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실탄 연습·예비군은 저격수 훈련
현역 군인 죽어나가는데, 온 국민 군인화?

[주장] 시대착오적 '병영국가' 꿈꾸는 MB와 군부...헐

등록 2011.07.18 14:56수정 2011.07.18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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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해병대 해안소초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로 희생된 고 이승훈 중사, 고 이승렬 병장, 고 박치현 병장, 고 권승혁 상병의 합동영결식이 6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 연병장에서 해병대사령부 주관으로 열리는 가운데, 고인들과 생활을 함께 한 동료가 추도사를 마친 뒤 경례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날을 골라도 참 비극적으로 골랐다. 2011년 7월 4일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날, 국방부는 예비군 사격장을 민간인에게 개방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 내용은 이랬다. 민간업체에 위탁해 운영하고, 고등학생도 돈만 내면 M16 실탄 사격을 할 수 있다는 것. 서울 서초 예비군 훈련장을 시작으로, '성과'가 좋으면 2013년 이후 서울은 물론 6개 광역시로 확대한다는 야심 찬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귀신을 잡는다는 해병대에서도 실탄 관리가 안 돼 끔찍한 죽음이 발생했는데, 세금으로 만든 예비군 훈련장에서 민간업체가 실탄 체험을 민간인 상대로 운영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물론 실탄 사고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국방부가 말한 민간인 실탄 사격 체험의 목적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달라진 사회를 확인한 군부

국방부는 이 결정의 이유를 "민·군 간의 안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2만 원 내고 실탄 20발 쏘면 안보의식이 높아지느냐"와 같은 상식적인 질문은 생략하자. 이 사업을 위탁받게 될 민간단체란 결국 무슨 '전우회'나, 일 생기면 군복 입고 나와 성조기 흔드는 수구단체가 될 가능성이 농후할 것이라는 추측도 접어두기로 하자.

진정 섬뜩한 것은 보다 많은 사람이 총을 들고, 그것을 쏘면 좋겠다는 대한민국 군부의 노골적 욕망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안보 공감대'란 미사여구의 진실은 전 국민이 군인이 되었으면 하는 시대착오적인 욕망이다. 그런데 이 욕망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이후 차근차근 실현되고 있다. 예비군 훈련장의 민간인 개방은 뜬금없는 일이 아니라, 이 과정에 놓여 있는 사건이다.

2010년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은 군부에게 세상이 변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했을 것이다. 천안함 침몰 직후에 있었던 6.2 지방선거에서 여권은 처참히 패했다. "한나라당 찍으면 전쟁난다"는 민주당의 주장이 시민에게 먹히자, 이전까지 북풍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던 한나라당 지도부는 당황했다.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에서 전쟁불사 기자회견까지 했지만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은 독자적인 분석과 의견을 제시했고, 시민은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지난 4월 치러진 강원도지사 보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는 천안함을 쟁점으로 만들어 휴전선 접경지역인 강원도민의 지지를 얻고자 했으나,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최문순의 승리였다.


연평도 포격 사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북한의 책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무모한 대응에는 반대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외부의 위협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흔히 나타나는 정권 지지도 상승효과도 미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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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방위사령부 57사단이 실시하는 '6.25전쟁 60주년 현역지휘관 청소년 안보교육'이 2010년 6월 2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삼선동 경동고등학교에서 열렸다. 학교 운동장에 군 장비가 전시된 가운데 현역군인들이 학생들에게 소총 사용법을 교육하고 있다. ⓒ 권우성


시민이 눈을 떠가자, 겁을 주어도 먹혀들지 않자 불안했을까? 그 불안에, 군부는 직접 시민의 군기 빠진 정신을 잡아주겠다 결심했나 보다. 그래서 아래로, 위로 시민의 정신을 무장시키려고 나섰다.  아래는 학교요, 위는 예비군이었다. 군대 철조망을 넘어 사회 전체를 군대로 만들겠다는 병영국가화를 위한 노력이었다.

고교생에게 총 주고 예비군 쉽게 동원하고

작년 6월 21일 서울 경동고등학교에서 청소년 안보교육이란 이름으로 현역군인들이 고등학생들에게 총기를 쥐어주었다. 진짜 총기를 보고 신기해하는 학생에게 군인은 "호흡을 멈춘 채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이 안보교육에서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얼마나 조심하게 다루어야만 하는지 가르쳤을지 의문이다.

