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세기의 신제품, 궁금하신가요?

어머니 휠체어 앞판, 어머니 선물인가 내 선물인가

등록 2011.09.22 18:50수정 2011.09.2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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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저놈이 또 무슨 일을 저질렀나?' 하고 어머니는 힐끗 보고 관심을 거두신다. 어머니께 드리는 하늘도 감동 할 큰 선물을 만들고 있다는 걸 모르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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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판 멋진 어머니 선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 전희식


모든 목공 작업의 첫 단추는 도면을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간단한 작업을 하더라도 도면을 그려보면 제품(!)의 공간구조가 구석구석 손에 잡힌다. 대충 눈대중으로 시작했다가는 짜투리 나무토막이 나오기 십상이다.

도면을 그리는 잇점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머릿속에서만 그리고 있던 구상의 헛점들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보다 완전한 제품을 만드는 첫걸음이 도면그리기라는 것은 얼마전에 펴 낸 본인의 저서 <시골집 고쳐살기>에서도 여러번 강조했었다.

도면을 기초로 목재를 재단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집짓기에서는 치목이라고 하는데 지금 시작하는 간단한 작업은 절차를 많이 생략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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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판 재단을 하고 있다. 강도가 높은 일반합판에 친환경 니스칠이 된 합판이다. ⓒ 전희식


이정도 작업 단계에서도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알기가 쉽지않다. 윗판 하나가 완성된 셈인데 어디에 쓰이는 것이지 도면과 내 머릿속에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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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판 직소기를 이용해 작업 중 ⓒ 전희식


직소기를 이용해 완성된 윗판 중심에 작은 라운딩 사각 판을 떼어낸다. 직소기는 목재의 곡면 재단에 쓰이는 목공구다. 대량 작업을 할때는 고정형 직소대가 있다. 재봉틀 작업하듯이 작은 판재를 갖다 얹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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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판 윗판의 완성 ⓒ 전희식


이제야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사각 라운딩 구멍 아래로 보강 각재를 대고 있다. 이곳은 작은 보관함이 될 부위다. 이 생각을 해 낸 이유는 이 제품의 용도를 보면 바로 알게 된다. 여기까지 단 한번의 실수도, 단 하나의 목재 손실도 없이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런 경우가 쉽지는 않다. 집을 세 채나 지어 본 사람의 솜씨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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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휠체어 바로 이것 때문에 시작된 작업이다. ⓒ 전희식


지금 시작한 작업은 이 사진과 같은 문제 때문이다. 어머니가 휠체어를 타면 팔이 바퀴에 닿아 옷이 더럽혀지고 닳는 것이었다. 팔꿈치가 바퀴를 누르니 밀고 가는 나도 힘들다. 더구나 어머니가 떼를 쓰는 날은 바퀴 잠금장치인 아래애 있는 까만 봉을 마구 움직여버리니까 휠체어 밀기가 더 힘들다.

가져 다녀야 할 소지품을 늘 어머니 무릎 아니면 둘데가 없다보니 어머니 무릎이 아프기도 하려니와 흘릴 때도 많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휠체어 전용 앞판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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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판 안내판 ⓒ 전희식


앞판이다. 휠체어에 이 판을 얹을 것인데 이것이 휠체어 양 팔걸이에 견고하게 고정되어야 하므로 양쪽으로 고정 지지 홈을 만들어 붙였다. 양쪽 홈 판은 서로 바라보는 식이다. 팔걸이의 간격과 두께를 정확히 재서 만들었다. 못질을 하면 합판이 쪼개질 수가 있으므로 알맞은 길이의 타거기를 썼다. 물론 공기 압축기(콤프레셔)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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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판 완성 ⓒ 전희식


드디어 완성. 완성된 휠체어 앞판을 얹으니 꼭 맞는다. 휠체어를 밀고 시운전을 해 봤다. 뒷 밭에 나가 봤다. 아주 좋다. 내가 몇 번 휠체어에 앉아 보면서 치수를 재고 무릎 높이까지 고려 해서 만든 보람이 있다. 어머니 팔도 바퀴에 닿지 않고 더구나 이 판위에 뒤늦은 머위대궁을 몇개 잘라 갖다 드리니 옳다구나하고 껍질을 벗기신다.

겉보기로는 안 보이지만 중요한 숨은 공간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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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숨은 공간 어머니 귀중품. ⓒ 전희식


바로 이것이다. 위에 있는 세 번째와 네 번째 사진에서 보이는 곳이 바로 이것이다. 뚜껑을 열면 그 속에 귀중품(!)을 보관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나온다. 어머니 좋아하는 두유와 손가락 과자를 넣어 놨다가 어머니에게 열어 보라고 했더니 열어보며 즐거워 하셨다. 뚜껑을 열기 좋게 드릴로 구멍을 뚫어놨다. 손가락을 구멍에 넣어 뚜껑을 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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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따기 호두를 땄다. ⓒ 전희식


내가 만든 세기의 신제품을 자꾸 써 보고 싶은차에 아들이 왔다. 어머니는 아들을 졸라 호두를 따러 나섰다. 아들이 나무 막대를 하늘에 달린 호두알을 향해 던졌다. 우수수 호두가 떨어지면 어머니도 "저기 ! 저기 ! 추자 떨어졌다"하시며 좋아했고 빈 나무 막대가 소리만 요란하게 바닥에 나뒹굴면 "아나 콩이다" 하시면서 즐거워 했다. 추자는 호두의 경상도 사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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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 첫 번째 호두 ⓒ 전희식


첫 번째로 떨어진 호두를 깨서 드렸다. 껍질을 벗기시고 잘 드셨다. 햇 호두알 맛이 싱싱했다. 조심스레 "온걸로 까 봐" 하시기에 자근자근 조심해서 껍질을 두드려서 알맹이가 전혀 안 상하게 호두를 까 드렸다. 사람 두골을 닮았다. 그래서 호두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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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 호두까기 ⓒ 전희식


어머니가 "인자 됐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귀중품 보관함은 진짜 귀중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몇 번씩 세어 보면서 좋아하신다. 그래도 휠체어 앞판을 잘 만들었다는 말씀은 안 하신다. 어머니 선물이라기 보다는 내 선물에 가까워서 그런가 보다.
#호두 #휠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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