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왜 페루에 가서 죽을까

[연금술사를 찾아나선 중남미 여행 5] 로맹 가리와 헤밍웨이가 사랑한 페루와 쿠바

등록 2011.08.22 10:09수정 2011.08.2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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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왜 페루에 가서 죽을까. 중남미로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나는 골치가 아팠다. 다 로맹 가리 때문이다. 남들 다 쓰는 여행기 하나 쓰면서, 초장부터 남 탓 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이해 나 홀로 잠 못 이루나"는 식의 흘러간 유행가 '그건 너' 탓하자는 것도 아니다.

정말로 로맹 가리 때문이다. 로맹 가리라는 사람이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단편소설을 썼다. 얼마나 멋진 제목인가. 소설의 제목만으로도, 이미 점수를 반은 따고 들어간다. 나도 오래전 이 죽이는 제목에 이끌려 소설을 읽었다.


한창 넘치는 열정을 어디에 발산할지 몰라 애꿎은 길거리 돌멩이를 발로 툭툭 치며 하숙집으로 돌아오던 젊은 시절의 어느 날, 약간은 음침한 골목길 담에 붙어 있던 <뼈와 살이 타는 밤>이라는 영화 포스터를 보는 순간 나도 몰래 서울 신림동의 3류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내가 한심하기도 한데, 그때는 3류 극장이라도 가지 않으면 당장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숨이 가빴다.

그때는 정말 왜 여자 이름의 남자 하숙생인 정자가, 이름도 특이해서 놀림을 당하던 하숙집 딸내미인 난자를 그렇게 좋아 했나 모른다. 아마 둘 다 독특한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한 동병상련의 감정도 한몫한 듯하다. 여고생인 난자는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항상 정자 오빠가 영화관에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할 수 없었다고 핑계를 댔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실제로 몰랐는지, 아니면 알았으면서도 사윗감으로 정자 학생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지, "그래 정자 학생하고 영화 봤어…"라고 말끝을 흐리면서, 화났던 얼굴이 갑자기 수그러들었다. 이렇듯 그때는 모두 다 '정자 탓이야'라고 하면 대강 넘어갔다. 그 '정자 탓하던 시절' 이래, 두 번째로 내가 제목에 유혹당했던 것이 바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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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와카치나 사막의 모습 ⓒ 김수연


문제는 로맹 가리의 소설 어디를 읽어도, 새들이 페루에 가서 죽는 이유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페루에는 새들을 잡아먹는 독수리가 없다거나, 아니면 페루 사람들은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 사람처럼 새들이 죽으면 묘지를 만들어 준다거나, 뭐 나 같은 평범한 수준의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물고기는 4대강에 가서 죽다...그럼 새들은?


하여튼 비유니 상징이니 하면서 변죽을 울리는 이야기는 소설 속에 많았지만, 새들이 페루에서 죽는 이유에 대한 '친절한 금자씨'의 설명은 없었다. "이유가 있을 거요"라고만 되풀이할 뿐, 정작 그 이유에 대한 '이유'는 말하지 않는다. 여행 가기 전 여러 경로로 새가 페루에 가서 죽는 이유를 알아보려 했으나, 모두들 하는 얘기가 '물고기는 4대강에 가서 죽다'는 알 수 있겠는데, "새들하고는 이야기해본 적이 없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래서 나는 새들이 왜 페루에 가서 죽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세상의 끝까지 내려가 보기로 했다. 남미 최남단에서부터 올라오다보면, 페루 어디쯤에서 깨달음이라는 놈이 갑자기 "짠~"하고 내 앞에 나타날지 모를 테니까. 나의 중남미 여행이 브라질을 거쳐 아르헨티나 최남단 우슈아이아에서부터 시작된 이유다.

세상의 끝, 우슈아이아에서 나는 걸핏하면 정자 탓하던 난자가 생각나기도 했다. 난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다른 남자를 만났으나 곧 헤어졌다는 옛날 얘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다양한 시간들이 공존하는 파타고니아 초원의 길에서 보르헤스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들을 보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삭막한 칠레 아타카마 사막을 지나고, 볼리비아와 페루에 겹쳐 있는 아름다운 티티카카 호수를 구경하고, 잃어버린 공중 도시 마추픽추 정상에도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해발 4000m에 위치한 수도인 볼리비아 라파스는, 로맹 가리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에서 "숨을 멈추지 않고서는 그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는 터"라고 말한 대로, 분지 안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시내 중심지를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갑자기 멈출 듯 아찔했다.  

