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귀신이 되어 두만강에서 마음껏 썰매를 타십시오

시인 김규동 선생을 보내며

등록 2011.09.29 15:04수정 2011.09.2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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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9일) 아침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이른 새벽 눈을 뜬 뒤 예삿날처럼 손전화의 폴더를 열었다. 밤새 3개 문자가 도착했다. 그 가운데 작가회 발송 문자를 클릭했다.

시인 김규동 회원 별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1599-3114), 발인 10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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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규동 선생 ⓒ 김규동

순간 나는 김규동 선생이 끝내 두만강에서 썰매를 타지 못하고 떠나신 게 안타까웠다. 1999년 8월 5일, 나는 봉오동 항일독립전쟁 전적지 답사길에 도문을 들렀다. 거기서 북한 남양이 빤히 보이는 조중국경 두만강을 바라볼 수 있었다.

강 건너 산하는 분명 내 나라요, 그곳으로 가는 다리가 있어도 건너지 못하고, 중국인들이 얄팍한 장삿속으로 만들어놓은 전망대에 돈을 내고 올라갔다. 거기서 내 조국 산하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마냥 아프기만 했다.

내가 설핏 본 탓인지는 몰라도 국경지대지만 요란한 경비도 없고, 북한 지역은 인적이 보이지 않는 매우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강 건너 마을에 사는 수많은 동포들이 몇 년째 끼니조차 허덕이고 있다니 마음이 더욱 아렸다.

멀리 중국 도문과 북한 남양을 잇는 철교는 두만강을 가로질렀고, 그 다리 아래로 강물은 민족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쉬엄쉬엄 흘러갔다.

문득 어린 시절 이곳에서 썰매를 탔던 시인 김규동 선생의 <두만강>이 떠올랐다. 선생은 통일의 그 날이 오면, 두만강을 찾아 한번 목 놓아 울고 난 뒤에, 흰머리 날리며 그 썰매를 타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히며 시를 썼다. 나는 전망대 위에서 백발 날리는 팔순의 시인이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에서 개구쟁이 소년처럼 썰매를 타는 통일의 그날 모습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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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을 가로지른 조중 국경 철교. 철교 가운데가 국경으로 철교 왼쪽 흰 부분은 중국 땅이고, 검은 부분은 북한 땅이다. ⓒ 박도


 두만강

 얼음이 하도 단단하여
 아이들은
 스케이트를 못 타고
 썰매를 탔다.

 얼음장 위에 모닥불을 피워도
 녹지 않는 겨울 강
 밤이면 어둔 하늘에
 몇 발의 총성이 울리고
 강 건너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 멀리 들려왔다.

 우리 독립군은
 이런 밤에
 국경을 넘는다 했다.

 때로 가슴을 가르는
 섬뜩한 파괴 음은
 긴장을 못 이긴 강심 갈라지는 소리

 이런 밤에
 나운규는〈아리랑〉을 썼고
 털모자 눌러쓴 독립군은
 수많은 일본군과 싸웠다.

 지금 두만강엔
 옛 아이들 노는 소리 남아 있을까
 강 건너 개 짖는 소리 아직 남아 있을까

 통일이 오면
 할 일도 많지만
 두만강을 찾아 한번 목 놓아 울고 나서
 흰머리 날리며
 씽씽 썰매를 타련다

 어린 시절에 타던
 신나는 썰매를 한번 타보련다.
              ― 김규동 〈두만강〉

나는 선생의 간절하고도 소박한 꿈이 당신 생전에 이루어지기를 빌면서 두만강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는 돌아와 그때의 사연을 졸저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항일유적답사기)>에 담아 선생께 우송했다. 그 얼마 뒤 선생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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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동 선생이 보내신 편지 ⓒ 박도

김약연(金躍淵) 선생

박도 선생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특히 두만강에 인접한 지역의 묘사는 옛 생각에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군요. 저의 졸작을 소개해 주신 것도 분에 넘치는 일이올시다.

제 욕심 같아서는 명동학교 설립자요 독립운동가인 김약연(金躍淵) 선생이 조금 소게됐더라면 하는 일입니다.

김약연 선생은 너그럽게 생기신, 머리가 하얀 노인으로 일 년에 두어 번 함경도 종성 우리 집에 오셨지요. 약국을 경영하시던 아버님이 김약연 선생님 오실 때는 그때 돈 200원, 혹은 300원을 독립자금으로 내놓곤 하시는 걸 저는 어릴 때 보고 자랐습니다.

제 아버님은 문익환 목사의 선친 문재린 목사와 명동학교 동창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시는 우리 어머니는 "너희 아버지는 돈 없는 사람한테는 약값도 받지 않고 치료하고, 겨우 겨우 먹고살 만큼 돈푼이나 모아놓으면, 너희 아버지는 그 지전을 곱게 인두로 다린 뒤, 흰 수건에 곱게 싸서 무릎을 꿇으시고 김약연 선생님에게 드렸다.

그래서 너희들한테는 된장국이나 조밥만 먹였다. 규동아, 너는 입쌀밥이 그토록 먹고 싶다고 하지만 아버지가 조밥을 하라는 데 너만 입쌀밥 어떻게 먹일 수 있겠느냐?"

어머니는 이와 같은 하소연 같기도 하고, 탄식 같기도 한 이야기를 더러 하셨지요.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독립운동이 어느 만큼이나 중하고 급한 것인지를 모르시는 탓으로 하신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 2000년 11월 17일 김규동

오늘 아침 김규동 선생의 부음을 받은 뒤, 나는 편지함에서 선생의 옥서를 꺼내 다시 읽고는 두 손을 모아 간절히 빌었다. 선생께서 저승의 귀신이 되어 고향 두만강에 가셔서 썰매를 타시라고.

"김규동 선생님, 부디 극락왕생하옵소서. 그리고 썰매를 지치시다가 익사하더라도 꽁꽁 얼어버린 조국통일의 강도 꼭 녹여 주시옵소서."
#김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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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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