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18분에게 물었다... "깨달으셨습니까?"

[서평] 한국의 선지식 18인에게 듣는 이야기 <산승불회>

등록 2011.09.03 14:47수정 2011.09.0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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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18일, 석주 큰스님의 영결식에 참석한 보성 스님, 혜정 스님, 진제 스님 등 <산승불회> 속의 선지식 다수가 보인다. ⓒ 임윤수

2004년 11월 18일, 석주 큰스님의 영결식에 참석한 보성 스님, 혜정 스님, 진제 스님 등 <산승불회> 속의 선지식 다수가 보인다. ⓒ 임윤수

머지않아 여름 내내 가꾼 농작물들을 거둬들이게 될 것입니다. 벼, 수수, 콩, 팥 등 어느 것 하나 추수하는 게 기쁘지 않은 수 없지만 거둬들일 때의 손맛으로만 본다면 고구마와 땅콩의 재미가 유별납니다.

 

보다 귀하고 값이 나가서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넝쿨을 대충 걷어내고 고구마 줄기를 살살 잡아당기면 끊어질 듯이 이어지는 뿌리에 고구마가 주렁주렁 매달려 나옵니다. 땅콩도 비슷합니다. 잎사귀 떨어진 대를 잡고 살살 뽑아 올리면 술래에 잡힌 아이들처럼 뿌리에 매달린 땅콩들이 이 뿌리 저 뿌리에서 드러납니다.    

 

예측하지 못했던 고구마가 줄기 끝에 매달려 나오니 재미있고, 사방으로 뻗은 뿌리에 감춰졌던 땅콩들을 하나둘 거둬들이는 손맛이 쏠쏠합니다. 어떤 때는 덤이라도 얻은 듯 기쁠 때도 있습니다.

 

끊이지 않고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는 불가 이야기

 

조계종총무원·유철주 공저, <불광출판사> 출판의 <산승불회>는 다가오는 가을에 거둬들일 수 있는 출판계의 고구마며 땅콩입니다. 읽을 수 있는 내용이 고구마처럼 주렁주렁하고, 느낄 수 있는 재미가 뿌리에 매달린 땅콩처럼 올망졸망합니다. 줄기를 잡아당기고, 대를 뽑아 올리면 매달려 나오는 고구마와 땅콩처럼 암팡진 내용들이 쪽쪽마다 소복하게 담겼습니다.

 

<산승불회>는 월간 <불광> 취재팀장인 유철주가 불교계에서 내로라하는 18분 큰스님을 2010년 1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직접 찾아뵙고 묻고 답하여 정리한 큰스님들의 일대사입니다. 출가를 하게 된 배경이나 과정을 묻고, 행자로 생활 할 때의 이야기를 듣고, 확철대오한 깨우침까지를 묻고 답하니 큰스님들이 살아온 수행이력이며 출가수행자들의 삶을 정갈하게 갈무리 한 사는이야기의 골수입니다.

 

출가 인연, 행자 생활, 수행과정을 이야기하다 보니 줄기에 딸려 나오는 고구마처럼 큰스님들의 은사스님들과 도반스님들 이야기가 주렁주렁 딸려 나옵니다. 큰스님들이 말씀하시는 고승들의 삶이 엿보이고, 고승들의 수행이력이 큰스님들의 답에서 어른거리니 이야기 속의 덤이며 살아서 꿈틀 대는 수행 현장의 묘사입니다.        

 

지은이가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에 대해 물으니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인 수산 스님께서는 "돈오(頓悟) 후에는 점수할 것이 없습니다. 지극한 수행 끝에 깨닫는 것이 돈오고 더 닦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라고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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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승불회>/글·사진 조계종총무원·유철주 / 불광출판사 펴냄 / 2011년 9월 5일 / 16,000원) ⓒ 불광출판사

<산승불회>/글·사진 조계종총무원·유철주 / 불광출판사 펴냄 / 2011년 9월 5일 / 16,000원) ⓒ 불광출판사

하지만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인 보성 스님께서는 "점수(漸修) 없이 돈오(頓悟)는 있을 수 없습니다. 또 돈오 후에도 점수가 필요합니다. 역대 조사를 보더라도 점수 없이 돈오가 된 분은 없습니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니 끝나지 않을 법거량을 보는 듯한 아슬아슬함이 느껴집니다.