고산병이 도질 듯한 라파스에서 해발 0m의 페루 리마 해변까지 오는 길은 시간도 시간이지만, 국경을 넘는데 여러 차례의 버스를 갈아타야 해서 무척 힘들고 피곤한 길이었다. 이번 중남미 여행 중에서 국경을 넘는 데, 그렇게 교통이 불편한 곳은 없었다.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페루 푸노까지 가는 데, 무려 대여섯 차례나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볼리비아는 가난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교통 인프라도 거의 갖춰지지 않았다.

그나마 라마가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듯 산 정상을 따라 힘겹게 올라가는 라파스의 달동네가 주는 삶의 진한 냄새와 이국적 향취, 그리고 아름다운 티티카카 호수 주변의 코파카바나와 푸노 마을의 멋진 풍경이 없었다면,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피곤 뒤에 오는 풍경은 순식간에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남미의 풍경에 푹 빠지다보니, 내가 탄 버스가 벌써 페루 리마 해변가 근처에 다다르고 있다는 사실을 깜박했다. 큰일 날 뻔했다. 새들이 페루 바닷가에서 죽어가는 이유를 살펴야 하는데.

티티카카 호수와 쿠스코를 지나 안데스 산맥을 넘은 뒤, 나스카와 이카를 따라 리마로 올라가는 페루 해안가는 한마디로 삭막했다. 판아메리카 도로를 따라 달리는 페루 해안가의 길은, 마치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이나 몽골 고비 사막을 떠올릴 정도로 풀 한포기 찾아보기 힘든 황량한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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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와 볼리비아에 걸쳐 있는 티티카카 호수 ⓒ 엘리아나 세로니


잉카의 눈물

우리가 언뜻 떠올리는 푸른 바다와 우거진 나무가 어우러진 멋진 드라이브 코스가 아니었다. 그나마 한두 그루 자라던 작은 관목마저도 말라비틀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페루 해안가의 사막화는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페루 해안은 중남미 다른 바닷가와 달리 이렇게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으로 변할 것일까.

과학과 논리로 설명하자면, 태평양 연안에 흐르는 훔볼트 해류라는 페루 한류가 흐르면서 비를 만드는 구름이 만들어지지 않아 사막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나는 왜 페루 해안의 사막화를 보면서 인디오의 눈물이 생각났을까. 스페인 침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1533년 잉카제국을 짓밟으며 원주민 인디오를 무자비하게 학살하자, 해안가에서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인디오들은 눈물을 흘리며 안데스 산악지대로 숨어들어갔다.

인디오들의 눈물이 마르면서, 페루 해안가에는 더 이상 내릴 비가 사라지면서 빠른 속도로 사막화가 이루어졌다. 페루 해안가의 사막화는 바로 인디오의 마른 눈물이었다. 사막화가 진행되는 페루 해안가 지역은 우연찮게도 융성했던 잉카제국의 영토와 같았다. 일 년 내내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리마에는, 가끔 새벽녘에 낮게 깔린 안개만이 땅을 촉촉이 적셔줘 생명의 숨결을 이어가게 한다. 페루사람들은 이 안개를 '잉카의 눈물'이라고 부른다.

사막의 삭막함을 달래주는 것은 해넘이의 아름다움이다. 저녁 무렵 페루 해안가 도로의 오른쪽으로는 모래사막이 버티고 있었지만, 왼쪽의 해안가로는 붉은 해가 바다 속으로 떨어지면서 황홀한 장면을 빚어내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아시스 마을인 와카치나에서 하루를 묵은 뒤, 다음 날 버스를 타고 리마에 다다랐을 때는 오후 2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리마는 다음 달 4월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로 혼란스런 모습이었다. 자동차 도로를 따라 각 후보들의 홍보간판이 줄 지어 서 있었다. 단연 관심은 일본계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인 케이코 후보였다.

