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시골 외갓집이 있어 우린 행복해

'농어촌 체험' 따로 없는 시골 외갓집

등록 2011.08.12 17:54수정 2011.08.1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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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 경운기 탑승 전 경운기를 처음 보는 두 아이가 천천히 경운기를 둘러보고 있다. ⓒ 이미진


언제나 시골 외갓집을 가는 길은 기쁘고 설렌다. 우리를 손꼽아 기다리시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다. 또 '컹컹' 낯선 손님이라며 귀엽게 몸 사리는 똥강아지(이건 나의 애칭이기도 하다)와 부리부리한 눈과 멋진 뿔을 자랑하는 황소가 혀를 쑥 내밀며 우리를 반겨주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 방학을 맞은 우리 가족은 경북 청도에 있는 시골 외갓집으로 향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외갓집은 마치 흰 구름 하나가 살며시 숲 속에 내려앉은 형세다. 이번엔 또 어떤 멋진 여름 놀이를 두 분이 계획하고 계실지, 가는 길은 온통 설렘의 연속이다.

일 년에 딱 한 번, 우리만을 위한 이것

서울, 경기를 떠나 장작 6시간을 달려 도착한 시골 외갓집. 일 년에 두 번은 뵐까? 잊어버릴 만하면 한 뼘 더 자란 모습으로 찾아뵙기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놀라게 하는 재주만큼 두 분 또한 더욱 깊어진 주름을 앞세우고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예상은 늘 하고 계시면서도 그 모습에 또 속상하셨는지, 엄마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두 분의 손을 꼭 움켜잡으셨다. 마른 침을 어렵사리 삼키는 소리도 들린다.

서둘러 집 안으로 안내하신 외할머니께서는 우리가 혹여 땀띠라도 날까 일 년에 딱 한 번 켜신다는 에어컨을 틀어주셨다. 2박3일 동안 저 에어컨은 쉬지 않고 우리를 시원하게 해 줄 것임이 분명했다. 시원한 바람에 우리 역시 한껏 부풀어 오른 기분으로 그동안 엄마에게도 꼭꼭 숨겨뒀던 장기를 맘껏 선보였다. 두 손자의 재롱에 두 분의 주름은 어느덧 차츰 잊히는 듯했다. 부모님의 얼굴 또한 그동안 못다 한 효를 이렇게나마 채워 드렸다는 사실에 만족해하는 표정이셨다. 이렇게 첫날밤은 이어져 늦은 밤까지 불은 꺼지지 않고 오순도순 정다운 이야기가 오고 갔다.

자동차보다 더욱 신난, '털털' 삼륜 경운기


이튿날, 그 많던 아침잠은 어디로 도망갔는지 방망이질하듯 두근대는 심장 소리가 우리를 일으켜 세웠다. 그건 아마도 시골 외갓집에 즐비한 놀잇거리를 하루 만에 소화해내기 위한 것임이 분명했다.

먼저 발견한 것은 어제 우리를 보고 그토록 짖어대던 강아지 한 마리. 쪼그마한 이 녀석은 작년에도 봤건만, 여전히 우리가 낯선지 짖어댄다. 하지만 꼬리는 분명히 흔들어대고 있는 것이 내심, 이 녀석도 우리가 좋은 것이 분명했다. 강아지를 생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곳도 외갓집뿐이기에 우리는 열심히 강아지와 대화를 나눴다. 애완용 강아지와 다르게 털이 다소 뻣뻣했지만 그래도 감촉은 좋았다.


이어 우리가 발견한 것은 시골집 대문에 세워진 경운기였다. 자동차와 달라도 한참 다른 자태에 우리는 넋을 잃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런 우리 곁으로 외할머니가 다가와 고추를 따러 가야 하니 함께 경운기를 타고 가자고 하셨다. 그 말씀에 우리는 환호성을 지었다. 사실 우린 경운기를 본 적도 처음이지만, 타보기도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앞에 세워진 경운기의 특이한 시동 소리에 더욱 안달이 났다. 그리고 엄마의 도움을 받아 서둘러 경운기 뒤칸에 올라섰다. 털털거리는 시동 소리에 우리 몸도 덩달아 덜덜거리니 더욱 신기하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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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똥 싣고? 손자 싣고 달리는 경운기 소똥 대신 이번엔 손자를 싣고 달리는 외할머니는 어떤 심경이실까? ⓒ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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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 경운기 탑승 후 외할머니의 배태랑 운전 솜씨를 처음 맛본 엄마도 우리도 모두 놀랐다. ⓒ 이미진


드디어 출발이다! 외할머니께서는 다소 무게가 있어 보이는 경운기를 멋지게 운전해 내셨다. 그 모습이 너무 멋져 엄마에게 "경운기를 운전할 줄 아느냐?"라고 여쭤보니 운전하실 줄 모른다고 하셨다. 그런데 외할머니께서는 엄마와 아빠처럼 자동차 면허증도 없으시다는데, 어쩜 그리 운전을 잘하시는지 너무 놀라웠다. 외할머니의 운전 솜씨는 한 마디로 "굿~!"이였다.

