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냥 장사가 아냐, 봉사활동이지"

추억의 선술집 구례 동아식당에 가다

등록 2011.07.25 08:39수정 2011.07.2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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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이 넘치고 세월이 멈춰선 이곳은 허름한 선술집이다. ⓒ 조찬현


"막걸리나 소주 한 병만 시켜도 안주가 이렇게 푸짐하게 나와요, 거저나 다름없죠. 그래서 이집은 지역의 문인과 시민단체 농민들이 즐겨 찾아요."


전남 구례 읍내에 있는 허름한 선술집 인심이다. 눈을 빤히 뜨고 현실을 바라보면서도 도대체 믿기지가 않는다. 세상에 술 한 병 값이 3천원인데 기본 찬과 계란프라이를 덤으로 내왔다. 거저 형식적으로 주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할머니가 온갖 정성을 담아 푸짐하게 내놓는다. 시골집에 찾아온 자식에게 해주듯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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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나 소주 한 병만 시켜도 안주가 이렇게 푸짐하게 나와요, 거저나 다름없죠." ⓒ 조찬현


"술 한 병 추가하면서 계란프라이를 더 달라고 해도 줘요. 손님들이 그리 먹고 가면 남는 게 하나도 없을 텐데 말이에요."

고구마순을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낸 고구마순무침과 단무지무침, 곰삭은 묵은지에 계란을 4개나 깨트려 푸짐하게 만든 계란프라이까지. 자고나면 오르는 물가에 메뉴판을 고쳐 쓰고 오려내 짜깁기한 일반 식당하고는 사뭇 달랐다.

이곳은 딱히 메뉴판과 가격표도 없다. 입구의 유리창에 써 붙인 몇 가지 음식이 전부, 그건 아니다. 원하는 음식이 있으면 말만하면 금세 뚝딱 만들어낸다. 할머니 혼자서 그 많은 손님을 대하는데도 누구하나 보채는 사람도 없다.

자신들이 술도 가져다 먹고 음식도 나른다. 이른바 일종의 셀프서비스, 뭐 그런 거다. 식당 안은 손님으로 가득해 평상을 내놓은 뒷마당으로 갔다. 그곳도 손님이 가득하기는 마찬가지다.


시골고향집처럼 운치 있고 정감이 있다. 할머니 혼자서 요리하고 음식을 나르고 하는데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정담을 나누며 여름밤을 즐긴다. 가족과 연인들, 친구들, 삼삼오오 모여앉아 한잔 술에 세월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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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의 선술집 동아식당이다. 10년 전부터 김길엽 할머니가 운영하고 있다. ⓒ 조찬현


70여년 세월의 연륜이 숨어있는 허름한 집, 구례의 선술집 동아식당이다. 10년 전부터 김길엽 할머니가 운영하고 있다. "이름을 왜 묻느냐"던 할머니는 "어디 봐, 사진이 잘나왔는가?"라며 금세 밝은 미소를 머금고 카메라를 들여다본다.

그 흔한 메뉴판도 없다. 물론 가격표도 없기는 마찬가지, 그래도 다 알아서 음식을 주문한다. 할머니는 오늘 낮에 진주에서 찾아온 손님이 족발탕을 시켜 먹었다며 족발탕을 아주 잘한다고 자랑이다. 메뉴에는 없지만 뭐든 주문만 하면 금세 만들어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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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는 손님이 찍어줬다는 허름한 이집의 모습을 담은 액자가 하나 걸려있다. ⓒ 조찬현


실내는 탁자가 대여섯 개 놓여있고 벽에는 손님이 찍어줬다는 허름한 이 집의 모습을 담은 액자가 하나 걸려있다. 딱히 부엌이랄 것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할머니는 음식을 잘도 해낸다. 돈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가오리찜이다. 제법 폼 난다. 쫀득한 가오리찜은 부추와 함께 먹으니 제법이다. 막걸리와 썩 잘 어울릴 듯하지만 조금 전 구례에서 놓칠 수 없는 맛 다슬기수제비를 맛보고 온 터라 막걸리 대신 소주를 곁들었다.

"이리도 싸고 좋은 음식을 공급하는 건 봉사활동이에요. 이렇게 음식이 값싼 곳도 있어야지 안 그러면 서민들 어디 가서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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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리 한 마리를 통째로 쪄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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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맛 나는 집의 가오리찜 상차림이다. ⓒ 조찬현


지인(참거래장터 조태용 이장)의 말마따나 이건 봉사활동이다. 가오리찜(15.000원)은 가오리 한 마리를 통째로 쪄냈다. 부추와의 궁합도 일품이다. 술맛 나는 집이다. 살맛나는 공간이다.

"계산해주세요, 얼마에요? 잔돈으로 드릴게요."
"돈이 부족하면 그냥 있는 대로 주세요.

할머니의 후덕한 인심과 정은 끝이 없다. 일부러 잔돈을 꺼내어 1만원, 5천원, 1천원... 셈을 하고 있자 돈이 부족해서 그러는 줄 알았나보다. 돈이 부족하면 있는 대로 셈을 하라고 한다. 할머니의 진심어린 배려에 가슴이 찡하다. 구례읍내의 이 허름한 선술집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세월이 멈춰선 이곳 선술집을.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선술집 #맛돌이 #가오리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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