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중목욕탕에 가 봤더니..."

[미주 한인 방북 보고회] 미주 한인청년들이 북한에 가는 까닭은?

등록 2011.09.20 15:33수정 2011.09.2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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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1.5세~2세대 청년 7명은 지난 6월 25일부터 2주일간 'DEEP'(DPRK Education & Exposure Program, 북한에 대한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북한을 다녀왔다.


"한국 사람들도 통일에 관심이 없는데 왜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 2세들이 관심을 갖느냐고? 미국이 인종차별적인 정책을 계속 유지하는 한 (남북의) 통일 문제는 우리의 삶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 돼 있기 때문이다."

뉴욕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연(42)씨는 지난 6월 25일부터 2주일간 북한을 다녀왔다. 뉴욕에 위치한 한인 진보청년단체 노둣돌이 진행하고 있는 이른바 'DEEP'(DPRK Education & Exposure Program, 북한에 대한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그와 함께 북한을 방문한 6명의 1.5세~2세대 한인동포 청년들은 프린스턴대학 교수에서부터 입양인, 예술인, 침술사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씨는 "미국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남북한을 바로 알고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가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조금 더 나은 이민자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미주 한인청년들의 '북한 바로 알기' 운동

17일(현지 시각) 오후 7시 차이나타운이 위치한 뉴욕 맨해튼 캐널스트릿 인근. 다인종·다문화 커뮤니티 단체인 '프로젝트 리치' 강당에 200여 명의 평화·인권 활동가들이 모였다. 주로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미국인이나 남미인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6·15공동선언실천 뉴욕공동대표인 김수복씨의 모습도 보였다.

강당 한쪽에는 즉석에서 요리된 옥수수전, 평양식 만두 등 북한 음식이 준비돼 있었다. 지난 6월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미주 한인청년들이 당시 맛 봤던 북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본 것이다. 노둣돌 주최로 열린 이날 방북 보고회에서는 방북단 7명 중 서부 등 타 지역에 살고 있는 3명을 제외한 4명이 발표자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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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부터 2주일간 'DEEP'(DPRK Education & Exposure Program, 북한에 대한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북한을 다녀온 미주 한인청년들이 지난 17일 뉴욕 맨해튼에서 방북 보고회를 개최했다. ⓒ 최경준


미주 한인 1.5세~2세대 청년들이 'KEEP'(Korea Education & Exposure Program)의 일환으로 남한을 방문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들은 "북한도 우리의 조국"이라는 판단에 따라 2001년부터 북한 방문(DEEP)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올해 방문이 9번째이고,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에 의해 북한에 다녀온 사람은 74명이다.


이들은 의사, 대학교수, 예술인, 동성애자, 입양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특히 1500달러 정도의 여행비용을 충당하고 북한 병원을 돕기 위한 기금도 모아야 하기 때문에 전문직이나 직장인들이 주로 참여했다. 이들은 주유엔북한대표부를 통해 북한 해외동포원호위원회의 도움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

콜롬비아대학 티처컬리지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벳시 윤(28)씨는 올해 처음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은 남한에서는 주로 시민사회 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을 배우고, 북한에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북한에 대한 잘못된 인식 등을 바로 알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방북에 앞서 몇 달 간 북한과 한반도 정세 등에 관해 방대한 자료를 읽고 사전준비를 했다. 윤씨는 "방북에 앞서 북한의 역사나 사상 등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며 "선군이나 주체사상이 현실적으로 북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약 2주일 동안 평양 양말 공장, 강선제철소, 청산리 협동농장, 평양 애육원, 산모병원, 고려의학연구원,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신천박물관, 판문점, 개성, 사리원 민속촌, 평양 봉수교회, 묘향산, 김일성종합대학 등을 방문했고, 비전향장기수, 여성단체대표자 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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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부터 2주일간 'DEEP'(DPRK Education & Exposure Program, 북한에 대한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북한을 다녀온 미주 한인청년들이 지난 17일 뉴욕 맨해튼에서 방북 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번에 처음 북한을 방문한 이현정(40.침술사)씨가 평양 양말 공장의 한 노동자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크리스티아나 백(30)씨는 뉴욕대학원에서 문학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황해남도에 위치한 신천박물관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면서 "한국전쟁 때 반공 한국인들과 미군들이 마을에 살고 있는 3분의 1정도의 주민들을 학살했고, 그때 학살을 목격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박물관에 모아 놨다"고 설명했다. 신천박물관은 6·25 당시 미군의 만행을 폭로하는 자료나 증거물들을 통해 반제·반미사상을 교양하는 대표적인 박물관이다.

뉴욕 퀸즈에서 침술사로 일하는 이현정(40)씨는 북한 측 인사들과 한 인터뷰를 녹음해와 이날 공개했다. 그는 "식량 부족에 대한 많은 얘기를 들었다"며 "지난해 겨울에 유난히 추웠고, 올해 홍수가 있어서 식량난이 더 가중됐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씨는 또 "현재 북한은 상당부분 '토지 정리'가 이뤄진 것 같다"고 전했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예전에는 농사지을 수 있는 평평한 땅이 없어서 계단식으로 농사짓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이번에 가니까 (산을) 전부 깎아냈더라. 평양시뿐만 아니라 사리원, 개성 등 어디에 가나 밭이 평평하게 돼 있었다. (농작물의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토지 정리를 전부 한 것이다.

