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건 자유지만, 교섭은 글쎄...

교섭할 권리 없는, 그래서 미완성인 복수노조제도

등록 2011.07.22 14:23수정 2011.07.2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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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은 한국 노동법사에 기록될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지난 1961년 당시 정부를 참탈한 군사정권은 노동운동 전체를 제압하기 위해 '근로자의 단체활동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제정함으로써 노동조합을 설립할 때 정부의 심사를 받도록 했다.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이 임시조치법을 폐지하면서 동시에 기존 노동조합의 활동을 방해하는 제2노동조합의 설립을 금지한다는 이른바 복수노조 금지의 내용을 담아 노동조합법을 개정하였다.

 

바야흐로 한국의 노동조합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복수노조 설립금지의 시대를 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한국의 복수노조금지제도는 노동계는 물론이고 종교인, 지식인, 학생 등 의식 있는 사회 각계의 비판을 받아왔고, 한국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부터 복수노조 허용을 담는 국내법 개정을 이행하라는 권고를 받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러기를 50여년, 드디어 복수노조를 금지하는 법률이 폐지됨으로써 모든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과연 한국의 복수노조제도는 온전한 의미에서 노동조합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게 되었을까?

 

노조 알박기

 

한국 노동운동사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게 바로 기업의 무노조 정책과의 싸움이다. 기업의 경영자가 노동조합의 존재 그 자체를 혐오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동조합의 설립을 막는 행위가 바로 무노조정책이다. 


이러한 기업의 무노조 정책을 손쉽게 관철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복수노조 금지제도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의 설립 기미가 보이면 그 전에 유령노조를 만들어 설립신고를 마쳐 놓으면 실제로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설립한 노동조합이 설립필증을 받을 수 없는 제도적 현실을 악용한 것이다. 이런 노동조합 설립방해 행위를 통해 무노조 정책을 관철해 왔던 한국 최대의 기업 삼성, 그 삼성의 무노조정책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더 이상 설 곳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지난 2011년 7월 20일자 여러 신문에 삼성의 노조 알박기 행태가 보도되었다. 


"임 차장 등 회사 간부급 4명으로 구성된 삼성에버랜드노조는 지난달 23일 노조설립신고증을 받고 6일 뒤인 29일 회사와 단협을 체결했다. 이달 15일에는 용인시청에 단협 신고서도 냈다. 노동계와 삼성노동조합은 새로 설립 되는 노조에게 교섭권을 부여하지 않기 위해 '어용 노조'를 세우고 먼저 단협을 맺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단협은 2년에 1회 채결하는 것으로 이에 따라 이날 출범을 선언한 삼성노조는 현 단협이 유지되는 2년 동안 회사와 교섭할 수 없게 됐다." (오마이뉴스 2011년 7월 20일자)

 

복수노조가 설립이 가능해졌는데 왜 자유롭게 설립된 노동조합들이 사용자와 교섭을 못하는 일이 발생했을까?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은 바로 복수노조허용과 함께 뒤따라 온 교섭창구단일화제도에 있다.

 

기괴한 입법, 교섭창구단일화

 

단결권이란 노동조건의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노동자들과 그 단체에게 부여된 자주적 조직화활동, 단결체로의 가입 그리고 단결체의 존립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헌법상의 권리를 의미한다. 한편 우리 헌법은 단결의 주요목적이 사용자와의 교섭을 통한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이라고 할 것이므로 노동자들의 교섭요구에 관한 권리, 즉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있고, 나아가 교섭의 효과적 전개를 위한 단체행동권도 보장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 헌법 제33조는 단결권과 함께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근로자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노동3권은 어느 일부만으로는 그 목적하는 바가 보장될 수 없으므로 3가지 권리가 동시에 보장되어야 하는 이른바 삼위일체적 관계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창구단일화제도란 복수의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경우 어느 한 노동조합이 대표교섭노조가 되어 다른 노조의 교섭을 대신 체결해 주어야 한다는 제도를 말한다. 주로 미국과 캐나다와 같은 북미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제도이다. 가까운 일본이나 다른 유럽권 국가의 경우 원칙적인 자율교섭제를 부여하고 있는 것과 구별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몇 년 전부터 한국의 노동조합법과 별로 관계가 없던 미국식 교섭창구단일화제도를 복수노조 허용과 패키지로 묶어 교섭창구단일화제도를 도입하려고 했다.

 

이러한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다수노조에게는 막강한 권한을 몰아주고 소수노조에게는 사용자와 교섭할 권한을 완전히 박탈하는 제도다. 더군다나 어떤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협약을 체결하면 다른 노동조합은 그 협약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그 협약을 적용받거나 아니면 협약도 없는 상태에서 2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교섭창구단일화 제도가 도입된 데에는 사용자가 여러 노동조합과 교섭을 하면 시간과 비용이 늘어난다는 논리, 따라서 사용자의 교섭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논리가 그 배경이 되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 교섭권행사로 인해 발생하는 사용자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소수노조의 권리를 제한하겠다는 발상이었다. 


결국 사용자의 교섭부담을 교섭권 제한이라는 형식으로 떠안게 된 노동조합들은 불완전한 노동조합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단결하기는 했지만 교섭도 단체행동도 하지 못하는 무능노조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 원인은 삼위일체여야 하는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그리고 단체행동권을 분리하여 단결권을 보장하고 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은 제한하는 기괴한 입법에 있는 것이다.

 

노조법의 재개정을 고민해야

 

한국의 노동계가 오랫동안 벌여온 복수노조제 확보를 위한 활동은 노조의 자유로운 설립을 가로막았던 노조법을 개정해 노조설립의 자유를 보장받으려 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활동이 추구하는 본질적 목적은 노조의 자유로운 설립을 포함하여 노동3권의 자유로운 향유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그리고 단체행동권이 각각 분리되어 일부는 보장되고 일부는 사실상 제한되는 상황은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다시 말해, 당시 보장되던 교섭권과 행동권의 보장범위는 그대로 두고, 단결권의 범위를 확장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노조법이 노조의 자유로운 설립에 관한 권리 즉, 단결권의 보장을 확대했다고 평가될 수는 있겠지만, 교섭창구단일화제도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되면서 그 밖의 권리 즉, 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은 심각하게 제한받게 되었다. 


창구단일화 환경에서 조합원 과반수를 장악하는 노조만이 교섭권과 쟁의권을 전부 행사할 수 있고 그 밖의 노조는 교섭권과 쟁의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는 노조들만 있는 경우에도 법률은 최대노조가 체결권과 쟁의권을 행사하도록 함으로써 소수지만 자주적으로 결성된 노동조합들의 노동3권은 실질적으로 보장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자유롭게 단결하되 교섭은 제한한다"는 불완전한 복수노조제도를 목도하는 2011년. 그래서 우리는 다시 노조법의 재개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다시 시간을 끌게 되면, 지난 50년의 암울한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다시 새로운 노동운동의 역사를 써나갈 건강한 노동조합들을 어용노조의 그늘 안에서 전부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김철희 님은 노무사로 법률사무소 참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1.07.22 14:23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김철희 님은 노무사로 법률사무소 참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노동3권 #노동인권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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