본영인 이곳 여수에 전국 국민들의 성금을 거두어 1967년 4월 28일 세웠다고 적어 놓았다. ⓒ 전용호


가까이 다가가니 박정희 대통령이 성금을 했다는 비석도 세웠다. 이충무공 동상은 당시 여수시장과 여수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전국에 모금운동을 전개하였고, 박정희 대통령의 분부로 1년여의 공사 끝에 준공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동상 좌우에는 노산 이은상이 지은 충무공찬가와 거북선 찬가가 새겨져 있으며, 소암 손재형이 글씨를 썼다.

동상 주위를 돌아보니 설립년도가 보인다. 1967년 4월 28일에 세웠다고 적어 놓았다. 4월 28일은 이순신장군 탄신일이다. 그럼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동상은 언제 세워졌지? 나중에 알고 보니 광화문에 세운 동상보다 1년 정도 앞서 세워졌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은 1968년 4월 27일 세워졌다. 그럼 가장 먼저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은 어디에 있을까? 한국전쟁 중인 1952년 4월 13일 해군진해기지사령부에 세워진 것이 최초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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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공원에 있는 분홍꽃이 피는 등나무. 나무 굵기가 상당하다. ⓒ 전용호


공원을 한바퀴 둘러보다 커다란 등나무를 보았다. 와! 이렇게 굵은 등나무도 있나? 정말 크다. 파고라를 덮고 있는 등나무 굵기가 1m는 되어 보인다. 꽃도 특이하다. 보통 보라색 꽃을 피우는데, 이 등나무는 분홍색 꽃을 피웠다. 다음에 꽃이 만개할 때 다시 와봐야겠다.

하멜 등대, 그 역설적의 의미를 아는가

자산공원 바로 아래에 활터인 충무정이 있고, 그 옆으로 작은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해양공원이 나온다. 해양공원은 2001년부터 여수항만청에서 여수구항 해안을 정비하여 시민에게 휴식공간으로 제공한 공원이다. 해안선을 따라 1.5km 정도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으면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바다 풍경을 즐길 수 있다.

해양공원 방파제 끝단에는 빨간 하멜 등대가 섰다. 네덜란드 상선 선원이었던 하멜을 기념하여 세운 등대다. 이곳은 하멜이 1653년 제주도에 표류하여, 1663년부터 1666년까지 4년간 여수 전라좌수영에 억류되어 있다가, 1966년 9월 일본으로 탈출했던 곳이다. 탈출을 기념한 곳에 세운 기념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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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공원 방파제 끝단에 세운 하멜등대. 네덜란드 상선 선원이었던 하멜을 기념하여 세운 등대다. ⓒ 전용호


하멜표류기를 읽어본 적이 있다. 전반적인 내용은 하멜이 조선에 살면서 어떻게 탈출했는가를 기록한 것이다. 이 낯선 땅을 벗어나 고국 땅으로 돌아가고픈 심정은 이해하겠지만 청나라 사신일행에 뛰어 들어 문제를 일으키고, 비록 억류가 되었지만 잘 대해줬던 주변사람들을 속이고 탈출계획을 세우는 등 읽는 내내 마음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하멜표류기를 쓴 목적도 조선을 알리기 위해 쓴 게 아니라, 조선에 표류되고 억류되어 있던 동안 밀린 임금을 동인도회사로부터 받아내기 위해 쓴 기록이다. 그렇다보니 어찌 좋은 내용을 기록할 수 있겠는가? 억압받고, 고통당한 내용이 표류기 전반에 흐른다. 다시 생각해보면 하멜을 기념하고 좋아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해안선을 따라 걸어간다. 공원 난간에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한가로운 풍경이다. 돌산대교가 아름답게 보인다. 해양공원이 끝나고 다시 해양공원을 조성하는 공사현장을 지난다. 커다란 광장이 나온다.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이순신 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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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공원 풍경. 낚시도 즐기고 산책도 한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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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광장 전망대. 거북이 입 모양이다. ⓒ 전용호


옛날 이곳에는 거북선이 떠있었고, 수만은 군선들이 주둔했던 곳이다.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항만으로 개발되고, 지금은 매립이 되어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광장은 광장일 뿐이다. 허전하다.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이순신광장을 만들었다지만 큰 감동이 없다.

길을 계속 걸어가면 여객선터미널도 나오고 수산시장도 나온다. 여객선터미널에는 섬으로 갈 배가 기다리고 있다. 수산시장으로 걸어 들어간다. 싱싱한 수산물들이 환한 불빛을 받고 있다. 좌판을 벌이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혹시나 하고 눈길을 마주친다. 활기찬 것 같으면서도 한가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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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에서 여수수산시장까지 걸어간 길. 오동동 돌아 나오는데 3km, 오동도에서 여수수산시장까지 쉬엄쉬엄 걸으면 4km 정도다. ⓒ 전용호


#오동도 #자산공원 #해양공원 #이순신 #하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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