재미있는 건, 그 작업을 전부 군인들이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식량 지원을 해도 군인들에게 다 간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긴 맞다. 그런데 사실 군인들이 일을 제일 많이 한다. 공장을 세우거나 농사를 짓거나 도로를 만들거나 군인들이 전부 한다. 왜냐면 그들이 유일한 젊은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군대 복무 기간이 10년이다. 그들이 (북한의 생존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노동력인 셈이다."

이씨는 또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북한이 어느 때부터인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던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첫날 도착해서 굉장히 낯설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고, 전부 낯설게만 느껴졌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남쪽과 똑같았지만……. 하루는 공중목욕탕에 갔다. 때 밀고 목욕하는 문화는 남쪽과 똑같더라. 그런데 거기는 공동체 사회여서 분명 다른 게 많았다. 그 모든 게 3~4일 정도 지나니까, 정말 신기하게도 차차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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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부터 2주일간 'DEEP'(DPRK Education & Exposure Program, 북한에 대한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북한을 다녀온 미주 한인청년들이 지난 17일 뉴욕 맨해튼에서 방북 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번에 다섯 번째 북한을 방문한 이주연(42.법률사무소)씨는 "평양에는 네온사인이나 상업적인 광고 대신 앞으로 어떻게 전진할 것인가 등을 형상화한 공공 미술품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번 북한 방문이 다섯 번째인 이주연씨는 "과자, 라이터, 양말, 티비, 컴퓨터 등이 예전에는 거의 수입품이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대부분 국내 생산품이었다"며 "또한 과거에는 원조에 대한 얘기를 전혀 하지 않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원조의 필요성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얘기를 꺼냈다"고 전했다.

이씨는 이어 "일부에서는 북한 사람들이 개인적인 성격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가서 보면 참 다양한 성격을 가진, 우리와 같은 삶의 목적을 갖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라며 "과연 우리가 한 나라의 삶의 질을 어떤 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했다"고 말했다.

2년 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북한을 다녀온 이수영(36·사회복지사)씨는 "사람이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디에서 사느냐에 따라서 관점이 많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고 말했다.

"11살 때 미국으로 왔기 때문에 한국에서 어느 정도 반공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북한에 대해 심리적으로 두려워하는 면이 있었다. 북한은 남한과 가장 가까운 나라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먼 나라로 느껴졌다. 그래서 가보고 싶었다. 실제 가서 북한 사람들과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운동도 하고 얘기도 하고, 2주가 짧기는 했지만, 나랑 다른 점보다는 같은 점이 더 많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역사적 사실을 남한이나 미국의 관점으로 배워왔는데, 북한에서 며칠 지내보니까, 또 그쪽 사람들의 관점으로도 보게 되더라."

북한 방문의 한계?... "통일 절박성 배웠다"

그러나 북한 측에 의해 짜인 일정대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참가자들의 북한 체험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북한 측이 제공하는 일방적인 정보에만 의존해야 한다. 이현정씨도 이번 방북에서 북한의 모든 면모를 다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 쪽에서 짜준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봐도 결국 한 부분만 볼 수밖에 없다. 기간도 너무 짧았다. 그 사회를 정말 알려면 몇 년 살아봐야 하는 것 아니겠나. 그런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외에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도 많았다. 호텔에서 일하는 종업원들과 밤에 바에서 술 한 잔 하면서 얘기 나눌 수 있었고, 운전사 아저씨와도 대화를 많이 했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었다."

노둣돌 측은 "에너지난으로 인해 정전이 된 공항, 자동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거리 등 어쩌면 북측에서 방북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면모들도 보여준 셈"이라며 "중요한 것은 참가자들이 이번 방문을 통해 서로 다른 관점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절박성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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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1.5세~2세대 청년 7명은 지난 6월 25일부터 2주일간 'DEEP'(DPRK Education & Exposure Program, 북한에 대한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북한을 다녀왔다. 북한 군인들의 모습.


노둣돌은?
미주 한인 1.5세대, 2세대를 중심으로 구성된 노둣돌은 동포사회의 건강한 발전과 권리신장, 그리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진보적인 한인 청년단체이다. 지난 1999년 발족한 노둣돌은 현재 30여명의 청장년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문화, 정치적으로 분열된 한인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제공해왔다.

특히 언어적, 문화적 차이로 벌어진 이민 1세대와 2세대 간의 세대 차이를 줄이기 위해 우리말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미국과 북한의 한국전 종결과 평화조약 체결을 촉구하는 '한국전 종전을 위한 범미 캠페인(the National Campaign to End the Korean War)'을 벌이고 있으며, 남한과 북한 교환 방문을 동시에 제공하는 유일한 미국 내 한인 단체이다.
#뉴욕 방북 보고회 #북한 방문 #노둣돌 #미주 한인청년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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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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