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교에서 두 '강적'을 만나다

내가 그 아이에게 사과하고 싶은 이유는...

등록 2011.07.20 09:24수정 2011.07.2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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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학교에서 두 강적을 만났다. 그 중 한 명은 내가 이기고(그래서 지고), 다른 한 명은   내가 졌다. (그래서 이겼다.)

방학 중 보충수업 둘째 날이었다. 한참 수업을 하고 있는데 다른 반 아이가 교실로 들어왔다. 내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아이였다. 학교에서 벌점 1위. 교사들이 기피하는 학생 1위. 잘못을 지적해주면 교사보다 더 말을 많이 하는 그 아이의 머리는 노랗게 염색이 되어 있었다. 

"너 네 교실도 아닌데 왜 온 거야?"
"예. 학주 선생님이 여기에서 수업 받으라고 해서요."
"너 수업 받는 교실이 있을 거 아니야?"
"거기서 쫓겨났으니까 여기 왔지요."
"그래 일단 환영한다. 대신 우리 팝송을 배우고 있는데 열심히 해야 돼."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시작은 그런대로 좋았다. 처음에는 수업에도 열중하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것 같아서 아이가 소문과 다른 일면을 지녔거나 나와 궁합이 맞는 아이인가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영어가사와 우리말 가사를 짝짓기 하는데 아이의 눈은 책상 아래에 있었다.

"너 열심히 하기도 해놓고 약속 안 지킬 거야?"
"솔직히 공부하기 싫습니다."
"열심히 하겠다고 했잖아?"
"하기 싫은 걸 어떡합니까?"
"약속 했으면 하기 싫어도 해야지."
"하기 싫다니까요. 저 나가겠습니다."


"자리에 앉아."
"나가겠습니다."
"자리에 앉아."
"이 반도 아닌데 나가겠습니다."
"이 반도 아닌데 들어왔잖아. 선생님이 널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그럼 너도 널 따듯하게 맞아준 선생님을 대접할 줄 알아야지."


"죄송합니다. 이제 나가도 됩니까?"
"일단 앉아."
"나가고 싶습니다."
"일단 앉으라고."
"나가고 싶다니까요."
"일단 앉으란 말이야."
"앉아도 수업은 못합니다. 문자 하게 해주면 앉겠습니다."
"일단 앉아."
"문자 해도 됩니까?"
"일단 앉아.""자, 앉았습니다. 앉아서 문자하겠습니다."



"일어나."
"예?"
"일어나서 교실을 나가."
"왜 앉으라고 해놓고 또 나가라고 합니까?"
"내 맘이야. 너도 네 맘대로 하고 있잖아. 나가."
"어휴!"


이렇게 제가 이겼습니다. 수업 끝나고 아이를 만났습니다. 일부러 만난 것은 아니고 학생부장 선생님과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제가 다가간 것입니다.

"학생부장님, 저 애더러 우리 반에서 수업을 하라고 했습니까?"
"아니요. 그런 적 없는데요."
"그런 적 없다고요? 너 왜 나한데 거짓말 했어?"
"거짓말 안 했는데요."
"거짓말을 안 하다니? 너는 학생부장님이 우리 반에서 수업을 하라고 했다고 했잖아?"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받아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그래서 잘 했다는 거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그러지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또 한 번 이겼다. 그리고 다음 수업 시간이었다. 교실로 들어서는데 그 아이가 또 눈에 띄었다.

"너 여기서 뭐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저 나갑니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줄행랑을 치듯 교실을 나갔다. 이번에는 통쾌한 KO승이었다. 쉬는 시간에 나는 아이와의 사건을 복기해보았다. 어느 대목에서 화가 났는지, 아이가 미워지기 시작했는지, 이기고 싶었는지. 사실 미움이 컸던 것은 아니었다. 그 아이가 한 행동이 그 아이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감정이 솟구치는 순간에도 아이가 죽도록 밉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일 아이를 만나 그런 내 마음을 전하면 될 일이었다. 그래도 나를 보자마자 줄행랑을 친 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오늘 마지막 수업이었다. 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아이는 휴대폰으로 문자를 넣고 있다가 나에게 걸렸다. 평소 같으면 조회 때 담임이 휴대폰을 걷었다가 종례 때 다시 돌려주곤 했는데 방학이어서 그런 절차가 생략되다보니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문제가 생긴 두 반은 1학기에 내가 들어가던 반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몰랐고, 나 또한 그들을 모른 상태였다. 그러다보니 다시 교사와 학생 사이에 볼썽사나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휴대폰 여기에 올려놓고 들어가."
"이따가 주실 거죠?"
"일단 올려 놔."
"이따가 주실 거 아니면…"
"아니면, 못 올려놓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말해주세요. 이따가 주실 건지 말 건지."
"선생님이 그냥 올려놓으라고 하면 올려놓는 거야."
"올려놓으면 이따가 주신다는 말씀이지요?"
"일단 올려놔."
"약속해야 올려놓지요?"
"일단 올려놔."


아이는 휴대폰을 내 앞으로 툭 던졌다. 나는 그것을 다시 집어 들어 아이에게 주면서 다시 올려놓으라고 했다. 던지는 폼이 조금 풀이 죽어 있었지만 이번에도 휴대폰을 던졌다. 나는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어 아이에게 주면서 다시 잘 올려놓으라고 했다. 아이는 마지못해 휴대폰을 조용히 올려놓고 자리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들어가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묵언 시위를 했다. 나는 일어나라고 말할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수업 종료 7분 전이었다. 5분 동안은 빙고게임을 하기로 되어 있어서 2분이 남겨진 셈이었다. 아이는 그때까지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옆 아이가 아이를 툭 건들면서 내가 온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아이에게 휴대폰을 내밀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수업 시간에 문자하지 마. 그리고 미안!"

나는 돌아서기 전에 아이의 어깨를 잠깐 짚고 서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는 환히 웃고 있었다. 5분 동안 빙고게임을 하면서도 아이의 표정이 그렇게 해맑아 보일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이 아이의 진짜 모습 같았다.

내일 나에게 KO패를 당한 아이를 만나 사과하고 싶다. 무엇을 사과해야할까? 그 아이에게 두려움의 존재가 된 것을 사과하고 싶다. 인정머리 없게 아이에게 곁을 주지 않을 것을 사과하고 싶다. 나도 모르게 교사의 권위로 누르려 했던 것을 사과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그 아이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기회를 주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공동체 벗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교육공동체 벗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순천효산고 #교육공동체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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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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