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개량한복, 간소한복이나 소담한복으로 바꿉시다

한가위를 계기로 생각해보는 우리 한복 문화의 단면

등록 2011.09.08 14:23수정 2011.09.0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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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같은 큰 명절에는 한복의 우아한 자태를 대할 일이 잦다. '우리의 혼'이 담긴 문화 콘텐츠로서의 한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복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점도 주목을 끄는 대목이다.
      
우리 의(衣)생활의 한 부문으로 점차 자리 잡아가고 있는 이른바 '개량한복'의 명칭에 관한 우려 섞인 논의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 이름은 전통 복식인 한복의 형태를 바꾼 옷을 이르는 것이다.

'개량한복'이란 낱말의 속뜻이 결과적으로 한복(韓服)을 비하하고 있다는 점을 전통의상 전문가 등 복식계(服飾界) 인사들은 제기해 왔다. 개량(改良)이란 '좋게 고친다'는 뜻, 한복이 '개량의 대상'이 될 정도의 '좋지 않은 옷'이라는 뜻을 그 명칭은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량한복' 명칭은 그 옷을 만들어 더 많이 알리고 판매하려는 이들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파악된다. 딱히 어울리는 다른 이름을 찾아내지 못한 복식계가 이를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여 일반적인 명칭이 된 것으로 보인다. 또 '개량'이라는 말과 개혁과 진보의 이미지가 겹쳐 보여 시민들이 이 말을 수용하는데 저항감을 덜 가졌을 수도 있다.

공석붕 패션협회 전 회장은 "제대로 된 논의나 필요한 절차 없이 '개량한복'이란 이름이 우리 복식문화에서 자리를 일찍 잡아버린 것 같다"고 걱정한다. '개량'된 한복이 그 말뜻처럼 '좋아졌는지'도 검증돼야 할 터이지만, 우선 전통한복을 부정하는 뜻이 아닌 '착한 새 이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배용, 이광희, 문광자, 홍미화, 이미경씨 등 중견 디자이너들도 이런 점을 우려한다. 한복의 아름다운 요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서 단지 기능적 '간편성'만 강조한 일부 의상들이 한복의 한 갈래로 퍼지고 있는 점을 주의해 봐야하며, 그 명칭 또한 문제라는 것이다.

'개량한복', 작업복 또는 시위용 복장으로 비쳐지는 현실 우려

한복은 점차 역할이 축소되고, '개량한복'은 상당부분 작업복 또는 시위(示威)용 복장으로 비쳐지는 현실에 대한 걱정도 있다. '아름다운 우리 옷'이 사위고 있는 것이다. '명품' 광풍(狂風)을 앞세운 서양 패션트렌드가 우리 시장과 거리를 뒤덮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우리 생활문화의 한 단면이다.
  
한복의 세계화에 나선 한복인 이영희씨도 "우리 옷의 정신을 훼손하는 일부 변형 한복이 전통 미의식에 혼란을 줄 가능성이 크다"며 "국적불명 '개량한복'을 비판한다. 또 세계의 어떤 의상보다 완성도가 높은 한복을 '개량의 대상'으로 삼는 뜻을 가진 그 이름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 전문가들은 새로운 형태의 이런 '한복'이 우리 전통 옷의 아름다움과 품격 등 그 본디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점과 함께 모양과 취지에 맞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이런 작업을 시도하고 여러 경로로 이런 뜻과 '새로운 이름'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국패션협회 등에 따르면 이런 이름 중 간소한복, 생활한복, 간편한복, 소박한복, 질박한복, 소담한복, 검소한복, 예담한복, 현대한복, 시민한복 등이 비교적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한다. 전통한복에 비해 간편하고 소박하다는 점에 착안한 좋은 작명(作名)으로 보인다. 몇몇은 일부 인사들에 의해 생활 속에서 쓰이거나, 상표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 중에도 '개량'보다는 낫지만 역시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이유로 어떤 이름들은 지적을 받는다. 가령 '생활한복'은 그 본디인 전통의상을 '생활과 동떨어진 옷'으로 간주한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또 '소박한복'은 '소박맞다'의 뜻이 떠올라 본뜻과는 달리 기피되기도 한다.

이 중 '간소(簡素)한복'과 '소담한복'의 두 이름이 관계 전문가들의 지지나 간이 여론조사인 인터넷 폴 등에서 주목을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관찰되고 있다. 간소한복은 간편하면서도 한복의 본디를 품은 옷이라는 뜻, 소담한복은 넉넉한 느낌의 새로운 옷이라는 뜻이다.

우리 옷의 이름과 관련한 패션계 인사들의 이런 관심과 시도는 우리의 의생활이 서양의 패션 풍조에 무방비상태로 밀리는 최근의 상황에서 작지만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이제 어문 전문가들이나 국어연구원과 같은 각급 기구에서도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복은 품격 높은 한국의 상징이다. 이를 기반으로 생겨나는 새 옷도 한복의 상징성에 걸맞는 이름을 가져야 한다. 올 추석부터는 '개량한복' 이름 버리고 '간소한복' '소담한복' 같은 속뜻도 착한 새 이름을 세우는 것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사회신문(www.ingo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필자는 사단법인 우리글진흥원의 대표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민사회신문(www.ingo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필자는 사단법인 우리글진흥원의 대표입니다.
#전통한복 #전통문화 #개량한복 #소담한복 #간소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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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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