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동 266번지는 '공터'...주민들은 '범법자'

화마가 휩쓴지 두달, 12일 김제동 방문 공부방 제외하고 강제철거

등록 2011.08.15 10:46수정 2011.08.3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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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에 휩싸인 포이동 266번지 ⓒ 양태훈


#1 포이동 266번지, 그 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공터'


수많은 고층빌딩이 들어서있는 서울 강남구. 수해로 많은 피해를 입은 우면동. 그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그 곳엔 힘겹게 삶과의 투쟁을 이어가는 '포이동 사람들'이 있었다. 화마가 몰아친지 두달여, 포이동 266번지는 '목불인견',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상황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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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동의 주민들은 31년전 강제이주된 뒤 제대로 된 보상 없이 힙겹게 살아가고 있다 ⓒ 양태훈


포이동 266번지는 30년 전, 거주가 확실치 않은 도시 빈민들을 국가가 이주시켜 만들었다. 1984년에는 200-1번지라는 번지수를, 1988년에는 266번지를 배정받았다. 이런 흐름에서 강남구청은 이 지역을 행정구역 상 사람이 살지 않는 '공터'로 분류했다. 강남구청은 "구획정리사업에 따라 지번이 없어져 환지대상에서 제외됐으며, '불법 무허가 집단 지역'은 주민등록 법률상 실효성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이재철 포이동철대위 위원장은 "이 곳은 주변미화를 해친다는 강남구 주민들의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 곳"이라고 말했다. 또 강남구청은 화마에 휩싸인 뒤로 포이동을 철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포이동에는 두차례 용역이 투입됐으며, 지난 12일에는 공부방을 제외한 여러 건물들이 철거됐다. 탤런트 김제동씨가 찾아온다고 했었던 공부방은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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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동 주민들은 언제 철거용역이 올지 몰라 CCTV까지 설치해놓고 있었다. ⓒ 양태훈


#2 화마(火魔), "제대로 대처했으면 이렇게 많은 집들 불타지 않았다"

현재 포이동은 전체 96가구 중 75가구가 지난 6월 12일 전소되어 집을 잃어, 대책위 사무실에서 단체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포이동에 거주하는 김용순(63)씨는 "소방관들이 대처를 제대로 했다면 이렇게 많은 집들이 불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힘겹게 말했다. 또, "화재 신고를 한지 30분만에 소방차가 도착했으나,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소방차에 물이 없다고 말을 했다"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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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순(63)씨의 집은 다행히도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 ⓒ 양태훈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재철 위원장은 "소방관이 화재진화를 하려면 경찰과 같이 와 진화를 해야하는데 경찰과 소방관들이 모두 미적거리거나 엉뚱한 곳을 진화해 화재피해가 커졌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한 포이동 주민은 "여기 사는 아이들은 경찰, 소방관 다 싫어한다"고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3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강남구청의 철거와 이주 권유에도 불구하고 포이동 주민들은 자신의 손으로 주거복구운동을 하며 삶의 터전을 다시 일구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는 노란색의 리본이 매달려있었다. 이 리본에도 강남구청과 주민들의 다툼이 자리하고 있다. 이재철 위원장은 "강남구청 직원이 포이동에 와서 '이 리본에 강남구청을 욕하는 말이 써있으므로 지원을 해줄 수 없다'며 리본을 떼라고도 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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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리본 역시 다툼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 양태훈


전소된 75가구의 주민들은 대책위 건물에서 노인들에게 2개의 방, 아이들에게 1개의 방을 주며 생활하고 있었다. 마침 기자가 있을 때 아이들이 돌아와서 아이들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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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이곳은 삶의 현장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존경하는 경찰과 소방관들 믿지 못하게 되었다 ⓒ 양태훈


한 할머니는 기자에게 "학생도 MT를 가봐서 알겠지만, 단체로 잠을 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 것"이라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이 고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잘못된 일인 것 같다"고 포이동에 대한 지원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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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기거하고 있는 대책위의 컨테이너 ⓒ 양태훈


현재 포이동의 상황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포이동대책위는 매봉역 근처에서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그냥 지나쳐가기 바쁘고, 그들은 쳐다보는 인파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너무나도 바쁘고, 높은 건물들에 있는 사람들에게 포이동의 '삶의 목소리'는 버거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포이동 주민들의 바람은 큰 것이 아니다. '단지 시민들이 이 사실을 알아주기' 만을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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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동대책위의 집회현장. 시민들에게 외치는 외침에는 간절함이 서려있었다 ⓒ 양태훈


포이동 266번지의 시작은 정부의 강제적인 이주로 시작됐으나, 그에 대한 보상 등은 온데간데 없고 화마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철거하려는 움직임만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을 힘겹게 일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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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전 강제이주에 이어, 주민들은 갈 곳없는 범법자가 되고 있다. ⓒ 양태훈


포이동에서 돌아오는 길, 현수막의 한 글귀가 마음을 저리게 한다.

"1981년 강제이주 시켜놓고 범법자가 웬말이냐!". 그들은 행정절차에 의해 범법자, 포이동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공터'가 되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프리덤'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마이프리덤' 기사입니다.
#포이동 #포이동 266번지 #266번지 #강남구 #철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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