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선덕여왕을 욕되게 하고 있다

[한국 고대사의 속속들이 19편] 신라인들은 '복지 포퓰리스트'?

등록 2011.07.21 10:36수정 2011.07.2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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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정책의 확대를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부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복지의 확대가 우리 사회에 맞지 않는, 낯설고 이단적인 것인 양 선전한다. 그들은 복지정책을 주장하는 쪽을 '복지 포퓰리스트'라고 폄하한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복지정책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한국 사회에서 꽤 친숙한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이래로 복지정책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은 이 문제에 대한 신라왕들의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라는 한국 고대왕국 중에서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왕조다. 고구려를 계승하고 신라를 멸망시킨 고려왕조에 의해 편찬된 <삼국사기>에서마저도 신라가 주류의 위치를 차지한 사실을 보면, 이 왕조가 한국사에서 갖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신라 초기의 영역에서는 지난 1400년간 가장 많은 기득권 집단이 배출되었다. 신라 때는 물론이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이 지역의 유력자들과 지식인들은 사회적으로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했다. 이런 지역을 지배한 신라왕들이 복지에 심혈에 기울였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면, 우리는 한국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복지정책이 일반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신라왕들이 복지정책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천재지변 같은 비상사태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겠느냐? 평상시에도 그렇게 했겠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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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진평왕(조민기 분). ⓒ MBC

물론 가뭄이 지거나 홍수가 생기거나 흉년이 들었을 때에 구호정책이 집중적으로 시행된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 따르면, 제26대 진평왕은 재위 11년 7월(589.8.17~9.15) 낙동강 유역에 홍수가 발생해서 주택 3만 360채가 떠내려가고 200여 명이 사망자가 발생하자, 재해지역에 특사를 파견해서 양곡을 배급하고 구제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신라왕들의 복지정책은 꼭 비상시에만 시행된 게 아니었다. 그것은 평상시에도 수시로 이루어졌다. 예컨대, 제27대 선덕여왕은 재위 원년 10월(632.11.18~12.16) 특별한 재난이 없는데도 전국 각지에 특사를 파견해서 자활능력이 없는 환과고독(鰥寡孤獨)에게 양식을 배급했다. 


'환과고독'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사료에도 자주 등장하는 부류로서 과거 동아시아에서 복지정책의 대표적인 수혜자들이었다. <맹자> '양혜왕' 편에서는 "늙어서 아내가 없으면 환(鰥)이라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으면 과(寡)라 하고, 늙어서 자식이 없으면 독(獨)이라 하고, 어려서 부모가 없으면 고(孤)라 한다"고 하면서 "이 네 가지는 천하의 곤궁한 백성으로서 하소연할 데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나라) 문왕은 정치를 시작하고 인(仁)을 베풀 때 반드시 이 네 부류로부터 먼저 하셨다"고 했다.

신라왕들, 비상시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약자를 우선했다

기원전 3세기 이전의 맹자도 환과고독을 배려하고 서기 7세기의 선덕여왕도 그렇게 한 것을 보면, 홀아비·과부·독거노인·고아 같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동아시아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정치의 기본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복지문제에 관한 한 동아시아에서 고대로부터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에서, 신라왕들이 비상시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했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복지정책을 호소하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백성들에게 다가갔다. 이른바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를 실시한 것이다.

예컨대, 제13대 미추왕(미추이사금)은 재위 3년 3월(264.4.14~5.12) "늙거나 가난하여 혼자 살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일부러 지방 순행을 떠났다. 제33대 성덕왕도 환과고독이나 연로한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일부러 지방을 순시했다. 다른 왕들의 경우에도 이런 사례가 발견된다.

이런 점들을 보면, 신라왕들이 복지를 국가정책의 우선순위에 두고 이 문제에 열성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관료집단과 기득권층이 그것에 동의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주류세력이 '나는 복지가 싫다!'고 외쳤다면, 신라왕들이 왕궁을 비우면서까지 마음 놓고 복지정책을 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정리한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 216쪽에서 노 대통령은 "(복지) 예산을 더 주고 싶었지만 관련 부처에서 사업을 빨리 빨리 만들어 오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복지정책이란 것이 단순히 통치자의 열정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관료집단이나 기득권층의 합의까지 필요로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탄식이다. 신라 관료집단이나 기득권층은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후세 사람들의 욕을 먹을 행동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신라왕의 복지정책, 이게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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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주인공 덕만(이요원 분). ⓒ MBC

