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100번 읽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낫다"

[독립정신 답사기②] 좋은 스승이 있어 더 알찬 만주 답사

등록 2011.07.31 11:19수정 2011.07.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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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를 100번 읽는 것보다 이 곳에서 유적지를 돌아보는 게 낫다."

단재 신채호가 중국의 고구려 유적을 둘러본 뒤 한 말이다.

지난 19일부터 25일까지 6박 7일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회장 김자동)가 꾸린 7기 독립정신답사단과 함께 중국 동북3성(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 안의 항일무장투쟁지를 답사한 기자의 생각도 그렇다.

이번 답사일정은 빡빡했다. 다롄(大连) - 단둥(丹东) - 환렌(桓仁) - 류허(柳河)현 싼위안푸(三源浦) - 지안(集安) - 백두산 – 옌지(延吉) - 닝안(宁安) - 하이린(海林) - 하얼빈(哈尔滨)을 다니는 동안 하루에 3~5시간씩밖에 못 자는 강행군이 이어졌지만, 직접 보고 느낀 역사는 책으로 본 것보다 훨씬 더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뤼순에선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세계적으로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 절감하게 됐고, 5회분 5호묘에선 화려한 고구려인들의 색채와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다. 룽징시 옛 일본총영사관 앞에선 외교권을 뺏긴 나라의 국민들이 겪었던 수난을, 이회영 6형제들이 정착한 추가가 마을에선 온갖 고초를 감내하며 선각자들이 그렸던 국권회복의 꿈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좋은 스승들이 함께 해 이번 답사는 더욱 내실 있었다. 답사단의 단장과 부단장으로 모든 일정을 함께한 이만열 단장과 김삼웅·이준식 부단장은 과거 사실로서의 역사 뿐 아니라, 이 역사를 배워 오늘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를 가르쳤다.

임시정부기념사업회 7기 독립정신답사단을 이끈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배경은 북한 신의주 압록강변. ⓒ 안홍기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왜 젊은이들이 일어나지 않는가?"


이번 답사단의 단장은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냈고 한국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인 이 원로사학자는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젊은이들이 곯아떨어진 상황에서도 책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젊은이들이 '독립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답사 첫날 답사단원들에 대한 인사말에서부터 '얌전한 20대들'을 질타했다.

"요즘 젊은이들 왜 이렇게 패기가 없는가. 취직 걱정하고 스펙 쌓는 데만 치우쳐 사회에 대한 관심도 없이 개인 문제에 대한 고민만 많은 것 같다. 사회가 혼탁하고 정치가 엉망인데 젊은이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답사 셋째 날인 21일 류허현 추가가 신흥강습소 터를 보고 나오면서 이 교수에게 '독립정신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 '독립정신'이란 무엇인가.
"독립정신은 단순히 자주 독립국가를 세우는 것 뿐 아니라, 민주화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는 민주화운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임시정부는 비록 해외에서였지만 4번이나 헌법을 고치고, 정당활동을 활발히 하는 등 민주주의 훈련을 굉장히 많이 했다.

뉴라이트 쪽에서는 1948년 8월 15일 건국일이 중요하다면서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건 식민지근대화론과 같은 맥락이다. 일제 때부터 산업화가 돼서 우리가 민주화가 됐다는 식의 논리인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화가 먼저냐 산업화가 먼저냐를 꼭 따져야 한다면, 민주화를 통해서 산업화가 이뤄졌고, 산업화가 이뤄져서 민주화가 가속화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뉴라이트 쪽에서는 '산업화 → 민주화 → 선진화' 논리를 펴는데, 나는 반대한다."

