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번 노동해야 얻는 결과... 행복합니다

기쁜 가을걷이, 쌀 25kg포대 200개 들고나니 손가락이 안 움직이네

등록 2011.10.13 09:41수정 2011.10.1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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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부터 다섯달 동안 벼는 88번 농부 도움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 결실을 앞두고 있습니다. ⓒ 김동수

지난 봄부터 다섯달 동안 벼는 88번 농부 도움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 결실을 앞두고 있습니다. ⓒ 김동수

 

지난 열흘 동안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가까운 한분이 갑자기 돌아가셨고, 큰형님 집에 불이 났습니다. 한 가지 일이 해결되면 또 다른 일이 일어나 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낙담과 좌절은 없습니다. 풍성한 가을이기 때문입니다.

 

농부 손길 88번 거쳐야 쌀 한톨 얻어

 

가을걷이를 할 때마다 느끼지만 흙은 생명이고, 콘크리트는 죽음입니다. 절대 변할 수 없는 것 사실 앞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흙을 밟을 때마다 지난 봄 볍씨를 담그고, 모내기를 했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다섯 달이 지났습니다. 쌀 한 톨이 사람 입에 들어 올 때까지 88번 농부 손길이 필요합니다. 쌀미(米)를 풀면 '팔(八)+팔(八)"이 되는 이유입니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왔습니다. 특히 벼꽃이 필 때 비가 많이 와 수정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겉보기에는 벼알이 많아 올해도 풍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타작을 해보니 쭉정이가 많았습니다. 큰형님 같은 경우는 지난해보다 15%정도 줄었습니다. 다섯달 내내 땀과 눈물을 다 쏟았는 데 손에 쥐는 것은 별 것 없었습니다.

 

지난 월요일 집에 불까지 나는 바람에 마음까지 다 녹아내렸습니다. 하지만 형님은 그 고통을 이겨내고 가을걷이에 동생 둘과 발 벗고 나섰습니다. 약 15년 된 콤바인이지만 동생이 워낙 관리를 잘해 아직까지 타작을 합니다. 타작을 다 하면 물로 깨끗하게 씻은 후 기름칠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타작을 해버립니다. 그러므로 신형이라도 고장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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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님과 동생이 콤바인으로 타작을 하고 있습니다. ⓒ 김동수

큰형님과 동생이 콤바인으로 타작을 하고 있습니다. ⓒ 김동수

 

신형 콤바인은 5000만 원 정도입니다. 더 비싼 것은 1억 원이 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동생이 벼농사를 많이 짓지 않기 때문에 신형 콤바인을 살 이유가 없어 더 잘 관리를 합니다. 문제는 옛날 콤바인이라서 일일이 포대에 담아야 합니다.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먼지가 눈과 입 그리고 코로 들어옵니다. 콤바인 포대에 나락이 다 채워지면 25kg 정도 나갑니다. 이것을 하루에 200포대 정도 담고, 차에 싣고, 또 햇볕에 말려야 합니다.

 

"야 무겁다. 무거워"

"힘들제. 일 안 하다가 하면 힘들 수밖에 없다."
"나락이라도 많이 나면 별로 안 무거울 거 같은데."
"밖에서 보면 나락이 잘 된 것 같지만 타작을 해보니까. 영 아니다."

"나락이라도 많이 나야 될 것인데. 농약값, 기름값, 비료값 다 올랐다."

 

그래도 우리집은 인건비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큰형님과 동생, 작은형님 그리고 고문관이지만 종잇장도 받들면 가볍기 때문에 조금은 도움이 되는 저까지 모내기부터 타작까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25kg포대 200개 들고나니 손가락이 안 움직여

 

그제(12일)는 온종일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손가락이 아파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콤바인은 신이 났습니다. 타작을 해보면 올해가 풍년인지 흉년이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나락이 올라오는 소리가 다릅니다. 풍년이면 '찰찰찰찰'하면서 소리가 묵직합니다. 하지만  흉년이면 '찰~찰~찰~찰'하면서 가볍습니다. 풍년이면 포대가 아무리 무거워도 가볍게 느껴지고, 흉년이면 포대가 가벼워도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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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작을 한 논. 짚은 이제 형님과 동생이 키우는 한우 먹을거리가 될 것입니다. ⓒ 김동수

타작을 한 논. 짚은 이제 형님과 동생이 키우는 한우 먹을거리가 될 것입니다. ⓒ 김동수

어제는 작은형님 댁 타작을 했습니다. 형님이 한달 전 큰 수술을 받는 바람에 3형제만 올해는 타작을 했습니다. 형님이 보이지 않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회복이 잘 되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얼굴을 보니 반쪽이었습니다. 4형제 중 가장 미남이고, 키와 몸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병 앞에 장사가 없었습니다. 형수님이 마음과 몸 고생 다 했습니다. 홀로 참깨 타작을 하는 데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형수님 많이 났어요?"
"아니요. 올해는 다 그렇지요."

"참깨라도 많이 걷두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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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타작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데 작은 형님이 홀로 참깨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 김동수

벼타작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데 작은 형님이 홀로 참깨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 김동수

 

참깨 농사는 정말 어렵습니다. 옛날 어른들은 "깨농사는 타작하고 고방(창고)에 넣어야 끝났다"고 하셨습니다. 참깨는 습한 것을 싫어하는 데 여름을 지나야 합니다. 우리나라 여름이 엄청 습합니다. 그러니 참깨 풍년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햇볕이 조금만 좋으면 껍질이 터저버리기도 합니다. 한 되 심고, 한 되 거둘 때도 있습니다. 

 

가을은 넉넉합니다

 

그래도 넉넉합니다. 가을은 넉넉합니다. 농부는 봄부터 여름을 지나면서 땀과 눈물을 다 쏟았습니다. 그 땀이 풍성한 선물로 돌아왔습니다. 적게 거두어도 감사, 많이 거두어도 감사입니다. 농부가 살아가는 삶의 방정식이지요.

 

지난해보다는 못한 풍성함이지만 하늘이 주신 풍성함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망과 불만을 한단고. 100포대가 200포대가 되지 않습니다. 100포대도 하루 세끼, 200포대 하루 세끼입니다. 농부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풍성함을 경험하는 가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1.10.13 09:41 ⓒ 2011 OhmyNews
#가을걷이 #콤바인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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