 

"깨달으셨습니까?"하고 여쭈니 송광사 동당 법흥 스님, 안성 석남사 회주 정무 스님, 봉화 금봉암 고우 스님께서는 "깨닫지 못했다"고 답하시고, 장수 죽림정사 조실 도문스님께서는 "산승불회(山僧不會)입니다. 산승은 알지 못합니다"라고 답하고 계시니 깨달음의 깊이가 어림되고 스님들의 하심이 가늠됩니다.  

 

화두를 여쭈니 함양 황대선원 조실 성수 스님께서는 "화두는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하시지만 백양사 방장 수산 스님, 하동 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 남양주 봉선사 조실 밀운 스님, 서울 도선사 조실 혜정 스님,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인환 스님께서는 '이 뭣고'를 화두로 삼았다는 것을 말씀해 주심으로 '이 뭣고'를 화두로 삼은 스님이 가장 많았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출가 인연을 물으니 소싯적 추억을 들려주시고, 행자생활을 여쭈니 시집살이 보다 맵고 어려웠을 시절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십니다. 큰 스님들이 들려주시는 불가 이야기는 불교역사의 편린이며 구도의 행각의 변천사입니다. 

 

고승들이 처방하는 한국불교가 나아갈 방향

 

덕숭총림 방장에 추대되신 후 "방장 행자가 되겠다"고 말씀하셨다는 설정 스님께서는 "부처님 경지에 오르기 전에는 누구나 행자"라고 답하십니다. 저자가 승격(僧格)을 강조하고 계시는 데에 대해 질문하니 추상보다도 더한 경책을 호령으로 진단하십시다.

 

"그런데 요즘 '생활인'으로서의 스님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중이 아닙니다. 직업인입니다. 승격을 망가뜨리는 사람입니다. 이런 스님이 많을수록 불교 발전은 요원합니다. 비승가적이고 비교양적이고 반지성적인 불교는 암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산승불회> 63쪽

 

묻고 답하는 내용 중에는 불교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나아갈 바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격정으로, 때로는 노심초사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큰스님들이 하시는 걱정이야 말로 어느새 구관이 된 고승들이 처방하는 한국불교가 나아갈 방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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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혜정 스님의 영결식이 치러진 2011년 2월 26일, 법주사 영결식장. ⓒ 임윤수

법주사 혜정 스님의 영결식이 치러진 2011년 2월 26일, 법주사 영결식장. ⓒ 임윤수

공동 저자인 유철주가 "불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습니다"하고 이야기 하니 안성 석남사 회주인 정무 스님께서 답하십니다.

 

"우리 불교계에는 아주 나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무위(無爲)입니다. 아무것도 않고 노는 것입니다. 매일 도량 청소라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노는 스님들이 많습니다. 둘째는 무식(無識)입니다. 공부 안하는 수행자도 많습니다. 책이라도 봐야 중생을 제도 할 텐데 참 걱정입니다. 셋째는 도식(盜食)입니다. 일하지 않고 얻어 먹으려합니다. 이 세 가지만 고치면 불교가 좀 더 나아질 것입니다." <산승불회> 273쪽

 

'산승불회', 하심으로 깨우친 선지식의 '도'

 

출가 인연을 들려주고, 행자 생활을 들려주시던 법주사 혜정 스님께서는 이미 열반에 드셨으니 <산승불회>를 통해 들려주신 혜정 스님의 일대사는 고승열전의 기지가 될 듯합니다.

 

내로라하는 당대의 열여덟 선지식의 입을 통해 불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당신들이 살아온 구도행각, 은사 스님과 도반 스님들의 이야기가 줄기에 매달린 고구마처럼 주렁주렁 이어지고 있으니 <산승불회>를 읽는 재미는 오곡백과 만큼이나 여러 맛이고 <산승불회>를 읽으며 느끼는 기쁨은 넘실대는 들녘 만큼이나 풍년입니다.

 

'깨달음'을 여쭈는 저자의 질문에 도문 스님께서는 산승불회, "산승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산승불회>를 읽은 필자는 '산승불회'야 말로 하심으로 깨우친 선지식의 '도'임을 알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산승불회>/글·사진 조계종총무원·유철주 / 불광출판사 펴냄 / 2011년 9월 5일 / 16,000원)

산승불회 - 한국의 대표 선지식 18인에게 듣는 인생과 깨달음 이야기

유철주.조계종 총무원 지음,
불광출판사, 2011


#산승불회 #불광출판사 #유철주 #조계종총무원 #법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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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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