- '독립정신'을 현재에 적용한다면.
"요즘 아이들이 스펙 쌓고 취직 걱정하면서 데모다운 데모도 한 번 못하고 있는데, 이런 상태라면 죽어있는 것과 같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너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 선배 세대들이 감옥에 가고 죽고 하는 걸 통해서 일궈놨기 때문에 이 정도의 인권과 민주화를 누리고 있는데, 지금의 젊은이들도 무임승차 하지 않고 적어도 다음 세대를 위한 기반을 닦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반민주, 반통일, 반평화의 흐름으로 가는데도 왜 이렇게 죽어 있는가. 무임승차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 그래도 답사단 학생들은 스펙 쌓기보단 역사 답사를 선택했다.
"이런 학생들을 통해서 희망을 보는 것이다. 올해가 7기인데, 신흥무관학교는 약 10년 동안 3500여 명의 졸업생을 냈고, 이들이 독립운동의 근간이 됐듯이 이 아이들도 그렇게 키워나가고, 서로 연대할 수 있으면 우리 사회에 상당한 공헌을 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다. 사회 변혁의 큰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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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기념사업회 7기 독립정신답사단과 동행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역사 해설을 하고 있다. ⓒ 안홍기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육군사관학교 모태는 신흥무관학교"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주필, 독립기념관장,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을 지낸 김삼웅 신흥무관학교100주년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된 수십 권의 책을 쓰며 거침없는 필력으로 유명하다. 특히 리영희·한용운·신채호·안중근·이회영·장준하·전봉준·김구·김원봉·한용운·조봉암·김창숙 등 근현대사 주요 인물들에 대한 평전 집필을 활발히 하고 있다.

김 전 관장은 이번 답사 내내 역사와 현재를 잇는 역사해설로 답사단원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김 전 관장은 20일 밤 답사단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육군사관학교의 역사의식 부재를 질타했다.

김 전 관장은 "신흥무관학교 이전의 모든 항일무장투쟁은 신흥무관학교로 모여들고 신흥무관학교 이후의 모든 항일무장투쟁은 신흥무관학교가 배출한 무관과 학도들에 의해 전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항일무장투쟁의 모태가 바로 신흥무관학교"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육군사관학교가 역사의식이 있다면 1911년 6월 10일 신흥무관학교 개교일을 사관학교 창건일로 삼아야지, 지금처럼 1946년 5월 1일 미 군정이 만든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개교일을 육군사관학교의 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했다.

김 전 관장은 누누이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답사단은 백두산에 오르기 전 현지 가이드로부터 '백두산의 날씨는 워낙 변화가 심해 천지를 볼 수 있을지는 올라가 봐야 안다'는 얘길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지만 다행히도 날씨가 개어 천지를 볼 수 있었다.

천지를 본 기쁨에 답사단원들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천지를 본다는데, 당대에 쌓은 덕도 없이 천지를 봤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를 본 김 전 관장은 "당대에 쌓은 덕도 없이 천지를 볼 수 있었던 건 앞으로 정의롭게 살라고 하느님께서 미리 예약을 해두신 것"이라고 덕담했다.

22일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 앞에서 청산리대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준식 연세대 교수. ⓒ 안홍기


지청천 외손자 이준식 연세대 교수 "무명의 독립용사를 기억하자"

이번 답사 부단장을 맡은 이준식 연세대 교수는 답사에 동행한 것 자체로도 답사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 교수의 외조부가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독립군을 양성했고 한국독립군과 광복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이기 때문이다.

각 답사지에 대한 역사해설을 도맡은 이 교수는 최대한 상세한 설명과, 같은 사안에 대한 학계별 다른 해석을 균형있게 제시해 역사 이해에 큰 도움을 줬다.

대표적인 경우가 청산리대첩의 주역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와 옌볜 역사학계의 견해차였다.

한국 역사학계는 북로군정서 지휘관으로 참전한 철기 이범석의 자서전 '우등불'의 기록에 바탕해 청산리대첩의 주역으로 김좌진 장군과 그가 이끄는 북로군정서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옌볜 역사학계에서는 홍범도 장군과 그가 이끄는 대한독립군의 역할을 크게 평가하며, 한국인 뿐 아니라 일본에 반대하는 이 지역 여러 민족들의 연합과 긴밀한 연락을 통해 대첩이 가능했다고 본다.

이 같은 견해차는 지난 2001년 옌볜 허룽시에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를 세울 때 갈등요인으로도 작용했다. 한국측에서는 비문에 김좌진 장군만 기록할 것을 주장했고, 옌벤측에서는 김좌진 장군과 홍범도 장군을 같이 쓸 것을 주장해 갈등이 빚어졌던 것. 결국 비문에는 두 장군을 모두 기록하게 됐다.

이 교수는 "청산리전투에서 독립군 130명의 희생자가 있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며 "무명의 독립용사를 기억하자"고 강조했다.
#독립정신답사단 #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만열 #김삼웅 #이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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