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서평] 셀리 모건이 쓰고 최강열 교수가 편역한 <줄기세포 발견에서 재생의학까지>

등록 2011.08.16 12:59수정 2011.08.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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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줄기세포 입문서 <줄기세포 발견에서 재생의학까지> ⓒ 다섯수레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다. 서울 신림동 양지병원이었을 거다. 삼촌은 혜화동 근처 서울대학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기억하진 못해도, 내가 기억해야 할 죽음은 그 이외에도 숱하게 많을 거다. 그들은 대개 자신들의 지병을 어찌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그것이 암이든, 뇌경색이든 죽을병은 죽을병이었다. 산 사람은 산 사람이고, 사자는 사자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너무나 뚜렷했다. 그 경계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해볼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믿었다.

"어린 아이의 간을 먹으면 병이 깨끗하게 낫는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이런 말들이 떠돌아다녔던 거다. 전설의 고향 같은 괴담을 양산시킨 주범은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줄기세포는 한마디로 어린아이와 같다. 어린아이들이 성인으로 자라 다양한 직업을 가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듯이, 줄기세포도 나중에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세포 및 조직으로 변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잠재력이라고 했다. 어린 아이의 잠재력? 그걸 병 든 사람의 몸 안에 심는다. 그러면 조금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모르던 이야기는 아니지만, '줄기세포'가 무엇인지 잘 알지는 못했다. 그냥 황우석 사건 때 잠깐, 무슨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 잠깐 보았을 뿐이다. 그 얕은 지식으로 안다고 떠들어댈 순 없었기에 이 책 <줄기세포 발견에서 재생의학까지>를 집어 들었다. 청소년용 과학도서라고 하기에.

독자에 대한 예의가 있는 책이다. 섣불리 줄기세포 연구에 무조건 장밋빛 미래가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현미경의 탄생과 세포의 발견을 이야기하면서 차근차근 줄기세포의 세계에 진입한다. 뒤로 갈수록 성체줄기세포와 배아줄기세포, 수정란 이식을 통한 복제 동물 이야기, 줄기세포 연구의 쟁점과 미래의 전망 등 쉽지 않은 난이도(나와 같은 초보자들에게는)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은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뭔가 역시 어렵다는 감은 있었지만, 그건 내용 자체에 원인이 있는 것이지 책에서 오는 감은 아니었던 것 같다.

1595년 네덜란드 사람 자하리아스 얀선이 최초의 현미경을 만든 이래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최초로 적혈구세포를 발견하고, 급기야 1981년에 케임브리지대학의 마틴 에번스와 매슈 코프먼이 생쥐에서 배아줄기세포를 발견한다. 게일 마틴은 '줄기세포'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보는 내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어투가 다소 과장되거나 사견이 많이 들어갔다면 오히려 반감이 심했을 것이다. 책을 보다가 "아, 난 이런 책 싫어!"하면 덮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면이 적어서 한결 수월했다.

줄기세포는 암세포처럼 계속해서 분열한다. 과학자들은 줄기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통제하려 하지만, 줄기세포가 환자의 몸속에서 통제되지 않는 형태로 성장하여 암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염려가 많다. (100쪽)

모든 과학자들이 줄기세포가 질병과 노화를 기적적으로 치료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런던 임페리얼대학 불임연구소의 로버트 윈스턴 교수는 줄기세포에 의한 질병 치료가 과장되었다고 믿는다. (118쪽)

책은 한 방향으로만 나가지 않고 모든 면을 두루 살피며 '줄기세포'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준다. 진정한 애정에는 언제나 비판과 격려가 함께하는 법이니까. 줄기세포로 대머리를 치료할 수 있을까. 백혈병, 당뇨병, 뇌경색, 파킨슨병, 진폐증, 심근경색, 퇴행성관절염은?

내 주변 사람 중 몇몇은 저 질병들 중 한두 가지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여우나 거북이의 간, 어린 아이의 간을 먹는다고 딱히 나아지지 않았을 거다. 하긴, 요즘에는 태아의 태반까지 몰래 먹는다고 하질 않던가. 그게 다 살고 싶어서 그런 거지.

그런 점에서 '줄기 세포'의 과거와 현재를 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이 책에 신뢰감이 생겼다. 당장 언제 완성된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그들은 지금 오랫동안 신화나 괴담으로만 존재하던 '인간의 꿈'에 도전하고 있다. 물론 거기엔 위험요소와 긍정적인 면이 동시에 있다.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은 아마도 그 위험요소의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답을 제시하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차근차근 친절하게 설명하고 섣부른 판단은 유보한다. 물론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희망이다. 신중한 희망을 제시하는 책이기에 청소년이나 나처럼 과학에 소홀했던 이들에게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nn2u.blog.me)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 블로그(nn2u.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줄기세포 발견에서 재생의학까지

샐리 모건 지음, 최강열 옮김,
다섯수레, 2011


#줄기세포 #재생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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