삼륜 경운기 위에서 우리는 '날 봐주는', '내가 자랑할 만한' 친구가 있다면 너무나 자랑하고 싶어서 소리를 꽥꽥 질렀다. 저 멀리, 우리들의 목청에 놀란 황새들이 놀라 달아나는 모습도 보였다. 나무와 시냇물은 거꾸로 달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향했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자동차가 보이지 않는 2차선 도로 위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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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달리지 않는 2차선 도로 2차선 시골길, 차는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오로지 경운기 한 대. ⓒ 이미진


도착한 곳은 빨간색이 유난이 빛나는 고추밭. 엄마는 우리가 고추를 상하게 한다며 밭에 들어서지 못하게 하셨지만, 우리는 빨간 고추를 무척 만지고 싶었다. 하지만 할머니마저 "밭에 모기가 날아다니니 저 멀리서 놀도록 하라"라는 말씀을 하셔서 참기로 했다. 사실, 모기는 한 번 물리면 무척 가렵고 아프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 집 앞 도로와 달리 자동차가 달리지 않는 2차선 도로 위를 맘껏 뛰어다녔다. 길섶에 핀 꽃들을 따라 천천히 걷기도 했다.   

얼마를 뛰고 또 뛰었을까? 어느덧 나와 동생의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고, 엄마는 해도 저물었으니 인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고 하셨다. 외할머니께서는 잠시 손길을 멈추시고 우리를 다시 마을 어귀까지 경운기로 데려다 주셨다. "우리 손자들, 경운기 실컷 태워다줘야지!"라는 말씀을 남기시면서.

신 나는 물놀이와 무농약 수박 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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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고무통 물놀이 봉숭아 꽃잎 목욕을 즐기는 두 아이. 더위야, 가라! ⓒ 이미진


다시 외갓집에 돌아온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바로 빨간 고무통이었다. 엄마는 땀에 흠뻑 젖은 옷을 벗기더니 고무통에 들어가라고 하셨다. 바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나는 물놀이 시간이었던 것이다. 동생과 나는 낮 동안 데워져 미적지근해진 물속에 들어가 한바탕 신나게 물장난을 즐겼다. 이번 여름에 처음으로 즐겨보는 물놀이여서인지, 마냥 그 속에 머물고만 싶었다.

이윽고 어스름해진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신 외할머니. 당신의 손에는 사랑하는 손자들의 얼굴 크기만 한 동그란 수박이 들려 있었다. 엄마가 마트에서 사준 수박과는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달랐다. 더 작고, 모양은 볼품없었다. 수박을 자르고 계신 외할머니 곁에 바짝 다가가 앉으니 더 작았다. 외할머니께서는 직접 밭에서 농약을 치지 않고 기른 수박이라 하셨다. 그래서일까, 그 맛은 더욱 시원하고 달콤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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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농약 수박 농약을 치지 않고 키운 외할머니표 수박은 8개월된 아기 머리만큼 그 크기가 작다. ⓒ 이미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우린 행복해!

오늘이 지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는 내게 갑자기 왜 우느냐고 물어보셨지만, 내 마음을 엄마가 알 리 없었다. 이제 막 3살이 된 동생은 더더욱 모를 것이다. 계속 이곳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을……. 이곳은 몸도 마음도 너무나 평온해지는 곳이다. 하지만 다시 집에 돌아가면, 엄마는 나를 유치원에 보낼 것이다.

유치원엔 외갓집처럼 강아지도 없고, 소도 없고, 경운기도 없다. 맘껏 소리 지르며 뛰어놀 수도 없고, 초록빛으로 시원하게 트인 곳도 드물다. 오로지 회색빛 건물 사이로 친구와 선생님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엄마 아빠의 말씀을 따르면, 중년들의 여름 방학은 이런 시골집에서 물고기도 잡고, 수박도 먹고, 모깃불을 피워가며 정다운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자연과 동떨어진, 여름방학에도 과외와 학원을 전전하며 여름 방학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런 형과 누나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은 마음에 위로가 된다. 지금의 난 너무 행복한 아이니까!

외갓집이 시골에 있어 실컷 농촌구경을 할 수 있고, 또 몸과 마음에 여유까지 불어넣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게다가 요즘 유행한다는 농촌 체험 여행을 따로 신청할 필요도 없다. 여름 방학만 되면 다시 시골 외갓집으로 가면 되기 때문이다.

시골 외갓집을 가면 농촌 체험이 고스란히 내게로 스며든다. 그 체험은 다름 아닌 바로 자연과 숲이 어우러진 이야기이다.

덧붙이는 글 | 5살, 3살된 아이의 엄마로서, 5살 아이의 시선으로 이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5살, 3살된 아이의 엄마로서, 5살 아이의 시선으로 이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시골 외갓집 #농촌 체험 #경운기 #무농약 수박 #고무통 물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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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2년, 출판인 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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