페루 현지 신문에 나온 여론조사를 보니, 케이코 의원, 톨레도 전 대통령, 카스타녜다 전 리마 시장 등이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귀국 후 외신보도를 보니, 엉뚱한 좌파후보 우말라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동네도 여론조사가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선거 얘기는 그만하고, 새들의 얘기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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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아시스 마을인 페루 와카치나 사막 ⓒ 김수연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서 말한, 새들이 날아와 죽는다는 리마 북쪽 10km 해안가 모래사장에 도착했다. 로맹 가리는 "새들은 더 남쪽도 더 북쪽도 아닌, 길이 삼 킬로미터의 바로 이곳 좁은 모래사장 위에 떨어졌다"고 정확한 지점을 적시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페루 리마 북쪽 10km 해안가에는 가마우지 몇 마리만이 하늘 높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로맹 가리는 "새들에게는 이곳이 믿는 이들이 영혼을 반환하러 간다는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을 반환하러 인도의 바라나시로 간다면, 새들은 페루 리마 바닷가로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어느 날 로맹 가리는 이곳 리마 바닷가로 머리를 식히려 왔다가 죽어가는 새들을 보면서, 문득 인생의 의미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외교관으로 볼리비아에서 영사로도 근무했던 로맹 가리는, "사람을 숨 쉬게 해주기보다는 짓눌러버리는 고독이" 몰려올 때면 근처 페루의 바닷가로 달려가 새들을 보았을 것이다. 새들의 죽음을 통해 인생의 절망과 희망, 죽음과 삶의 의미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새들처럼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했던 여자는 자신을 구해준 남자가 있던 모래언덕을 되돌아봤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로 소설은 끝난다. 그 남자는 바로 로맹 가리였다. 로맹 가리는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며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렇게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새들은 이곳에 와서 죽는다"는 소설 속 이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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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리마 근처의 바다 ⓒ 김수연


새들이 죽는 언덕에는 한 남자가...

페루 리마 북쪽 10km 바닷가에는 분명히 새들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러나 로맹 가리의 소설처럼 먼 바다에서 죽기위해 이곳으로 날아왔는지, 아니면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의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처럼 멀리 날기 위해 비상하는 날갯짓인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새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인데, 아무리 새라고 해도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문제다.

정말 새들은 왜 그 먼 바다의 섬을 떠나 페루에 와서 죽는 걸까. 로맹 가리의 소설은 새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이니, 나는 페루 바닷가에서 날고 있는 새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여자를 구해준 남자가 살던 모래언덕에는 오늘도, 로맹 가리처럼 왠지 고독하면서도 허무감을 물씬 풍기는 어떤 남자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 남자의 옆 얼굴을 보니, 로맹가리보다는 아르튀르 랭보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고 보니, 둘은 모두 프랑스 작가네. 세상의 고독과 친구인 듯한 그 얼굴의 우울함도 닮았고, 인생의 허무함과 기만에 대해 통렬하게 까발리는 랭보의 시와 로맹 가리의 소설은 쌍둥이다.

나는 남자가 어슬렁거리는 모래언덕을 뒤돌아보지 않았다. 갑자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소설의 끝 문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뒤돌아 봤을 때, 혹시 그가…. 나는 적도의 나라 에콰도르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바로 잠이 들었다.

중남미를 여행하다보면, 소설의 무대가 된 많은 장소들을 만나게 된다. 파타고니아도 그렇고, 페루 해변도 그렇고,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과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녹색의 집>의 무대가 된 아마존 밀림지역도 그렇다. 가르시마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무대가 된 콜롬비아 카르타헤나도 마찬가지다.

짧은 기간의 여행이라면, 굳이 많은 책을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장기간의 배낭여행을 꿈꾸는 여행자라면 미리미리 소설이나 문학작품들을 읽어두는 것은 여행의 재미를 더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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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노인과 바다>의 무대가 된 쿠바 아바나 근처 코히마르 바닷가 ⓒ 김성호


<노인과 바다>, 그리고 헤밍웨이와 쿠바...

쿠바 아바나 근처 바닷가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무대다. 나는 에콰도를 거쳐 버스로 남미 북단 베네수엘라까지 올라갔다, 비행기를 타고 자메이카를 거쳐 쿠바 아바나에 도착했다. 쿠바에 가면 내가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노인과 바다>의 무대가 된 아바나 근처 바닷가 마을 코히마르였다.

누구나 그렇듯, 책에 자신만의 사연이 더해지면 더 애틋한 법이다. 나에게는 <노인과 바다>가 그런 경우다. 나는 오래전 미국 보스턴에서 하나의 미국 꽃을 만났다. 그 꽃이 나에게 선물한 책이 바로 <노인과 바다>다. "당신이 쓰는 것이 무엇이든 그 안에, 항상 당신만의 단 하나의 진실한 문장을 찾기를 바란다"며. 코히마르로 가는 길은 헤밍웨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자, 나의 추억을 찾으러 가는 길이기도 했다.