한 번의 에피소드일까? 2011년 3월 25일 국방부와 교육기술과학부, 그리고 한국교총은 학생들의 안보교육 활성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 협약 이후 본격적으로 증가한 육군의 청소년 안보교육은 2011년 6월 말까지 6개월 동안 749회 실시되었다. 2010년 한 해 동안 900여 회가 실시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2배에 육박하는 증가율이다.

그렇게 점점 더 많은 군인은 학생들에게 "지난 60여 년간 북한이 자행한 각종 대남도발"을 주제로 가장 보수적인 안보관을 전파했고, 이를 "군와 학생이 가까워지는 계기"라 평가했다.

그렇다면 예비군은 어떨까? 누군가 "예비군한테 이럴 정신이 있으면 현역군인이나 챙기라"고 일갈했을 정도로 예비군 관련 정책이 쏟아졌다. 지난 2월 국방부는 "북한의 특수전 부대와 시가지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 예비군 저격수를 3만 명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3월에 실시된 한·미연합훈련에선 최초로 예비군이 전방에 투입되어 훈련이 진행되기도 했다. 전투적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조금이라도 더 예비역들에게 '국방색' 물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 예비군 정책의 화룡점정은 7월 14일 발표된 '국지도발 때 예비군 부분 동원' 정책이다. 이전까지 예비군은 충무2종 사태, 즉 전시에 돌입했을 때만 동원이 가능했다. 그러나 개정된 안에는 "적의 도발 징후가 현저히 증가한 상태"인 충무3종 사태에서도 부분 동원을 가능하게 했다. 이 변경을 바탕으로 이미 7월 13일부터 동원 대상자인 예비군 14만 명에게 통지서가 배부되고 있다. 이 통지서를 받은, 끝나지 않는 '군인'으로서의 자신을 마주했을 예비역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학생들이 실탄을 쏘고 예비군을 끊임없이 동원하면, 나라가 평화로워질까? 예비군 훈련 사격판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사진을 표적으로 붙이면 안보가 튼튼해질까? 보다 많은 사람이 총을 들고, 보다 많은 이가 '적'을 향해 분노하는 것은 과연 좋은 사회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5월 24일 오전 10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천안함 관련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 청와대


이런 고민이 고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는 매우 현실적인 고민이다. 사실상 북한과 남한의 전면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상주의자의 한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미연합사의 판단이다. 예상할 수 있는 도발 역시 국지전 정도이며, 그 국지전 역시 지상전 형태로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군에 있는 젊은이들이나 죽이지 말라

2009년 미 국방부 정보국 DIA국장은 "장비 부실과 훈련 부족으로 북한은 남한을 상대로 대규모 군사작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태"이며 "이 한계 때문에 북한은 핵 능력에 집착하는 것"이라 진단했다.

대북 적대의식을 고취하고 학생부터 예비군까지 무장시키는 일은,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안보 여건과 전혀 맞지 않는 정책이다. 안보를 말하면서 군부가 시도하는 병영국가화는 오히려 우리 사회를 반평화적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국방부가 이야기하는 '민·군 안보 공감대'라는 것은 결국 사회도 군대처럼 명령하는 대로 일사불란하게 총구를 들라는 것이다. 의심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라고. 천안함은 북한 소행이고, 북한은 언제든 남한과 전면전을 벌일 수 있기에 더 많은 국방예산과 더 많은 군인이 필요하다고.

그러나 정작 안보에 위협적인 것은 군대이다. 지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죽어나가고 있다. 시민의 분노는 해병대를, 그리고 군대를 향해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에 눈 떠가는 시민에게 총을 쥐어주면 '안보 공감대'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퇴행적 사고가 바로 안보를 해치는 요인이다.

안보라는 게 결국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 사회가 보다 평화롭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비군 훈련장 실탄 사격 체험이 아니다. 청소년 총기 체험이나 예비군 저격수도 아니다. 병영문화의 대대적 개선을 위한 노력과 군 고위층의 철저한 책임의식, 그리고 이를 제도화하는 게 필요하다. 한동안 감소하던 군내 자살률과 자살자 수는 지난 5년간 다시 증가하고 있다. 이것도 북한의 소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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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해병대 해안소초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로 희생된 고 이승훈 중사, 고 이승렬 병장, 고 박치현 병장, 고 권승혁 상병의 합동영결식이 6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 연병장에서 해병대사령부 주관으로 열렸다. 동료 해병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구행렬이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 권우성


#해병대 #총기난사 #안보공감대 #예비군 #실탄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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