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 그렇게 열심히 하면 전국 1등 할 텐데!"

학교 축제 공연을 하면서...인기연예인이 이런 기분일까

등록 2011.08.29 09:51수정 2011.08.2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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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날라리 1학년 3반이에요 ⓒ 이슬비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는 말을 실감한 기간이었다. 지난 주 금요일(8월 26일)에 열린 학교 축제를 준비하면서 그랬다.


중학교 때와는 다른 분위기여서 긴장도 많이 했다. 가슴도 떨렸다. 작년 중학교 3학년 때 참가했던 전국노래자랑 예심이나 추석 날 아빠 고향에서 열렸던 노래자랑과는 느낌이 달랐다.

사실 학교축제도 여러 번 참가했었다. 초등학교 때는 조그마한 교실에서, 중학교 땐 학교강당에서 공연을 했었다. 무대도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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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팀이에요 ⓒ 이슬비


먼저 축제에 나갈 출연자를 뽑는 오디션에 참가했다. 중학생 때는 세세하게 따지지 않고 '적당히 봐줄 만하면' 통과를 시켜주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축제는 오디션부터 달랐다. 정말 가수라도 뽑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오디션을 통과하기 위해 일주일간 열심히 연습을 했다. 친구 3명과 함께 노래 두 곡을 준비해서 틈나는 대로 연습을 했다.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던지 안무가 딱딱 맞아 떨어졌다. 우리 팀은 간단하게 오디션을 통과했다. 본선 참가자격을 얻은 것이다.

본선을 향한 우리의 연습은 날마다 계속됐다. 그러던 중 오디션 심사위원을 하셨던 선생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다. "너의 팀이 제일 잘 하더라. 축제의 마지막을 너희들이 장식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우리 팀이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우쭐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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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부에요 ⓒ 이슬비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준비한 노래는 팝송이었고, 두 곡을 섞어 만든 시간이 3분 조금 넘는 정도였다. 마지막을 장식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다른 친구들 몇 명을 스카우트해서 모두 7명으로 팀을 다시 결성했다.

노래도 팝송 세 곡에다 아이돌 그룹의 노래 한 곡을 합해 다시 편집을 했다. 다 합치니 분량이 8분 정도 나왔다. 안무도 나와 다른 세 명이 먼저 나와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다른 노래가 나오는 사이 대기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다음, 다시 나가 아이돌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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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세번째가 저에요! ⓒ 이슬비


축제 준비는 시간이 갈수록 부담이 더 됐다. 우리 학교 전교생은 물론이고 학교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다 참관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다른 학교 남학생들의 초청 공연도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연습을 했다. 점심식사와 저녁식사 시간, 야자(야간 자율학습)시간을 가리지 않았다. 우리가 연습하고 있으면 야자시간에 몰래 나와 다른 친구들이 엿보기도 했다. 주말에도 만나서 연습, 또 연습을 했다. 축제를 앞두고 우리 팀의 안무는 딱딱 맞아 떨어졌다. 내가 봐도 정말 멋있어 보였다.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는지 내가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살도 3㎏이 빠졌다. 발가락에도 물집이 생겼다. 춤을 출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평상시 걷는 것도 불편할 정도였다.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축제에 나갈 생각을 하면 아픔 따위는 참을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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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팀이 춘 모나리자입니다! ⓒ 이슬비


축제를 하루 앞두고 리허설이 있었다. 리허설은 축제 무대가 될 KT 강당에서 열렸다. 우리 팀도 공연장에서 열리는 리허설에 참가했다. 리허설은 공연 순서대로 진행됐다. 우리 팀은 마지막 공연이었기에 리허설도 맨 나중에 진행됐다.

리허설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여유를 부리며 건물 여기저기 구경을 다녔다. 피곤해서 잠깐씩 졸기도 했다. 무대 뒤 대기실에 가봤다. 메이크업 룸과 탈의실이 있었다. 신기했다. 내가 정말 가수라도 된 느낌이 들었다. 나와 친구들은 함께 감탄하고 있었다.

두어 시간 지났을까. 우리 팀의 리허설 순서가 돌아왔다. 무대에 올라 춤을 추는데 느낌이 달랐다. 우리학교 강당에서 추던 느낌이 나지 않았다. 무대의 바닥 재질이 우리학교 강당과 다른 것이었다. 리허설을 했는데 만족감이 들지 않았다.