<삼국사기> 같은 사료들은 지면의 제약 때문에 굵직굵직한 사건만 다루기 마련이다. 그래서 신라왕들의 복지정책도 주요한 것만 간추려서 수록했다고 보는 게 이치적이다. 이것은 위에 소개한 사례들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할 만한 합리적 근거를, 우리는 고대 동아시아의 정치 매뉴얼이자 조선시대 때까지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던 <예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기> 중에서도, 통치자의 월별 통치지침을 담은 '월령' 편에서 그 점을 찾을 수 있다.

어느 달에는 어떤 일을 하고 어느 달에는 어떤 동식물을 보호하고 어느 달에는 어떤 계층을 보호해야 한다는 식으로 기술되어 있는 '월령' 편에 따르면, 통치자는 음력 2월에는 고아들을, 음력 3월에는 가난한 사람들 즉 저소득층을, 음력 8월에는 노인들을, 입동 때는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들의 부인과 자녀 즉 국가유공자의 유가족을 보호해야 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월별 통치지침이 달랐을 수도 있고 복지시책의 수혜계층이 재해석되었을 수도 있지만, 한국·중국의 통치자들은 '월령' 편의 기본 정신에 따라 사회적 약자들을 정기적으로 배려해야 할 정치적 책무를 안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료에 기록되지 않은 정기적 복지시책도 아주 많았다고 보아야 한다. 신라뿐만 아니라 고구려·백제·부여·가야는 물론이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다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신라를 포함한 과거 동아시아에서, 복지란 것은 낯설고 이단적인 게 아니라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복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체제의 저항자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분위기가 있었기에 왕들이 별다른 저항 없이 복지정책을 펼 수 있었던 것이다. 

자애로운 어버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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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들의 금관. 출처는 고등학교 <국사>. ⓒ 교육과학기술부

왕국의 구석구석까지 찾아다니며 복지정책의 수혜자들을 찾아내려면, 동아시아의 왕들은 '자애로운 어버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월령' 편에 나온 통치자의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 모든 만물을 자기 자식처럼 챙기는 자애로운 어버이다.

자애로운 어버이는 유능하고 건강한 자녀만을 챙기지 않는다. 자애로운 어버이는 모든 자녀를 똑같이 사랑하되, 부족하고 허약한 자녀를 좀 더 챙기기 마련이다. 자애로운 어버이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자녀들을 똑같이 사랑하는 방법이다.

자애로운 어버이 즉 자애로운 통치자는 성경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이상한 포도농장 주인'과 유사하다. 이 주인은 이른 아침부터 일한 일꾼이나 3시부터 일한 일꾼이나 6시부터 일한 일꾼이나 9시부터 일한 일꾼이나 11시부터 일한 일꾼이거나 간에, 모두에게 똑같이 은화 1데나리온(3.8g)의 일당을 지급했다.

이 주인의 처사는 언뜻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노동시간에 관계없이 똑같이 품삯을 지급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백성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자애로운 통치자의 눈에는 조금 일한 백성이나 많이 일한 백성이나 다 똑같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백성에게 똑같은 사랑을 베풀고 싶어 하는 자애로운 어버이의 심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대 이래로 신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통치자들은 '이상한 포도농장 주인'의 마음을 품도록 교육받았다. 세금을 많이 내건 적게 내건 관계없이 모든 백성들에게 똑같은 음식을 먹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도록 교육을 받은 것이다. 그런 훈련을 받았기에 나라 곳곳을 순행하며 복지의 수혜자들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 고대왕국 중에서 후세에 가장 많이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기득권집단을 가장 많이 배출한 신라에서 복지정책이 그처럼 중시되었다면, 여타 왕조에 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오늘날 복지정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복지 포퓰리스트들로 몰려야 한다면, 신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왕들도 복지 포퓰리스트들로 몰려야 마땅할 것이다.

물론 과거 동아시아의 복지정책에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에서처럼 노골적으로 복지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세력을 형성하기는 힘들었다. 복지가 일종의 국시(國是)였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복지정책의 시행을 막고자 국민을 선동하는 이단 세력이 쉽게 출현할 수 없었다. 
#복지 #신라 #월령 #환과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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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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