아바나에서 헤밍웨이의 흔적은 코히마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바나는 체 게바라와 헤밍웨이가 먹여 살린다고 할 정도로, 헤밍웨이의 흔적이 있는 장소는 모두 관광지가 되어 여행자들로 북적거렸다. 그가 살았던 아바나 남쪽의 집은 헤밍웨이 박물관이 되었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했던 아바나 도심의 암보스 문도스 호텔과 1층의 바 '엘 플로리디타', 단골술집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는 모두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그러나 헤밍웨이를 바라보는 쿠바인들의 시선은 복잡한가 보다. 쿠바작가 에드문도 데스노에스가 쓴 소설 <저개발의 기억>에는 "헤밍웨이에 대한 사랑과 증오를 느낀다"며 "헤밍웨이한테 쿠바는 은둔해서 아내와 조용히 살아가고, 친구들을 맞고, 영어로 글을 쓰고, 멕시코 만류에서 낚시를 하기 위한 장소였다"고 분개했다. 헤밍웨이에 대한 쿠바 사람들의 평가가 어떻든, 달러 한 푼이 아쉬운 쿠바에게 헤밍웨이는 현재 최고의 관광상품임에 틀림없다.

어떤 이유로 머물렀던 헤밍웨이가 쿠바를 사랑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20여년을 쿠바에서 살 수 있었겠는가. 헤밍웨이는 아바나를 떠난 지 4개월 뒤 병원으로 실려가고 결국 생을 마감한다. 피델 카스트로도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읽으며 게릴라 전술에 대해 많이 배웠다며 헤밍웨이를 존경했다. 헤밍웨이 관광지에는 어디나, 하얀 턱수염의 헤밍웨이와 검은 턱수염의 카스트로가 악수를 하며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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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히마르 마을의 헤밍웨이 단골식당에 걸려 있는 <노인과 바다> 실제 모델 푸엔테스 사진 ⓒ 김성호


소설가들은 왜 자살을 많이 할까

나는 아바나 시내에서 우연히 만나 같은 민박집에 머물게 된 노아라는 젊은 한국인 여자 여행자와 함께 코히마르를 찾아갔다. 코히마르는 여행자들로 붐비는 아바나 시내와는 달리, 한적한 어촌마을이었다. 바닷가 작은 성곽 옆의 헤밍웨이 동상만이 이곳이 그가 즐겨 찾던 낚시터이자 <노인과 바다>의 무대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특별한 안내 표시판이나 이정표, 관광상품점 하나 없었다.

한때는 청새치와 상어잡이로 북적거렸던 옛 항구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기잡이 배나 늙은 어부들은 세월과 함께 혁명과 함께 마을의 뒷골목 어스름으로 남아 있을 뿐. 마을 앞 푸른 바다에는 코흘리개 아이들이 헤엄을 치고, 한 젊은 남녀는 바다에서 나오면 바로 이별이라는 몽둥이가 둘 사이를 후려치기라도 하듯 물속에서 썀쌍둥이 되어 있었다.

나의 배속에서 관광도 좋지만 허기도 채워달라고 하소연하는 소리가 들려, 우리는 헤밍웨이 가 즐겨 찾았던 레스토랑 '라 테레사'로 들어갔다. 헤밍웨이의 낚시 사진과 옛날 어촌마을의 모습들이 사진으로 걸려 있었다. 눈에 뛰는 것은 헤밍웨이가 쿠바에 머물 때 친구로서 <노인과 바다>의 실제 모델인 늙은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의 사진이었다.

강인한 인상의 푸엔테스 얼굴을 보니, 바다에 나간 지 85일 만에 간신히 잡은 청새치 고기를 상어의 밥으로 모두 빼앗기고도 좌절하지 않는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오버랩되었다.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다"고 말했던, <연금술사>의 산티아고가 아닌, 늙은 어부 산티아고처럼 그는 104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노인과 바다>에서 절망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강조했던 헤밍웨이는 로맹 가리처럼, 엽총자살로 생을 끝냈다. 로맹 가리를 쫓아가다보면 페루에 다다르고, 헤밍웨이를 쫓아가다보면 쿠바에 다다르고, 헤밍웨이를 쫓아가다보면 로맹 가리에 다다르고, 로맹 가리에 다다르면 결국 죽음에 다다른다.

소설가들은 독자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려고 하다 보니, 정작 자신들은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삶은 자기 자신 안에 있는데, 남의 삶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명성에 휘둘려, 자아의 주체를 너무 학대했던 것은 아닐까. 소설가는 참 고독한 직업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90여 일에 걸쳐 중남미의 혁명가, 여성운동가, 문학가, 예술가, 그리고 소설무대와 생태마을 등을 둘러봤다. 멕시코 칸쿤에서 만난 김수연씨로부터 사진 도움을 받았다.


덧붙이는 글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90여 일에 걸쳐 중남미의 혁명가, 여성운동가, 문학가, 예술가, 그리고 소설무대와 생태마을 등을 둘러봤다. 멕시코 칸쿤에서 만난 김수연씨로부터 사진 도움을 받았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코히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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