우리는 선생님께 리허설 기회를 다시 한 번 더 달라고 졸랐다. 선생님의 허락으로 다시 리허설 기회를 가졌다. 아쉬운 대로 괜찮았다. 리허설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장소를 학교 강당으로 옮겨 연습을 계속했다. 축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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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로즈 뽑기에요! ⓒ 이슬비


우리는 마지막 연습을 하면서 절망적인 소식 하나를 들었다. 초청을 받아 오는 남학교 댄스팀의 노래가 우리와 일부 겹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좌절감이 밀려왔다.

우리가 준비한 노래는 남자 아이돌 그룹의 것이었다. 춤도 남자들의 것이다 보니 아무래도 남자들한테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여자 그룹의 춤은 여자들이 추는 게 더 예쁘듯이, 남자들의 춤은 남자들이 대충만 흔들어도 더 멋있게 보이는 법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금세 좌절감을 딛고 일어나 '파이팅!'을 외쳤다. 서로 어색한 부분을 지적해 주며 완벽을 추구했다. 우리는 철새들의 군무처럼 잘 맞췄다. 밤 10시 넘어 집에 돌아와서도 거울 앞에서 연습을 했다.

다리에 난 물집이나 상처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본 엄마가 "공부도 그렇게 열심히 하면 전국 1등은 따놓은 일일 텐데!"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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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의 하이라이트랍니다~ ⓒ 이슬비


드디어 축제의 날이 밝았다. 축제에 출연할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일찍 등교해서 공연장으로 이동해야 했다. 평소보다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났지만 피곤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더 쉽게 떴다. 축제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컸다.

공연은 두 번으로 나눠서 진행됐다. 오전 공연은 3학년 언니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오후 공연은 1, 2학년과 선생님을 대상으로 했다. 좁은 대기실에서는 분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춤 연습을 하고…. 온통 정신이 없었다.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 팀 앞은 뮤지컬이었다. 그걸 보면서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정말 심장이 지구를 뚫고 우주 멀리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연습을 많이 해서 긴장감은 조금 덜 했지만 그래도 감출 수는 없었다.

우리 순서가 되어 무대로 나가면서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지금 나는 공연을 하고 있다. 저 조명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는 이 무대를 여유롭게 즐기면 된다!'는. 긴장감이 조금씩 풀렸다.

무대에 섰다. 생각만큼 긴장은 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이 순간을 즐기는 거야. 나의 모든 끼를 발산시키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조명이 우리를 덮쳐왔고 나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숙련된 몸놀림을 선보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나의 유연함과 파워풀, 섹시까지 모든 걸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무대 위를 날아다녔다. 음악과 조명에 나를 맡겼다. 간간히 섹시한 표정도 짓고, 조금은 남성적인 느낌의 파워풀함도 과시했다. 내가 주인공이란 생각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무대 위를 날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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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내가 최고라는 듯 거만하게~ ⓒ 이슬비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많은 친구들이 초청 받아 온 남학생 팀보다 더 잘 했다며 칭찬해 주었다. 앵콜 소리도 나왔다. 공연을 마치고 나오자 친구들이 "정말 잘했다", "멋있었다"며 엄청난 지지를 해주었다.

뿌듯했다. 그 동안 힘들게 연습했던 피로는 생각나지 않았다. ''아... 내가 왜 이토록 힘들면서도 무대위에 서기 위해 연습을 했지?? 그래! 이 맛이야! 열렬한 호응과 함성 때문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춤을 추며 노래하는 아이돌도 이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이 느낌, 희열감은 무대에 올라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두 차례의 공연을 모두 마치고 나오는데 "사진을 같이 찍자"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언니들이 있었다. 친구들은 "같이 사진 찍자"며 끌고 가기도 했다. '내가 지금 인기쟁이가 된 건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하루였다. 지금 이 순간도 그 때의 희열감이 떠나지 않고 나를 감싸고 있다. 생각만으로도 기분 좋고 두근거리는 설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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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부의 뮤지컬 공연~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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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언니들의 패션쇼! ⓒ 이슬비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이슬비 기자는 광주 문정여자고등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슬비 기자는 광주 문정여자고등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장미꽃 만발할 제 #문정여고축제 #문정여자고등학교 #문정여고 #모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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